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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Oct 31. 2024

938. 크레타로 가기 전

마음 편하게 지내려고 노트북은 챙기지 않았다.

 핸드폰 하나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국내여행보다 해외여행 준비가 조금 번거롭기는 하다. 여권, 국제운전면허증을 챙기고, 크레타에서도 시골을 가기에 환전, 공항버스예약도 해야 한다. 고혈압 등 기왕증이 있는 사람은 여행자보험도 거부된다. 나이 들어가니 알지 못했던 여러 핸디캡들이 생겼다. 큰 아이가 가르쳐줘 기왕증에 대해 보장하지 않는 여행자보험을 찾아 가입했다.

 네덜란드는 가을이라 가을 셔츠 하나와 바람막이를 챙기고, 주 목적지인 그리스는 늦여름으로 여름바지와 셔츠를 챙겼다. 속내의와 양말 5개, 여름용 샌들은 신고 트랙킹화는 포장했다. 애프터쉐이브와 일회용 면도기를 챙겼고 묵을 곳은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이기에 손톱깎이와 호텔 어매니티로 굴러다니던 Sewing kit도 하나 챙겼다. 보조배터리와 충전케이블까지 챙겼으니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민물낚시를 해도 된다고 해서 낚싯대를 챙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가족여행인데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낚시하고픈 내색은 하지 않았다.


 노트북을 갖고 갈까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하게 지내려고 노트북은 챙기지 않았다. 노트북보다는 길가 풀숲에 핀 야생화 한 포기나 아무 생각없이 바다구경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지인들에게 보낼 편지와 브런치 원고도 한 달 치를 예약해 놓았으니 컴퓨터를 들여다볼 이유는 없을 듯하다.

 수첩과 볼펜 한 자루 챙긴 것을 보면 디지털세대가 아닌 것이 금방 표 난다. 핸드폰에  유용한 메모기능이 있지만 혹시나 해서 챙겼다. 책도 한 권 가져간다. 周易(주역) 관련 책으로 사놓고 엄두가 나지 않아 들춰보지 않은 책이다. 독서를 위한 책이라기보다 편도 14시간이나 소요되는 기내에서 할 일이 없을 때, 비행기가 연착되어 공항에서 무료하게 기다려야 될 때 타임킬링용이다. 기내용 작은 트렁크 하나면 패킹이 가능한 분량이다.


 나름 신경 써서 준비했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니 빠진 것이 하나 있었다. 환경보호를 위해 이제는 기내에서 일회용 칫솔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양치세트를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으나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외국 나가도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적어 치아바타, 깜빠뉴, 베이글을 주식으로 먹으라 해도 불만 없이 몇 달을 견딜 수 있지만 작은아이 입맛은 토속적이다. 어릴 적 큰아이는 육식을 좋아했고, 작은아이는 김치와 된장찌개 등을 좋아했다.

 여행짐을 꾸리다 보니 작은아이에게 건네줄 물건이 더 많다. 명란, 볶은 김치, 김, 고추장, 된장, 깻잎장아찌, 황태포, 미역,  무말랭이 무침, 한국과자, 원두커피까지. 작은아이 짐까지 챙겼으니 물리적인 준비는 끝났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는 것도 여행의 묘미다. 가끔은 사진작가들이 찍은 멋진 사진으로 인해 실제 풍경에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역사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 ‘그리스 신화’를 읽었다. 신경 쓰며 공부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우스는 난봉꾼’이란 것이다. 목적지인 크레타섬의 역사도 난봉꾼 제우스의 바람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페니키아 공주 에우로페를 유혹하기 위해 제우스는 황금빛 소로 변신했다. 에우로페가 호기심에 황금소 등에 올라타자 소는 에게 해를 건너 크레타 섬으로 달렸다.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제우스는 공주와 사랑을 나눴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크레타의 영웅인 미노스와 그의 형제들이다. - 곁에 두고 읽는 그리스신화 (김태관著, 홍익출판사刊) -

     

 미노스는 아테네 이전 고대 그리스문화의 중심인 크레타의 왕으로 전설에 따르면 제우스의 아들이므로 半神半人(반신반인)이다. 기원전 3600년경 ~ 기원전 1075년간 지속된 청동기시대 미노아문명(크레타문명)은 미케네 문명에 의해 멸망된다. 미노스왕 통치당시의 수도는 크노소스다. 미노스는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제우스의 형)의 세 재판관중 한 명이기도 하다. 유적을 보면 미노스는 고대 그리스의 실존적이고 역사적인 인물이지만 신화와 역사가 융합되어 묘사되어 있다. 이는 ‘미노스’가 특정인이 아닌 ‘왕의 명칭’이었다는 이야기를 감안하면 이해할만하다.

. "곁에 두고 읽는 그리스 신화"에서 크레타와 관련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 부분만 알고가도 크레타 여행이 한결 재미 있다.


 미노스왕의 부인 파시파에 왕비는 포세이돈에 의해 황소만 보면 욕정이 일어나는 마법에 걸려 황소를 볼 때마다 음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 자손인 다이달로스는 왕비의 요청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나무 암소를 만들고 소가죽도 입혔다. 왕비는 암소 속에 들어가 마음껏 욕정을 풀었으며 시간이 흐르자 왕비는 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황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게 되었다.

 미노스왕은 경악했으나 포세이돈의 징벌임을 깨닫고 다이달로스에게 迷宮(미궁) 라비린토스를 짓게 했다. 미노타우로스를 迷宮에 가두고 아테네에서 제물로 바친 소년소녀를 잡아먹게 했다. 세 번째 공물을 바치는 시기가 되자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제물로 변장해 쉽게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공주의 도움으로 迷宮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리아드네공주는 실 타레를 준 뒤 솔솔 풀었다가 감으며 나오라고 알려줬다.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공주가 함께 도망치자 격노한 미노스왕은 나무암소를 만들어 사단을 일으킨 다이달로스와 아들인 이카루스를 迷宮에 가두었다. 다이달로스는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 그러나 천부적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발명을 했고 또 다른 재앙을 안겨주었다. 미궁에서 탈출할 이카로스의 날개를 만들어 낸 것도 그랬다.


 크노소스궁전은 실존하는 역사이며 迷宮(미궁) 라비린토스는 아직 신화 속의 궁전이다. 半神半人 미노스뿐 아니라 크레타섬 역시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다.


* 서양에서는 半人半獸(반인반수)가 악한 것으로 표현되나 토테미즘이 번성한 동양에서는 동물이나 반인반수를 신성시한다. 미노타우로스같이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사람 몸에 머리가 소인 반인반수 神農(신농)는 약초와 농업의 신이다. 우리나라 단군신화도 天帝(천제) 환인의 아들 환웅과 곰에서 여자로 변한 웅녀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단군이므로 단군은 半神半人 또는 半人半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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