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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Nov 07. 2024

941.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고

여행 가는데 결막염이라

  못 볼 것을 봤는지 추석 연휴기간이 시작하자마자 눈이 충혈되었다. 연휴기간 문 여는 병원을 인터넷으로 검색했으나 안과병원은 없었다. 아마도 의료대란여파는 아니었을 테고 안과 의사들도 연휴를 쉬어야 하며 응급환자가 발생치 않는 진료과였기에 병원 문을 닫았을 것이다. 충혈된 정도가 응급실을 찾을 정도가 아니었으며 태어나 눈이 충혈되었다고 병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에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보여주고 각막염치료용 안약을 받아왔다. 해외여행 동안 안약으로 버텨보기로 했다. 


 시간을 잘 맞췄는지 공항으로 가는 인천대교위에서 본 落照(낙조)가 기가 막혔다. 공항버스를 탔기에 차를 멈출 수 없었지만 근래 보기 드문 절경이었다. 낙조가 멋있다는 그리스보다 붉게 타오르는 황혼이 멋졌다.

 출국수속은 순조로웠고 비행기도 정시 출발했다. 고객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지만 앞자리부터 뒷자리까지 zone1부터 zone5까지 구분 지어 탑승한다. 설국열차처럼 신분이 나뉘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하다. 집을 떠나면 베개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고생한다. 이번에는 가벼운 경추베개를 갖고 왔다. 기내에서나 숙소에서 베개 덕분에 편하게 잠을 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모스크바상공을 날지 못하고 터키인근으로 날아간다. 14시간이 소요되었으니 시간은 비슷하게 걸렸지만 경로상 조금 돌아가는 느낌이다. 네덜란드항공(KLM) 기내식은 비빔밥인데 먹을 만했으나 치킨은 별로 입맛에 맞지 않았다.


 입국심사는 간단하다. 며칠 체류할 예정이냐 만 물어봤다. 아내에게도 4주 체류한다고 말하라고 했으나 심사관이 내게 아내도 같이 왔냐고 물어봐 아내와 함께 입국심사를 받았다. 젊은 심사관 눈매가 매서웠다.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잘 자서 피로함은 덜했다. 네덜란드에는 동이 트기 전 도착해 막내 집에 짐을 풀었다. 짐을 푸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부부의 짐이 없어 막내에게 줄 명란젓은 아이스박스에 보냉팩과 함께 넣어갔다. 된장, 고추장, 김치볶음, 깻잎지 등을 풀어놓으니 한 짐이다. 작은 냉장고에 집어넣지 못할 정도로 많아 보였으나 다 들어갔다. 살림하는 여인들의 신공이다. 각막염이 있었기에 오늘은 워밍업만 하기로 했다. 집 근처 마트에서 과일을 구입했다. 사과, 포도 과일가격은 한국과 비슷하다. 애플 망고는 오분의 일 가격이지만 숙성될 때쯤 그리스로 가야 하기에 패스했다. 아쉽게도 납작 복숭아 철이 끝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유럽을 세 번 왔는데 모두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 핑크레이디란 사과가 조금 가격대가 있는데 우리나라 사과 비슷하게 상큼하다. 귤은 한국귤과 똑같이 생겼으나 오렌지 비슷한 향이 있다. 빵은 한국의 반값이다. 한국제과점에서 파는 깜빠뉴의 두 배 정도 되는 커다란 깜빠뉴가 5000원으로 매우 헐하다.

 막내가 세를 얻어 사는 아파트는 물 위에 떠있는 형상이다. 삼면이 물이고 수위와 지하주차장 바닥높이가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다. 문을 열면 낚시터이니 낚시꾼에게는 침 흘릴 정도로 입지 좋은 아파트다. 집에서 기차역까지 200 미터, 쇼핑센터가 300미터, 헬스클럽 200미터, 회사까지는 기차로 두 정거장이다.  마을 조용하고 아파트 주변만 아니고 동네 곳곳에 낚시가능한 수로가 있으니 한국으로 치면 최상의 주거여건이지만 젊은이 생각이 다른가보다. 수로와 조용함은 작은 아이에게 장점이 아니란다. 수로가 있어 모기 벌레가 집에 들어올 수 있으며, 은퇴한 노인들이 많이 살기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느리고 주변 음식점과 카페도 노년취향이라 이사 가려고 생각 중이란다.


 그나저나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고 마음먹고 날을 잡은 해외여행이 순탄치 않은 징조가 보인다. 결막염 걸린 눈은 조금 더 빨개지고 충혈도 심해졌다. 비행기를 14시간 동안 타고 오느라 피곤했나 보다. 눈물을 자주 닦아내지 않으면 시야가 흐릴 정도이며, 이제는 눈뿐 아니라 눈 주위까지 벌겋게 부어올랐다. 피곤이 겹쳐 나을 기미는 보이지 않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심해졌다.

 안약을 넣으면 차도가 있고 가려움이 덜한 것을 보면 결막염은 맞는 것 같다. 심해지면 안과에 가야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아주 심하지 않으면 항생제처방을 해주지 않는다며 크게 기대하지 말란다. 국제운전면허증은 내 것만 준비해 왔는데 시야가 맑지 못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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