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사람용에는 몇 글자 적힌 메모 스티커 하나를 더 붙인다.
취미로 로스팅을 하는 목적은 본인 취향의 신선한 커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같은 생두를 덜 볶을 것이냐 또는 더 볶을 것이냐에 따라 확연히 향과 맛에서 다른 커피가 된다. 요즘은 주문에 따라 로스팅하는 원두판매점도 있으나 본인의 입맛을 찾아 주문하면 간단하다. 맛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지만 산미, 바디감, 향을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이야기하다 보면 입에 맞는 커피를 찾을 수 있다.
판매하는 원두 이외 각양각색의 원두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것도 홈로스팅의 장점이다. 나라별, 지역별, 품종별, 가공방법별로 맛이 다른 것은 물론 농장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니 신기하다.
경제적인 면도 장점이다. 생두가 만원이면 로스팅된 원두는 3~4만 원 정도로 가격이 상승한다. 생두가격이 2만 원이면 원두는 10만 원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초보는 아직 맛을 내지 못하고 버리는 원두도 있으며 만 원짜리를 볶아 5천 원짜리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아직 경제적이지는 않다.
또 어떤 장점이 있을까? 시간 보내기 좋은 취미다. 붕어낚시는 살아있는 생물을 상대로 하는 취미이므로 당연하게 다양한 변수가 있다. 붕어측면의 변수와 사람측면의 변수, 매개체 역할을 하는 미끼와 낚시채비 변수가 존재해 최적화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한다. 사실 변수가 없다면 취미가 되기 어렵다. 변수 없는 최적화된 상태로 미끼를 던질 때마다 붕어가 낚인다면 낚시 재미는 반감된다. 60년 동안 경험한 결과, 낚시란 취미의 반 이상은 기대와 희망이지 釣果(조과)만은 절대 아니다.
커피로스팅은 무생물의 재료, 기계를 갖고 노는 취미인데도 붕어낚시만큼은 아니더라도 변수가 많다. 작업장 온도, 로스팅 온도와 시간, 원두숙성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로스터의 기술이다. 초보는 재연성이 부족하기에 같은 맛의 원두를 만들 수 없다. 반면 이번에는 어떤 맛이 날까? 잘 볶아졌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도 있다.
물론 커피를 내리는 브루잉의 방법과 시간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좋은 원두로 맛없는 커피를 내릴 수도 있다.
아내는 무엇이든 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남편이 난생처음으로 생산적인 취미를 갖게 된 것이 신기했는지 로스팅을 시작했다고 주변 지인들에게 이야기했다. 원두커피를 내려먹는 사람에게는 주겠다는 의미로 들렸을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로스팅해보는 좌충우돌 단계, 그것도 체계적으로 배운 로스팅이 아닌 독학으로 로스팅하고 있어 체계적이지 않고 재연성 있지 못하다. 재연성이야말로 로스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맛있는 원두를 생산했다고 해도 재연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직 재연하지 못하는 단계다.
‘나도 모르는 미지의 맛’을 선물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부담이기는 하나, 마음 편하게 만나는 친구들끼리 나눠 먹는 땅콩 반쪽이라 생각하면 커다란 부담은 아니다. 로스팅을 시작하면서도 ‘프로의 맛’이 아닌 ‘나만의 맛’을 위해 커피를 볶아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커피 맛을 보고도 실망해도 할 수 없는 일이며, 맛없다고 흉봐도 무방한 사람들이다.
생두 200g을 로스팅하면 수분증발로 인해 원두 170g이 된다. 집에서는 한 번에 30g을 쓰니 6잔 분량이다. 로스팅한 원두를 반으로 소분하고 스티커를 붙인다. 사실 170g은 소분할 만큼도 되지 않지만 ‘나만의 맛’을 찾기 위해 소분한다. 재연성을 위해 볶을때마다 기록하고 일반적으로 3일 숙성 후 커피를 내리고 맛과 향을 기록한다.
이 과정이 있기에 낚시처럼 기대와 희망이 있는 취미라고 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로스팅을 하는 이유는 알지 못하겠으나, 로스팅하고 맛과 향을 기대하는 과정이 좋다. 물론 맛이 좋다면 금상첨화다. 아무튼 소분하여 스티커를 부착한다. 나를 위해, 받는 사람을 위해
품종: Ethiopia yirgacheffe aricha G1 natural
커핑노트: 망고, 딸기, 자몽, 장미, 재스민
로스팅 일시: 2024.00.00 00:00
마시는 일시: 2024.00.00 00:00
로스팅 후 2~3일 숙성 후 커피를 내리는 것이 좋은데 우리 집은 3일을 숙성시키고 커피맛이 나오지 않는다면 조금 더 오랜 시간 숙성한다. 3일 후 커핑노트에 있는 맛과 향이 그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지만 이미 내손을 떠난 커피맛에 대한 자신감은 없다.
받는 사람용에는 몇 글자 적힌 메모 스티커 하나를 더 붙인다. ‘커피맛 기대 절대금지. 독학으로 좌충우돌 Roasting 中, 만 번에 한 번은 커피맛이 나겠지요. 오늘 이었으면...’ 받는 대상에 따라 표현이 약간씩 다르지만 속 내용은 똑같으며 솔직한 마음이다. 현재는 보잘것없는 맛이지만 1년 후에는 추가스티커가 필요 없을 정도로 로스팅실력이 향상되었으면 하는 희망사항도 담겨 있다.
원두를 받는 집마다 커피 내리는 방법이 다르니 사실 맛있기는 어렵다. 원두의 분쇄도, 커피 물의 온도, Dripper의 종류, 커피 추출 속도, 커피 추출량에 따라 맛이 변한다. 집에서 마시는 원두에 따라 모든 것이 세팅되어 있을 것이므로 새로운 원두가 오면 거기에 맞춰야 하나 쉽지 않다.
커피가 맛없는 이유를 커피를 내리는 브루잉에 살짝 넘기려는 의도는 없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로스팅 기술이다. 로스팅기술은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으로 체계를 잡아가는 중이니 절대로 맛있을 리 없다. 선물 받은 사람은 랜덤박스를 받은 것과 같다. 랜덤박스 만개를 뿌리면 한 개 정도는 원하던 물건이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랜덤박스를 받은 사람 대부분은 실패로 끝난다. 실패한 커피맛에 실망하지 마시라. 고장 난 시계는 하루에 두 번 맞듯 간혹 맛있는 원두를 받은 분도 계실 것이다.
주의 및 경고 1: 커피에 대해 일자무식인 생초보가 좌충우돌하며 로스팅하는 이야기이므로 따라 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주의 및 경고 2: 로스팅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시간이 소요된다. 취미를 붙이지 못할 때는 로스팅된 원두를 구입하는 것이 맛있고 저렴하다.
주의 및 경고 3: 앞으로 계속되는 커피이야기는 전문적이지 못하므로 커피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전문서적 구입 또는 전문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