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브런치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기분은 꽤 좋았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작가라는 말은 여전히 나에게 어울리지 않은 단어다. 그래도 작가 심사에 통과했다는 건, 내 글이 아주 똥글은 아니라는 뜻이겠지 싶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더 마음 편히 써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 몇 개월 전부터, 나는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딱히 큰 이유는 없었다. 그냥, 쓰고 싶었다.
제대로 배우지도, 구조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키보드에 손을 얹고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국어 공부를 좀 해둘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유튜브 강의도 보고, 도서관에서 글쓰기 책도 빌려봤지만, 말하자면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상태다.
지금도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다. 문장 사이엔 여기저기서 주워 온 미사여구를 억지로 끼워 넣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어쩐지 멈출 수는 없었다. 요즘엔 출퇴근 지하철에서 두 시간, 집에선 애들 재워놓고 두 시간. 그 좋아하던 게임도 안 하고 워드를 켜놓는다. 시나리오든 브런치 에세이든, 하루에 거의 네 시간씩은 쓰고 있다. 글을 쓰는 일엔 묘한 끌림과 재미가 있다. 마구잡이로 쓰고, 끼워 맞추고, 문장들을 옮겨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름 글다워진다. 그때 느껴지는 뿌듯함이, 아마도 이 맛에 하나보다.
'학생 때 내가 이렇게 공부했다면'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지만 했다 한들 뭐가 크게 바뀌진 않았을 거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변한 게 있다면, 내가 앉아 있는 자리를 둘러싼 풍경이다.
컴퓨터 앞에서 시나리오를 쓰거나, 거실에서 태블릿으로 에세이를 쓰고 있으면 아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어깨너머로 훔쳐보듯 바라본다.
큰아이는 키보드를 누르지도 않고, 그냥 내 의자 뒤에 조용히 서서 모니터 속 글을 읽어본다.
둘째는 글씨도 아직 잘 못 읽으면서 괜히 한 번 보고 지나간다.
시나리오에 욕설이나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땐 얼른 창을 닫는다.
브런치 글을 쓸 땐 그냥 둔다.
내가 쓰는 문장을 아이가 조용히 따라 읽고 있다는 사실이, 괜히 마음이 다시 뿌듯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이가 조심스럽게 아내와 나에게 노트를 내밀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써둔 노트였다.
신이 인간을 지켜주는 세계에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일, 꼬마 귀신 이야기, 동생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허술하지만 나름 그럴싸했고, 천진하지만 잘만 다듬으면 꽤나 깊이 있는 내용도 될 거 같았다
아내와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번이고 '와우'를 내뱉었다.
그날, 이걸 시작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아이가 먼저 그 꿈을 이루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의 꿈은 아이의 것. 나는 그저 옆에서 길을 다듬는 마음으로, 크게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넷북 하나를 사주자고 제안했다.
아이가 글을 더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하지만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손으로 써야 해. 연필로 써봐야 해."
그 말에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다시 말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어떤 도구를 쓰느냐보다, 뭘 쓰느냐가 더 중요한 거 아닐까.”
속으론 '연필이나 볼펜도 인류 역사에 비하면 신문물인데, 차라리 먹이라도 갈아서 붓글씨를 쓰라고 하지' 하는 말이 맴돌았다.
괜히 말했다간 집안 분위기가 1주, 아니 2주는 냉랭해질 게 뻔했다.
아내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아마 조만간 이 문제로 크게 다툴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어릴 적, 나는 필기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글씨는 악필이었고, 지금도 내가 쓴 글씨를 내가 못 알아볼 때가 대부분이다.
필기하라는 말이 너무 싫어서, 노트는 항상 비어 있었고, 그래서 공부도 늘 하위권이었다.
혹시 우리 아이도 나처럼 될까 걱정은 된다.
하지만 도구를 금지하는 게 정말 맞는 일일까.
상상력은 손끝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자라나는 것 아닐까.
생각이 피어나고, 이야기가 생기면, 그걸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하는 것.
그게 글쓰기의 시작이 아닐까.
아이의 노트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내가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렸던 날이 떠올랐다.
아무도 안 볼 줄 알았는데,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많진 않지만 구독까지 해준 분들도 있다.
기분이, 살짝 좋다.
브런치북을 해보겠다고 북도 만들었는데, 매거진에 글을 옮겨 적었더니 같은 글이 두 개씩 생겨버렸다.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군 맞다 하고 누군 아니다 하니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저 애써 써보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쓰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매일 쓰는 손끝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남는다.
형태를 잡지 못한 감정이든, 흐릿한 기억이든,
그런 것들이 서서히 글이 되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아이 몰래, 노트를 한 장 넘겨본다.
아이의 연필깎이에서 갓 나온 연필은, 또 뭔가 그럴싸한 이야기를 준비 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