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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입 찬가

피자 찬가

양양 피자스쿨, 인천 송도로드피자

by 바삭새우칩

지난주였나 지지난주였나 먹고 남았던 피자 한 조각을 냉동실에서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데워 먹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먹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몇 년 전부터 부쩍 느끼고 있다는 것. 그래도 30대 때만 하더라도 피자 한 판은 혼자 거뜬히 먹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두세 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그렇다고 해서 피자를 덜 좋아하게 된 건 아니다. 맥주 안주로도 좋고, 간단한 식사로도 손색없고, 심지어 식은 피자를 질겅질겅 씹어 먹는 것도 좋다.


피자의 원조인 이탈리아식 피자보다는 두툼하고 자극적인 미국식 피자를 더 좋아하는 나를 보면, 참 나다운 것도 같다.

그런데 정작 진짜 이탈리아 피자는 먹어본 적이 없다.

이탈리아에 가본 적도 없고, 여기서 파는 마르게리타 피자가 과연 현지 스타일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유튜브나 TV에 나오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뭐 죄다 가짜라고 하니, 도대체 뭘 진짜라고 해야 할지 더 헷갈릴 뿐이다.

언젠가 이탈리아에 가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내 입으로 직접 판단해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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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길 왜 꺼내냐면, 예전에 미국에 갔을 때 피자를 먹어봤는데, 그토록 좋아하던 미국식 피자가 막상 현지에선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짜도 이건 너무 짜서, 한 두 조각 먹고 콜라를 들이부었던 기억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그 짠맛에서 감칠맛을 느낀다지만, 내 입에는 그냥 ‘짜다’는 감각만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내가 먹는 피자는 ‘한국식 피자’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라별로 피자는 참 다양했다. 네팔에서는 야크 치즈를 올린 피자를 먹은 적이 있다. 특유의 짠내와 산뜻한 향이 어우러져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나중엔 오히려 그 은은한 꼬릿 한 치즈향이 맘에 들었다.


태국 어느 시골 동네에서 먹었던 건 거의 '피자빵'에 가까웠다. 도우는 푹신하고 큼지막했고, 토마토소스에 희미한 토핑이 있었는데, 실망스러운 첫인상과 다르게 이건 또 이대로 나쁘지 않았다.

문득 생각해 보니 각 나라의 식재료와 입맛에 맞게 피자가 변형되어 간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내가 먹는 이 익숙한 피자가, 실은 어디에도 없는 ‘내 나라의 피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피자 브랜드에 꽤 강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절대 다른 브랜드는 시키지 않았고, 오로지 도미노피자만 고집스럽게 주문해 왔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안 소시지와 베이컨, 페퍼로니, 햄 같은 육류 토핑을 끝도 없이 추가해 만든 ‘고기고기 피자’가 나만의 단골 메뉴였다. 도우는 무조건 오리지널! 가끔 주문을 잘못해 곡물 도우로 배달이 오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피자 먹으면서 건강을 챙기라는 건가? 곡물 도우를 먹으면 건강이 +1이라도 되는지. 처음부터 곡물도우에 체크를 해놓은 행태에 화가 났고, 난 그 어울리지 않는 도우를 정말 싫어했다.

물론 그걸 다 먹긴 했지만, 씹는 내내 기분이 상했다. 고기 기름이 듬뿍 스며든 피자와 건강한 이름의 곡물 도우의 만남이라니, 이건 도무지 논리적으로도, 미각적으로도 납득이 안 갔다. 그날 이후로는 주문할 때마다 도우 종류를 두세 번은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 이 ‘너무나도 나만의 고기고기 피자’는 결혼 후 자연스레 멀어졌다. 입맛이라는 건 같이 사는 사람에게 맞춰가게 되어 있고, 내 고기욕 가득한 피자는 가족 식탁에 오르기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진 취향이었다. 결국 나만의 피자는 조용히 사라졌다.


이렇게 피자 얘기를 쓰다 보니, 내 인생 첫 피자가 생각난다. 내가 자란 동네는 지금 생각해도 꽤 낙후된 동네였다. 피자는커녕, 치킨 프랜차이즈나 패스트푸드도 찾아볼 수 없던 동네. 그래서 가게에서 파는 진짜 피자라는 걸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처음 먹어본 피자는 어머니가 TV를 보고 따라 만든 ‘피자 비슷한 무언가’였다.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 프라이팬에 올리고, 그 위에 케첩을 바른 뒤 피망, 양파, 사각 불고기햄을 얹고 마지막으로 피자치즈를 올려 뚜껑을 덮고 은근하게 익히던 그 피자. 물론 프라이팬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썰어낼 수는 없었고, 손으로 들고 먹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했고, 그러니까 그건 ‘떠먹는 피자’였다.


지금도 가족끼리 그 옛날 수제 피자 얘기가 나오면 농담처럼 말한다.

“아무래도 떠먹는 피자의 원조는 우리 김여사 님이 아닐까.”

그러면 어머니는 “그거 다시 해줄까?” 진지하게 말하고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아냐, 그냥 배달시켜 먹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때의 맛, 그 모양 없는 피자가 내 피자 인생의 시작점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pinar-kucuk-qfWI0GFqnBM-unsplash.jpg Unsplash의Pinar Kucuk

요즘 내가 자주 먹는 피자는 두 곳이다. 첫 번째는 부모님 집이 있어 자주 방문하는 양양에 있는 피자스쿨.

맞다, 그 흔한 피자스쿨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집이 양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맛집이라 생각한다. 양양의 맛집 어디 없냐고 누가 물어보면, 꼭 이 집은 얘기하게 된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혹시 양양에 방문하게 되면 꼭 이 집에서 한 판 포장해 근처 해변으로 가서 따끈할 때 먹어보라.

해변에 도착할 즈음이면, 토핑과 치즈가 도우에 적당히 달라붙어 먹기 딱 좋다.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와 함께 먹는 피자 한 조각은, 그야말로 별미다. 똑같은 피자스쿨 피자인데도 장소와 타이밍 덕분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진다.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또렷하게 살아나고, 치즈의 짠맛마저 감칠맛처럼 입안을 맴돈다. 무엇보다 피자의 기름지고 묵직한 맛, 맥주의 청량감, 그리고 바닷바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겨울만 아니라면 양양에 갈 때마다 꼭 이 루틴을 반복한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에서 뛰어놀고, 나는 접이식 의자에 앉아 맥주와 피자 한 조각을 곁들여 여유롭게 쉰다. 그러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천천히 짐을 챙겨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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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내가 요즘 사는 집 근처, 인천 송도에 있는 ‘송도로드피자’라는 가게다. 이 근처로 이사를 오고 우연히 들어가게 됐는데, 그 뒤로는 줄곧 이 집에서만 먹고 있다. 이 집의 시그니처는 토핑 없는 '치즈피자’다. 치즈가 아주 두텁게 덮여 있고, 토마토소스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끌린다. 강하지 않은 산미와 은은한 단맛이 치즈의 고소함을 잘 받쳐준다. 식으면서 꾸덕꾸덕 쫄깃해지는 치즈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 점성이 도우와 더 잘 어울려 포크로 한 조각 들어 올릴 때마다 입맛을 자극한다. 도우도 지나치게 얇거나 퍽퍽하지 않고, 적당히 도톰하면서 결이 살아 있어 부담 없이 먹기 좋다. 지금도 쓰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가게 옆에 쌓여 있던 치즈 박스를 힐끔 봤는데, 당시 기억은 꽤 유명한 외국 치즈회사 제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내가 그걸 구별해 낼 미각은 없지만, 뭐 맛있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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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보다 아이들이 피자를 더 좋아한다. 어릴 적 내 모습처럼, 토핑 하나에도 진지하고, 치즈 늘어짐에 감탄한다. 진짜 어른이 되면 입맛이 변하긴 하나 보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아직까진 나는 피자 정말 좋아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같다.


올여름, 해변에서 피자 한 조각과 맥주 한 캔을 또다시 마주하게 되겠지. 여름 피서는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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