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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입 찬가

새우 찬가

활 흰다리새우

by 바삭새우칩

여름의 끝물. 낮에는 여전히 햇볕이 따갑지만, 밤바람이 불면 낯의 열기가 식어 제법 버틸만하다. 이 무렵이면 새우 양식장에서 흰다리새우 출하가 시작된다. 양식장 주변 도로에는 새우구이, 새우 킬로그램당 얼마라고 현수막이나 간판이 보이고, 동네 횟집에도 새우구이라고 임시메뉴판도 보인다. 이쯤 되면 이제 가을이 곧 오는구나 싶다.


예전에는 이 흰다리새우를 ‘대하’라는 이름으로 팔던 시절이 있었다. 간판만 봐도 누구나 믿을 수밖에 없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유튜브, 블로그, SNS에서 수많은 비교 영상과 사진들이 돌고, 흰다리새우와 대하가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하축제’라며 흰다리새우를 팔고 있는 곳들이 있다. 우리나라 토종 새우인 대하는 한때 양식도 많이 되었고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흰반점병이라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대하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대하 양식이 거의 중단되고, 흰다리새우로 대체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수산시장에서 가끔 자연산 대하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양식 흰다리새우 보다 비싸지만, 사이즈도 크고 몸집이 커질수록 가격이 비싸지는 새우 가격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가격도 좋고, 맛도 훌륭하며, 팔팔하게 살아있는 양식 흰다리새우를 대신해 먹기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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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 활 흰다리 새우 가격은 1킬로그램에 2만 원 안팎. 이 정도면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가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직업상 가끔 선박과 관련된 업무로 출장길에 들른 강화도 혹은 서해안 어느 항구를 들리게 되면 블로그나 리뷰를 뒤져 평가 좋은 양식장에서 살아있는 새우를 사가게 된다, 두어 상자를 사서 차에 실을 때면, 트렁크 속에서 나는 소금기 어린 바닷 내와 미묘한 비린 향이 함께 밀려온다.

집에 돌아오면 새우는 여전히 팔딱팔딱 살아 있다. 큰 대야에 옮겨 담으면, 꼬리로 물을 튕기며 방울이 튄다. 휴대용 버너에 뚜껑 있는 냄비를 올리고, 바닥에 알루미늄 호일을 깔고 그 위에 굵은 소금을 두껍게 깐다. 그 위에 새우를 가지런히 놓고 뚜껑을 덮는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소금에 닿은 새우가 붉어지기 시작한다. 한 번 뒤집고 다시 덮은 뒤, 몇 분 후 뚜껑을 열면 뜨겁고 짭짤한 향이 증기와 함께 밀려온다. 갓 익은 새우를 집어 아래 다리를 뜯고 껍질을 벗기면, 매끈한 속살이 쏙 빠져나온다. 탱글탱글한 식감과 새우 특유의 단맛이 혀끝에 퍼진다. 와이프가 나에게 새우 껍질을 잘 깐다고 칭찬해 주면, 나는 ‘새우 까기 자격증’ 보유자라고 농담처럼 대답한다. 결국 아이들과 와이프 것까지 다 까서 접시 위에 올려준다.

아무래도 이 정도면 새우 껍질 까기 동네 챔피언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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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살던 곳은 지금은 살짝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해진 소래포구 근처였다. 해산물은 늘 가까이 있었고, 새우도 그중 하나였다. 지금 내 아들 나이였던 6~7살 무렵, 인천 남동공단 간척 사업이 한창이었다. 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고 갇힌 바닷물을 찾아가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이 양쪽에 그물을 치고 반대쪽으로 끌고 가면, 그 안에는 놀라울 만큼 많은 새우가 한꺼번에 잡혔다. 그날 이후 우리 집 식탁은 며칠 동안 새우로 가득했다. 새우튀김, 새우전, 새우탕, 새우찜. 아마도 내가 새우를 너무나도 좋아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올해는 양식장에 들를 기회가 없어 8월 초 출하 소식을 듣자마자 인터넷으로 2킬로그램을 주문했다. 씨알 굵고 싱싱한 새우 약 60마리가 도착했다. 대부분은 소금구이로 먹었지만, 베트남에서 돌아온 회사 동료가 준 블랙페퍼 소스로도 조리해 봤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새우를 버터에 볶다가 붉게 익어가면 다진 마늘과 블랙페퍼 소스를 넣어 휘휘 저어 마무리한다. 의외로 잘 어울렸고, 후추의 진한 향과 매콤함이 새우살의 단맛과 만나 꽤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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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새우튀김도 했다. 껍질을 벗긴 새우에 튀김가루를 입히고, 다시 계란물과 빵가루를 차례로 묻힌 뒤 손으로 꾹꾹 눌러 붙였다. 팔팔 끓는 기름에 튀겨 한 김 식혀 식탁에 내면, 바삭한 옷 속에서 따끈한 속살이 터져 나온다. 새우튀김은 타르타르소스, 케첩, 칠리소스 세 가지에 번갈아 찍어 먹으면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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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맥주 캔이 몇 개 비워지고, 접시 위에는 새우꼬리만 수북이 쌓인다. 소금구이의 담백함과는 또 다른 매력. 새우는 어떤 방식으로 조리해도 본질적인 맛을 잃지 않는다. 동시에 어떤 소스와도 잘 어울리는 재료다. 소금에 구워 초고추장에 찍어도 좋고, 바삭하게 튀겨 칠리소스에 찍어도 손색이 없다. 타르타르소스의 묵직한 풍미와도 잘 맞고, 차게 식은 새우도 단순히 레몬즙 몇 방울만 더해도 신선함이 살아난다.

이렇게 새우는 본연의 단맛과 쫄깃한 식감 덕분에 어떤 조리법이나 소스와 만나도 정말 맛있는 요리가 되는 재밌는 식재료이다.


올해는 아이들이 커서인지 2킬로그램은 금세 사라졌다. 다음번엔 3킬로그램을 아니 4킬로그램을 사서 새우튀김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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