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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입 찬가

순대국 찬가

인천 동춘사골순대국

by 바삭새우칩

일요일의 음식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짜파게티? 피자? 설렁탕?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순대국이 떠오른다.


일요일 아침, 목욕탕에서 나와 집 근처 순대국집으로 향하던 길. 뽀송뽀송해진 피부로 마주하던 뽀얀 국물. 아니면 일요일 오전, 친구들과 조기축구 후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단체로 들이닥치던 식당. 축구보다 더 뜨겁던 그 순대국. 혹은 토요일 밤 술자리가 길어져 숙취에 절어 일어난 늦은 아침, 뭔가를 삼키는 것도 버거운 속을 다독여주던 그 한 그릇. 그런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게 일요일의 음식은 언제나 순대국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먹는 건 아니지만, 왠지 일요일엔 조금 더 당기는 그런 음식이다.


나는 처음 가는 집의 순대국을 먹기 전에 꼭 김치부터 맛본다. 오늘 아침에 막 담근 듯한 겉절이라면 완전 나이스다. 깍두기까지 오도독 씹힐 정도로 설익었다면, 그날은 정말 잘 걸린 날이다. 개인적으로는 순대국에는 익은 김치나 익은 깍두기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은 본격적인 순대국 튜닝에 들어간다. 아마 한 테이블에 앉은 네 명이 모두 제각기 다른 방법과 순서로 순대국을 먹을 것이다. 그만큼 순대국은 취향이 분분한 음식이다. 내 방식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나름의 루틴이 있다.


나는 먼저 순대를 쇠밥공기 뚜껑에 꺼내 식힌다. 그다음 국물의 간을 본 뒤, 새우젓을 넣는다. 절대 새우젓국물은 넣지 않는다. 새우만으로 간을 맞춘다. 이후 깍두기 국물을 뚝배기에 붓는다. 뽀얗던 국물이 살짝 주황빛을 띨 때까지. 간을 다시 본다. 사골국물의 걸쭉한 맛 뒤에 깍두기 국물의 산뜻함이 느껴지면 성공이다.

들깨가루는 반 숟가락보다 살짝 덜어 넣는다. 그리고 밥을 조심스레 투하한다. 마지막으로 부추무침을 수북이 올린다. 식혀둔 2~3개의 순대를 편마늘과 쌈장에 찍어 한입에 넣는다. 그제야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된다. 뚝배기를 휘휘 저어, 밥과 고기, 국물이 어우러진 한 숟갈을 뜬다. 순대국의 한입은, 완벽한 탄단지 조합이다.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겉절이와 깍두기의 리필은 자연스럽다. 그 한 그릇 속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만족이 들어 있다.

즐겨 가던 순대국집은 그동안 몇 군데 있었지만, 요즘 자주 가는 집이 하나 있다.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 있는 ‘동춘사골순대국’은 나만의 기준을 다 갖춘 집이다. 국물은 진하면서도 텁텁하지 않고,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김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가 먼저 믿음을 준다. 이 집은 맛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고기의 밸런스가 인상적이다. 부속의 구성이 훌륭해서 각각의 부위가 제 몫을 하면서도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 쫄깃한 부위, 부드러운 부위, 육향이 강한 부위가 고르게 섞여 있어, 의도한 조합이 아닐까 싶을 만큼 조화롭다. 먹는 내내 식감이 지루할 틈이 없고, 양도 넉넉해 밥을 말지 않아도 충분히 든든하다. 이 정도면 누군가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집이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동네 맛집답게 식사시간엔 늘 웨이팅이 있고, 주차는 거의 지옥 수준이다. 차를 가져갈 땐 그저 운에 맡겨야 한다는 점, 이건 정말 어쩔 도리가 없다.

순대국은 어쩌면 온기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땀 흘린 뒤의 허기를 채워주고, 과음 뒤의 속을 달래주며, 때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사이와 나눌 수 있는 음식. 국물 한 숟가락이면, 오늘 하루쯤은 괜찮다 싶어진다. 그래서 난 일요일의 음식은 순대국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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