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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마 Dec 18. 2022

심연을 헤엄치다간..

익사해요


촬영을 가기 위해 스타렉스를 탄다. 피디의 자리는 늘 조수석. 조수석에서 반장님께 목적지를 알려드리고 감독이랑 잠깐 잠답을 하다 이내 조용히 도로를 응시한다. 달리는 도로의 풍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고속도로였다가 산과 터널이었다가 가끔 무지개도 보인다. 나는 내가 결국 16년 동안의 학창 시절을 거쳐 스타렉스 조수석에 당도했다고 느낀다. 크고, 옆에 언론사 마크가 그려져 있고, 한껏 회색인 그 차에 사람들을 잔뜩 실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그런 자리에 도달한 것이다. 초라하고 비장하다. 마침내 당도한 그 자리에서 나는 내 삶을 반추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하루를 상상한다. 촬영을 가는 길에는 인터뷰이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 고민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 사람의 인생을 가늠해 본다.


짧으면 20분, 길면 2시간의 인터뷰 속에서 그 사람의 전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오만이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분야에 오랫동안 몸을 담아왔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 이야기가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우리 아이가 다치는 것을 보느니 그냥 같이 죽겠다는 장애 학부모회장의 말을 듣고 오는 길은 참혹했다. 기도하듯이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읊조리는 그녀를 보며 장애 학부모의 삶은 어떨지 잠시 생각해 본다. 교실처럼 낡은 사무실에서 정해진 말만 반복하는 공무원을 만나고 온 날에는, 시계추 같은 삶이 그려지기도 한다. 윽박지르는 아저씨들을 만나온 날에는 그 사람의 저녁시간을 생각해 본다. 나에게는 까칠했지만 자기 자식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겠지.


결국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차가 어느새 회사에 도착하고, 나의 일과는 다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의 삶을 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그런데 좋은 사람의 마음을 엿보는 일보다도, 절박한 사람의 마음을 엿볼 때가 더 많다. 절박한 사람을 만나는 날도 운이 좋은 날이다. 다만 성의 없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 우리의 진심이 그들의 무성의와 집념에 무너질 때면, 나는 한없이 나약한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이 잘 될 때는 언론사와 프로그램의 승리인 것 같은데, 무언가 악을 바라보고 올 때는, 그리고 그 악에 져버린 것 같을 때는, 결국 이십 대 어린애의 실패처럼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심연을 너무 오래 바라보다 보면 심연도 나를 바라본다는 니체의 말처럼, 시사교양 PD를 하면서 가장 잘해야 하는 일은, 심연을 그만 바라보는 용기, 그리고 잘 바라볼 용기다. 심연 안에는 깊은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가 밝혀내야 할 것들도 있다. 우리가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해주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그 안에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집중하고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편집을 한다. 오늘도 세상에 그저 내 몫을 하려 한다.


그리고 다만,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서 내가 심연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내가 심연에 잡아먹힐 것 같을 때면... 엉뚱하게도 고양이 사진을 본다.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커피를 먹으며 바다를 바라보거나, 귀여운 아기 토끼 사진도 본다. 육지의 성스러운 것들을 보고 나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육지의 성스러운 동물들과 생명수(커피)와 활력수(와인)를 섭취하면 좀 더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심연은 심연이고, 나는 나다. 심연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되, 나는 감상하는 사람임을 확실히 할 때, 육지에서의 내 작품도 나아진다고, 나는 믿는다. 그 악을 털어낼 마음. 굳세고 경쾌한 마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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