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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큐마 Mar 03. 2023

선배를 보면 재채기가 나요

“내가 왜 여기와 있는 걸까”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를 보면서 나는 수없이 생각했다. 타지에 취업한 스물넷, 내 인생을 구성하던 모든 페이지가 갈아 끼워진 느낌이었다. 모래사장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내가 너무 생경했다. 내가 당장 해내야 하는 일들도, 내 눈앞에 펼쳐진 바다도, 매일 보던 애정하던 사람들의 부재도.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모두 어느 부분에서는 넘치고, 어느 부분에서는 모자란 기분. 모두 새로운 페이지가 끼워진, 생경한 책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온몸이 뻐근했다.     


“내가 왜 여기 와있지?” 사실 내가 궁금했던 건 이유가 아니었다. 지금 와 돌아와 보면, 그건 재채기 같은 거였다. 아! 헐! 과 같은 반사적인 감탄사. 한순간에 사는 곳과 하는 일이 모두 바뀌는 일은, 그리고 애착을 가졌던 대상을 모두 앗아가는 일은, 나에게 재채기가 몹시 나는 일이었다. 2년 동안 열심히 재채기를 해댔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여기 왜 와 있는지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이제는 궁금하지 않다. 더 이상 뻐근하지 않은 몸으로, 순간순간의 이유를 찾아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요즘에는 가끔 재채기처럼 울음이 나온다. 잊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날 때마다 재채기처럼 “뿌엥”하고 울어버리는 것이다. 가끔 여유가 날 때마다 병가를 간 선배가 매달 쓰는 칼럼을 읽어본다. 나는 선배의 글을 좋아한다. 선배의 글은 말 그대로 곱다. 곱지만 켜켜이 고민한 흔적이 가득한 글을 읽으면 왠지 내가 꽁꽁 숨겨두고 있던 그리움이 터져 나오는 것 같다. 그리울 때면 또 운다. 선배의 칼럼을 읽고 선배가 남겨주고 간 작은 고양이 엽서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재채기하듯 울어버리고 만다. 선배랑 나랑은 참 비슷한 사람이다. 다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다 다친 그녀가 고고하게 다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승전보. 그 칼럼을 읽다 보면, 나는 다정함의 승리에 손뼉을 치며 운다.     


3층 사무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 사람이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재채기는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부르면 언제든 나와주는 선배의 다정함이, 글에서 나오는 감수성을 온전히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그런 다정함을 배운 것만으로도, 그런 작가를 내가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이곳에 온 사실에 감사한다. 선배가 영원히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 영원히 글을 써주면, 나는 그 글을 읽을 때마다 재채기처럼 울면서도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그런 힘이 있다. 쿨병과 퍼석함 사이에서 나도 강한 척 살아가지만, 가끔 너무 고운 진심을 맞이하면 나는 울어버리고 만다. 엉엉 울면서 그리워하고 또 눈물을 닦으며 일을 한다. 울고 있는데 자꾸만 사람들이 지나간다. 조용히 우는 데 도가 튼 것인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잃어버린 것만 같은 다정함을 고고하게 유지하고 있는 선배의 글. 그런 다정한 것들이 영원히 승리할 수 있도록, 열렬히 손뼉을 치며 운다. 휴지로 재채기한 흔적을 지우고 다시 내 퍼석한 일상에 몰두한다. 그리움이라는 건 어쩌면 재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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