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여성 느와르 영화 속 캐릭터 분석

<마녀>와 <차이나타운>의 영화 속 캐릭터의 비교 분석하기

by 쉬림프타코



이미 한참 지난 영화들이고 과제도 옛날 것이지만 학부 때 썼던 영화 분석 과제들을 삭제하기 아쉬워서 브런치에 남겨보기로 했다. 평소 글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서 꺼내보기 부끄럽지만 당시 고군분투하며 써냈던 글이 기특하고 나름대로 귀여워서 기록으로 남겨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하하


처음으로 남길 글은 2018년 7월에 작성했던 글이다. 2년 만에 다시 보니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것도 나름의 재미니 당시 글 그대로 올려야지...ㅎ



제목은 두 개의 여성 느와르 영화 속 캐릭터 분석 _ <마녀>와 <차이나타운>이다.


Ⅰ. 서론


올여름 마블 영화의 스크린 독점 속에서 입소문을 타고 꿋꿋이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가 있다. 바로 느와르 영화의 대가 박훈정 감독이 제작한 <마녀>이다. 영화 <마녀>는 두 여자배우가 중심이 되어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간다. 남자 배우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기존의 느와르 영화에서 여자배우들은 성적 대상화되거나 잔인하게 죽임 당하는 수동적인 역할로 나오기 일쑤였다. 그런 남성 중심의 서사를 그린 작품이 다수였던 영화들 속에서 두 여자배우가 주인공인 <마녀>는 신선하다. 더욱이 박훈정 감독의 전작인 <브이아이피>는 남성 느와르로 개연성 없이 여성을 고문하고 잔인하게 죽이는 요소들 때문에 여성 혐오적인 영화로 논란을 겪었기 때문에 박 감독의 두 명의 여성이 중심이 되어 끌어가는 서사는 주목받을 만하다.


<마녀>의 배우, 영화 속 캐릭터 그리고 서사 구조는 2014년에 제작된 또 다른 여성 느와르 물인 <차이나타운>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준다. 두 여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구조, 폭력성과 잔혹함을 극대화하는 말갛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의 자윤(김다미)과 일영(김고은), 흔히들 남성들의 지위라고 생각하기 쉬운 위치에서 누구보다 거칠고 잔인한 권력자 닥터 백(조민수)과 마우희(김혜수), 생존을 위해 주변 인물을 모두 제거하고 권력자에게 도전해야 하는 서사구조가 그렇다.


장르적 특성상 비슷한 느낌을 주는 두 작품이지만 자세히 보면 내용 전개 이면에 각 캐릭터의 성격과 상황 설정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에 초점을 두고 <마녀>와 <차이나타운>의 캐릭터와 내용적 측면을 중심으로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여성 느와르 영화가 대한민국 영화 시장에 가지는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Ⅱ. 두 개의 여성 느와르 영화의 캐릭터 비교

1. 존재 자체로 가치가 증명된 인물 vs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하는 인물


두 영화의 공통된 이야기 틀은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 적이 되는 인물을 모두 제거하는 내용이지만, 각 인물이 가지는 존재 가치의 유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먼저, <마녀>의 구자윤은 뇌 유전자 조작 실험으로 최고의 폭력성과 지성을 가진 2세대 실험체이다. 닥터 백이 자신의 연구 실험을 위해 1세대 뇌 실험체를 보완해 더 강력한 능력을 갖추도록 유전자를 조작했기 때문에 자윤은 이미 뛰어난 능력을 갖춘 존재이다. 더군다나 같은 방식으로 조작된 2세대 중에서도 자윤의 폭력성과 지능은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 8살 때 각 훈련을 통해 증명되었다. 즉, 뇌 유전자 조작 계의 최고 박사가 만든 실험체, 1세대가 보완된 2세대,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갖춘 자윤은 그 존재만으로도 그녀가 쓸모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인물이다. 공부하지 않아도 매번 전교 1등을 하고 처음 들은 언어도 다 이해할 수 있다. 크게 힘쓰지 않아도 자윤의 탁월함은 이미 증명된다.


반면, <차이나타운>의 일영은 태어나자마자 탯줄도 제대로 잘리지 않은 채 버려졌다. 출생과 동시에 존재를 부정당한 것이다. 마가 흥업에 팔려간 후부터 생존을 위해 자신의 ‘쓸모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사채업을 하는 마가 흥업에서 쓸모 있는 일이란 오로지 돈을 위한 일이다. 빌려 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엄마(마우희)가 시킨 일만을 하고 한 번의 실수도 용납지 않는 그들이기 때문에 그 일에 성공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어짐과 동시에 죽임을 당한다. 모든 결정은 한 번이고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그래서 일영은 살아남기 위해서 매 순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인물이다.


2. 사랑 때문에 가족을 지키는 인물 vs 사랑 때문에 가족을 저버린 인물


비슷한 나잇 대이지만 두 인물이 자라 온 환경이 다른 만큼 사랑에 대한 감정과 반응도 다르다.


<마녀>의 구자윤은 실험실에서 도망 나와 친자식을 잃은 노부부의 양녀로 살게 된다. 워낙 지능이 뛰어난 자윤이기 때문에 자신을 버리지 않고 키워 줄 부부인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찾아간 것이다. 역시나 그들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친부모처럼 사랑으로 키워주었다. 때문인지 자윤 역시 자신을 키워준 부모를 친부모처럼 생각한다. 몸이 불편한 양아버지를 대신해 일하고 치매를 앓고 있는 양어머니를 많이 걱정하고 위한다. 그리고 자윤의 단짝 친구인 명희는 평소에 몸이 약한 자윤을 도와주며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갈 때도 매니저처럼 따라다니며 신경 써준다. 이처럼 주변 사람에게 받은 사랑 때문에 자윤도 양부모와 명희를 필사적으로 지키려 한다. 그녀의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을 보면 가장 결정적인 첫 순간이 복수하러 온 적들이 명희에게 위협을 가하려고 할 때이다. 숨기고 있던 능력이 명희를 해치려고 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이는 자윤과 명희가 평소에는 투덕거리지만, 서로를 굉장히 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윤은 자신에게 사랑을 주고 자신이 사랑하는 인물들을 지키려 한다.


이에 비해 <차이나타운>의 일영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지하철 사물함에 버려졌다가 사채업을 하는 마우희에게 팔려와 어릴 때는 앵벌이 일을 했고 자라서는 채무자들에게 돈을 받으러 다니는 일을 했다. 오로지 보스와 조직원과의 관계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신 돈을 벌어오는 계산적이고 냉혹한 관계들 속에서 자라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채무자의 아들인 석현을 만나고부터 그녀의 감정에 변화가 생긴다. 처음으로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이 암흑의 세계 속에서 겪어 본 적 없던 친절에 일영은 처음에는 서툴게 반응한다. 그러나 채무 관계 때문에 돈을 받으러 갈 때마다 보는 석현에게 점점 호기심이 생기고 함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는 등의 엄마가 달가워하지 않는 일탈을 하며 감정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석현의 밝고 희망찬 모습이 일영에게 동경을 느끼게 하고 때문에 석현의 희망을 지켜주고 싶어 한다. 이성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라기보다 일영이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그녀의 세계에서는 가지면 안 되는 밝음과 희망을 지켜주고 싶은 친구로서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석현을 지키려면 일영은 식구들과의 관계를 등지고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 석현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 일영은 석현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마가 흥업 식구들을 배신한다. 자신과 반대되는 세계관을 가진 석현을 만나며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의 감정과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믿음의 균열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식구들을 저버린 것이다.


3.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초인적 인물 vs 어두운 삶을 선택하는 평범한 인물


<마녀>의 자윤은 탈인간적 능력을 갖춘 초인적 인물이지만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평범한 노부부의 양녀로 들어가 일상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뇌는 시간이 흐를수록 뇌 사용 정도에 따라 몸이 쇠약해지고 뇌가 견디지 못해 터져 버리도록 설계되어있다. 그래서 생존하기 위해 자윤은 자신의 뇌를 조작한 닥터 백을 찾아간다. 원하는 약물을 얻었지만, 실험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를 다 죽여야 했다. 박사, 남자 실험체, 수적 열세와는 상관없이 자윤은 다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센 인물이다. 즉, 평범한 인간과는 달리 자제하지 않고 본능적인 능력을 모두 발휘한다면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윤은 그녀 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가족들 곁에서 친구와 함께하기 위해서 그들을 모두 처리하고 뇌 유전자 조작센터의 본사로 떠난다.


귀공자와의 마지막 결투 중 귀공자는 “이젠 의미 없지 않나. 넌 그렇게 살고 싶냐. 나라면 ‘구자윤’으로 죽었을 거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구자윤은 그의 말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난 ‘구자윤’으로 계속 살 거야”라고 선언한다. 이는 그녀가 지향하는 삶은 구자윤처럼 평범한 삶이다. 다시 돌아오겠다. 즉,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차이나타운>의 일영은 자윤처럼 초인적인 능력이나 지능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그저 생존력이 굉장히 강한 평범한 인물일 뿐이다. 마가 흥업에서 10년 넘게 자라오면서 그녀가 했던 일은 편하다고 할 수 없다. 엄마에게 쓸모를 증명하기 위한 시험의 연속이었고 모든 순간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엄마의 명령과 이익에 의해서만 움직였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석현의 일로 가족을 배신한 후 식구들 대부분이 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살기는 더 힘들었다.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마지막으로 엄마를 죽이지 않으면 본인이 죽기 때문에 살기 위해 엄마를 죽인다. 죽는 순간 엄마는 일영에게 “이제 죽을 때까지 니가 결정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일영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 마가 흥업에 관련된 식구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에 일영은 더 이상 사채업계에 남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일영은 엄마의 자리를 물려받아 계속해서 어두운 세계에 남아있는 것을 선택했다.


4. 자윤을 물건으로 생각하는 엄마 vs 일영을 딸로 생각하는 엄마


<마녀>의 닥터 백과 <차이나타운>의 마우희는 각각 자윤과 일영을 키웠던 엄마 같은 존재이자 지배자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러나 닥터 백이 자윤에게 느끼는 감정과 마우희가 일영에게 느끼는 감정의 차이는 크다.


먼저, <마녀>의 닥터 백은 자윤이 초인적 능력을 갖추게 한 장본인이다. 구자윤의 뇌를 조작하고 훈련도 시켰지만, 자식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자윤은 본인의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자 실험물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월등했기 때문에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죽이지 않았던 것뿐이다. 자윤의 뇌에 문제가 점점 심해지고 약을 주입할 때도 그녀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10년 만에 자윤과 대면했을 때 자윤의 능력에 뿌듯해하고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닥터 백에게 자윤은 잘 만들어진 물건일 뿐이었다.


반면, <차이나타운>의 마우희의 경우는 다르다. 일영을 보자마자 자신과 닮은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삼촌에게 자신의 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을 정도로 일영을 아낀다. 엄마는 일영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흔들리게 한 사람을 직접 죽이라고 명령할 정도로 일영을 강하게 키운다. 잔인한 그들의 세계에서 일영이 누구에게도 상처 받지 않고 강하게 살아나가길 원했고 그래서 감정에 더더욱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다른 식구들이 실수하면 가차 없이 버리고 죽이지만 일영이 석현 때문에 마가 흥업의 질서를 무너뜨렸을 때도 손끝 하나 건들지 말고 일본으로 보내라고 시키는 등 기존의 마가 흥업의 규칙을 자신이 깨면 본인이 곤란해질 것을 감수할 만큼 일영을 아끼는 인물이다. 그 이유는 엄마의 말속에서 찾을 수 있다. 엄마가 일영을 데리고 있는 이유는 일영이 자랄 생각도 없고 자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영이 자라지 않는 미성숙한 존재라는 점은 엄마라고 불리는 우희가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일영에게는 엄마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일영이 다 컸다고 생각하자 자신이 쓸모가 없음을 깨닫고 기꺼이 일영이 자신을 죽이게 한다. 일영을 자신의 후계자이자 딸처럼 생각했고 상처 받지 않게 강하게 키우겠다는 그녀의 어긋난 사랑 때문에 일영에게 그런 감정을 절대 드러내지 않지만 죽음과 함께 전해 준 입양 관계 증명서는 마우희의 일영을 향한 마음을 잘 나타낸다.


Ⅲ. 결론


<마녀>와 <차이나타운>은 몇 없는 여성 느와르 속에 유사한 구조와 느낌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기존 영화들에서 여자배우들에게 부여하는 여성성을 배제하고 냉혈하고 잔혹한 감정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비슷한 나이의 학생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능력과 환경이 다른 상황 속에서 살게 되는 방식과 그 방식이 그들의 삶에 어떻게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보면 두 영화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권력자의 자리에 앉은 여성이 조직을 유지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다른 주인공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등 유사한 구조 속에서도 각 캐릭터의 대비되는 성격과 특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일간에는 예측할 수 있는 서사나 새롭지 못한 클리셰 등의 향연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여성 중심의 느와르 영화가 영화 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크다. 남자 배우 중심의 느와르 영화가 대부분인 영화 시장에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여자배우들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들이 연기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넓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마녀>와 <차이나타운>의 경우 선정적이지 않은 서사로 영화를 구성한다 는 점에서도 기존의 같은 장르의 영화와는 차별성을 띤다. 이처럼 기존 느와르 영화에서 성적 대상화되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던 피지배 적이고 수동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이 여자배우들의 몫이라고 여겨졌던 편견을 깰 수 있는 서사를 그린 영화가 계속해서 제작되고 그에 관해 이야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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