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백과 투쟁을 담은 영화이다. 기존의 위안부 피해자의 피해 과정을 다루는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그녀들 개인의 현재 삶에 관한 이야기와 정부의 도움 없이 여성들 간의 연대로 일본 정부와 싸우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았다. 그 속에서 평소 헌신적인 사랑의 형태로만 표현되기 쉬운 모성애적 이데올로기와 여성과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냈는지 주목해보자.
어머니의 존재는 항상 위대하고 성녀(聖女)의 이미지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위안부 피해자처럼 성(性)적인 문제와 연루되면 안 되는 순결하고 무결한 존재로 인식한다. 일례로 택시기사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그는 당시 몸 팔아 돈 벌려고 했던 여자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인제 와서 또 돈을 얻어내기 위해 나선다는 말을 한다. 그러자 정숙은 그게 당신 어머니였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하며 택시에서 쫓겨난다. 이 장면에서 택시기사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황을 두고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성적으로 문란한 혹은 더러운 여자로 비난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제3자가 아닌 자신의‘어머니’라는 존재에 대입하면 뱉어서는 안 되는 말이 된다. 이것이 비단 택시기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시 시대상을 보면 매우 보수적이고 여성이 피해자라 할지라도 성적 문제와 엮이면 손가락질받을 것을 걱정해 피해 사실조차 숨기고 살았어야 했다. 이것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됐을 땐 그 비난이 피해자에게 쏠리고 성(聖)녀인 자신의 어머니는 그런 성범죄와는 연관되어 더러운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당시 사회적 인식을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문정숙은 싱글 맘으로 딸 혜수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바쁜 회사를 운영하느라 딸에게 헌신하지 못한다. 주변에서 이를 책망하지만, 이것은 워킹맘에게 부과되는 육아와 일 간의 완벽함을 요구하는 사회의 담론이다. 두 가지 모두를 잘 해낸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정숙은 사장으로의 능력이 더 클 뿐 엄마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직설적이고 할 말은 해야 하는 정숙의 성격이 딸에게도 드러나지만, 이것은 싱글 맘으로서 혼자 딸을 책임지고 일도 병행하기 위해 사회에서 강하게 살아남아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다.
반면 정길은 근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성애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인물이다. 순모에게 헌신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을 준다. 폭력적인 순모를 매번 감싸고 희생하지만, 이것은 모성애만이 아니다. 모성애의 형태를 한 금복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포함된 것이다. 순모를 또 다른 금복으로 보고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고 대신 끌려간 금복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의 표현으로 순모에게 필사적으로 희생하는 것이다. 그것을 갚을 방법은 금복의 자식인 순모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스토리에서는 여성과 어머니를 분리해 보고 성스러운 사람과 성적인 사람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사회적 시선과 두 가지 다른 모성애의 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성범죄의 피해자가 됐을 때 그것이 흔히 말하는 ‘꽃뱀’이라며 돈을 위해 작정한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은 현시대에도 만연하다. 그런 2차 가해들 때문에 피해자들이 고발하기 어려워하고 진짜 피해자는 무결해야 한다. 혹은 문란하지 않은 여성은 성범죄와는 관련 없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이 사회가 실제로는 어머니와 여성이라는 분리할 수 없는 키워드를 통해 그 모순을 보여준다. 그리고 직접 낳은 자식이라도 헌신적이지 않을 수 있고 직접 낳지 않았더라도 더 헌신적일 수 있는 여러 형태의 모성애가 있다. 이것은 사람의 차이, 환경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석적이고 진리의 형태를 띤 모성애는 허상이다는 것을 두 개의 다른 모성애의 형태와 각 개인이 지닌 사연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