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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우드 Feb 18. 2022

날씨 예보관으로 산다는 것

야 진짜 여기 갈 거야? 응. 힘들어도 괜찮아. 원래 꿈이었어.

아직도 20년 여름이 눈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좋은 기억도 오래 남지만 나쁜 기억도 오래 남는데, 그 여름날의 기억은 후자다.

그 기억을 기록하면 A4 깜지 3장은 쓰기 때문에 나중에.. 시간 나면 써봐야겠다.


나는 기상예보관이다.

슈퍼컴퓨터에서 산출된 자료를 보고 당일과 내일의 예보를 생산하는..

(사실 모래 이후도 예보하지만, 자료의 한계로 예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리고 당장 오늘/내일의 중요도가 훨씬 크니 이렇게 기술했다)

그러나 여름에 난 기상 감시관이 된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자료들이 실황(현재의 날씨 상태)을 제대로 모의(자료가 미래의 날씨를 표출하는 것) 하지 못한다.

내가 보는 자료와 현재가 안 맞으니, 당연히 미래의 날씨도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레이다 영상과 위성영상을 보며 단순 추적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 부서에 지원한다.

하지만, 이런 단순 추적이 가진 큰 한계들로 인해 2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미래에 대한 판단이 바뀐다.

그러니 계속. 계속. 5분마다. 3분마다. 1분마다 추적을 실시하고, 토의를 하고, 지원을 한다.


직접 일을 하기 전에는 몰랐다. 이렇게나 업무강도가 높은지.

그러나 직업에 대한 평판도 좋지 않고, 보상도 강도 대비 적다.


출근 전에는 기상청 날씨 ON을 보며, 다른 사람들의 분석을 파악했고,

점심시간에는 스마트폰의 기상레이다와 위성영상을 보면서 먹었다.

그리고 예보 후 퇴근해서 자고 일어나선, 띵한 머리를 싸매고 내가 낸 예보가 맞았는지 확인했고, 또 좌절했다. 쉬는 날에도 지인이 날씨를 물어보면, 그걸 말해주기 위해 내 시간을 써서 분석하고 말해준다.

(물론 지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기에 싫지는 않지만, 그만큼 날씨라는 업종이 일과 삶의 구분이 없다는 의미다. 그래도 지인한테 "예보 잘 맞던데?"라고 들으면 내심 기분 좋다)

위와 같은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몇 년이 지났다. 하지만 악기상을 마주하면 또 틀린다.

정확히는 강수의 양과 유입되고 빠져나가는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한다.

이 업계에서 몇십 년을 일한 사람들도 그런 날씨를 마주하면 "아. 진짜 모르겠다.", "답이 없다."라고 한다.

그 말에 '나는 겨우 몇 년 일했으니 그럴만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잠깐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몇십 년을 해도 정확한 예보관이 될 수 없다'는 더 큰 절망과 무력감을 느낀다.


운동을 오래 하면 몸이 좋아지며, 발표를 계속하면 순발력과 말주변이 좋아지고, 그림을 그리면 점점 더 잘 그리게 된다. 그러나 기상은 파악과 분석능력이 좋아지더라도 틀리며, 그렇게 틀리는 날엔 "일 제대로 안 하네"라고 욕먹는다. (물론 그렇게 뭐라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지만, 큰 도화지가 잉크 몇 방울에 물드는 것처럼, 내 심정에 큰 영향을 준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밖에서 보면 '일 대충 한 사람'이 된다.




완벽한 기상예보관이 나온다면, 그때는 기상예보관이 사라지는 날이다.

기상예보관은 슈퍼컴퓨터 자료를 보고 예보한다.

향후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자료가 제공되는 시대가 온다면 굳이 그 자료를 보고 예보할 사람이 필요 없다.

그냥 그 자료 그대로 보고 대응하면 되니까.


어릴 적엔 가족들이 내 키를 재어주었다.  줄자가 좀 구부러지거나 수직이 아니면 살짝 더 크게 나왔다.

하지만, 이젠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병원 가면 자동으로 키를 재주는 기계가 있고, 또 그게 더 정확하니까.

이처럼 슈퍼컴퓨터 자료가 정확하게 나온다면, 기상예보관(키를 재주는 사람)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기상예보관은 미래에 사라질 직업에 포함되지 않는다.




날씨의 중요성은 매우 크지만..

기상재해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가져오며, 항공업계에선 생명이 달려있다. 일상에선 안개만 짙게 끼어도 교통이 혼잡해지며 사고까지 일어난다.

그러나 그런 중요도에 비해, 예보 인력을 대하는 태도와 보상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며,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마치 도둑이 5,000원짜리 자물쇠를 부수고 1,000만 원짜리 자전거를 가져가면, 자물쇠 탓을 하는 격이다.

특히, 예보하는 컴퓨터에 겨우 4GB짜리 RAM이 달린 건 좀... 아닌 것 같다.

1분 1초가 급한데, 렉 걸려서 분석을 못하고, 컴이 셧다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젠 익숙하다.

저녁에 밥도 못 먹고 열심히 했지만 죄송하다고 하는 상황도 익숙하다.




그래도..

매우 주관적이고 거만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나처럼 스트레스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이유를 탐구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일이니까 해야지라는 느낌보다, 항상 왜 그럴까?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이런 내 성향과 이렇게 잘 맞는 일이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주 가끔.. 이 업계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내가 여기서 평생을 일해도, 인정보다는 받는 욕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평판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가정적인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쏟는 에너지가 'life'보단 'work'에 가 있다는 것이고, 가정에서 바라볼 땐 그만큼 내가 내 사람을 챙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함께할 시간이 없다면 먹여 살릴 능력이라도 되어야 할 텐데, 여유 있게 버는 직업도 아니다. 그래서 힘들게 일하는 아버지를 보면 내 선택이 이기적인 건 아닌가 생각도 한다)

내 상사를 보면 날씨가 나쁠 때 퇴근을 못한다. 만약 그때가 주말이라면 출근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책임을 지면서 가정에도 충실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든다.

'출근 안 하고 거기 부서 사람들에게 맡기면 되지'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 직접 그걸 본 이상.. 아니다.

(직급이 높을수록 예보에 대한 신뢰도 또한 높은 이유도 있지만, 몇 년 안된 사람의 경험과 재량으론 역부족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단점들이 있더라도 내 성격과 잘 맞기 때문에 그만둘 것 같진 않다.

만약, 그만둔다면 내 책임으로 인해 심각한 사건이 발생한 경우이겠지만, 내 성격상 그런 일이 발생할 여지는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일을 유지하더라도 내 life를, 내 사람을 챙길 수 있는 밸런스를 찾아가야겠지.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 일을 택할 것이다.

물론, 그전에 과거의 나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S.. T.. A... Y...




이건 그냥 농이고ㅋㅋ

그냥 기대는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네가 생각한 그런 이상적인 직업은 아니라고. 

그냥 평범하다고. 남들과 똑같이 힘들고 어떤 날엔 기쁘..(?) 힘든 직업이라고.

그러니 각오하고, 맘 더 단단히 먹고 오라고.

오기 전에 가족이랑 친구랑 시간 좀 많이 보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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