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슬기로운 환자 생활
경아와 현주가 다녀갔다. 동숙이는 코로나가 수도권에 다시 확산하는 양상이라 못 왔다고 했다. 제생병원이 지난 3월에 그리 유명세를 치렀으니 십분 이해되는 바였다.
근래 지속되는 약물 부작용이 아파트에 도착했다는 현주의 전화를 받을 때에도 지속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경아가 메밀국수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검색해 발견한 나도 몰랐던 우리 동네 맛 집엔 가야 할 것 아닌가? 기대만큼 예사롭지 않던 판 메밀국수의 맛 때문인지, 3시간가량 유쾌한 친구들과의 대화 덕분인지 다행히 오늘 외출에선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왜 기분이 이럴까?
40대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부동산 이야기, 부의 대물림 뭐 이런 이야기에 너무 몰입한 탓인가. 허탈한 이 기분은, 작년 수술하러 들어갈 때, 목걸이며 절에서 내 쾌유를 기원하며 받은 염주 같이 몸에 걸친 것뿐만 아니라 충격받은 엄마를 대신해 내 휠체어를 밀어 수술장 앞까지 온 이모와도 헤어져 그 광활한 수술장 안으로 홀로 들어서 다른 휠체어들과 함께 대기하던 그때의 느낌이랄까.
완전한 혼자.
'결국은 혼자'라는 우리가 평소에 습관처럼 반복하는 말을, 죽음 앞에서 온몸으로 느꼈던 그 순간의 허무함이 다시 몰려왔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결국 산 사람들은 살아간다. 또 내가 아무리 억울해한다 해도 나의 지인들 중에는 나의 건강 상태를 '타인의 더 큰 불행'으로 여기며 자신에게 이런 불운이 찾아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만 그 사람이 한때 절친이었던 너라는 점은 여전히 아쉽지만......
사실 우리의 우정은 20년 전 그 밤에 막을 내렸다. 내가 싫어했던 담임부터 내가 사랑하는 엄마까지, 모두들 내게 너는 좋은 벗이 될 수 없다고 충고했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이제 이렇게 운명을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는 나의 처지를 즐겁게 바라보는 너의 모습을 나 또한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20년 전에도 수 천 번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미움은 미움을 낳고 자신에게 반복되어 돌아올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조차 전생이든 현생이든 나로 인한 결과고 결국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 밤, 돌아오는 길의 황망함은 쉬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