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슬기로운 환자 생활
정임 이모와 통화 중에 이모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엄마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듣게 되면, 그걸 예전처럼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그게 되질 않으니 그렇게 짜증 내는 것으로 나타나는 모양이야. 아침에 정신이 제일 맑으니 그때 네 방으로 와서 네게 그러는 것 같아."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날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집안의 해결사로 살아오셨다. 덕분에 나는 사십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집 계약을 직접 해 본 적이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가세가 기울었을 때조차 엄마는 치매인 외할머니를 모시며 내가 학업을 마칠 수 있게 최선을 다하셨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런 엄마가 정신이 다시 맑아지시니 스스로의 현재 상태를 인식하시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나실 거라는 이모 말씀에 일리가 있다. 안쓰럽다.
최근 바꾼 신경과 약 때문에 낮에도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일이 부쩍 늘었다. 그나마 남은 엄마의 낙은 젊은 시절부터 취미셨던 뉴스 시청. 그런데 내가 다른 채널을 보고 있는데 뉴스 채널로 돌려버리실 때가 있다. 내가 어쩌다 보는 프로그램을 그렇게 컷 하시면, 나도 엄마에게 순간적으로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이모 얘기를 들은 뒤로는 그럴 때도 예전과 다르게 곧 마음이 짠해진다.
이제 엄마를 얼마나 볼 수 있다고, 언제까지 엄마와 일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내가 감히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가 하고 말이다. 지금 우리 둘 다 아픈 이 갑작스러운 상황은 특수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자신에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장담할 수 있는 사람 누구일까?
이런 내 마음을, 지난 1년 반 동안 내가 병원과 세상에서 처음 느껴본 뼈아픈 무기력을 겪은 다른 의사도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할 의사도 변호사도 많지 않다는 걸 절감했던 지난 1년 반의 시간. 비록 타국의 의사지만 동병상련으로 요즘의 내 실망감에 위로가 된다. 미국에서는 의사 교육 프로그램에 미리 중증 환자의 가정방문을 하게 하여 먼저 환자 주변의 환경과 그로 인한 의료 외적 상황도 살피게 한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꼭 필요해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요즘엔 의사 국가고시에 실기시험이 도입되면서, 환자 케이스 중심으로 문제 해결력을 기르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가령 암 환자에게 처음으로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상황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한다. 교육도 변하긴 한다.
서로가 건강하게 서로의 곁에 있어주는 것, 그리고 돌봄.
이 이야기는 지금의 내 처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