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 가는 길
사람사이의 관계에선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우리는 듣고, 말하면서 상대방의 의도와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 하물며 의사와 환자사이에서도 말해 무엇하랴.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언제 아픈지 우리는 질문하고 들으며 병태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환자들이 똑똑하고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병을 설명하진 못한다. 심지어 듣고 말하기 조차 안되는 경우가 있다. 시골 한의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기본적으로 '듣는' 행위가 잘 안된다. 어느덧 시골 한의원 근무 3년차. 나는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큰 울림통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득음을 한 나조차 뚫을 수 없는 귀를 가진 할머니가 있었다. 고막계의 절대 방패. 이건 절대방패 할머니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이다.
방패 할머니는 거의 듣지 못하신다. 후천적으로. '듣고' '말하기'에서 '듣고'가 빠지고 '말하기'만 남았다. 처음 만난 날 할머니는 80년의 세월에 대해 일장연설을 시작하였고 나는 그 세월 속에서 어떻게 아픈지를 밝혀내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했다. 부족한 정보를 더 모으고 싶다면?
나 :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할 : "뭐???"
나 : "언제부터 아프셨냐구요!!"
할 : "뭐라카노. 뭐라카는지 안들린다."
나 : "언제부터!!" "언!!!제!!!부!!!터!!!!"
나는 그날 점심으로 얻은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붓고서야 정보를 한 개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진료를 끝난 할머니가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할머니의 핸드폰이 울렸다.
할 : "여보세요. 누고??!!"
전화 : &**(^%%^&
할 : 뭐라카노. 뭐라카는지 안들린다. 어여, 여기 함 받아봐라.
할머니는 직원 A에게 전화를 넘겼다. 연세가 많은 독거노인에게 요양보호사가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
할 : 누구던데?
직원A : 도우미요 도우미!
할 : 누구??
직원A : 도!!우!!미!!!
할 : 동장????
직원 : 도우미!!!
한의원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할머니와 직원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시작된 한의원의 가족오락관. 고요속의 외침. 나는 할머니가 "동장??"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웃지않기 위해 애를 썼지만 안 들리는 척 하기에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ㄷ으로 시작하는 모든 단어들이 나오고, 결국 안되겠던지 직원B가 바통을 넘겨받는다.
직원B : 보호사요!! 요양 보호사!!
할 : 누구?
직원 B : 보!!호!!사!!
할 : 병원??
나는 웃음을 참느라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침을 내려놓았다.
ㅂ으로 시작하는 모든 단어들이 나오고 드디어 할머니는 보호사를 알아들었다.
할 : 아!! 보호사!!
순간 나는 박수를 칠 뻔했다. 그로부터 몇달간은 방패할머니를 볼때마다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이를 꽉 물어야했다.
오랫동안 방패 할머니와 나와의 관계는 오로지 일방통행이었다. 할머니는 말하고 나는 들을 뿐인. 하지만 고요속의 외침 사건으로 인해 나는 할머니의 팬이 되었다. 나에게서 할머니로 흐르는 일방통행 애정. 그렇게 우리는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