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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즈 Dec 03. 2022

단풍나무 이야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끝없이 펼쳐진 어느 들판에 

두 단풍나무만이 우뚝 서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두 나무 모두 거대하고 멋있어서

이 나무들을 보려고 아주 먼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구경하려 몰려들었죠.

사람들은 이 나무들에게 이름을 붙여줬는데

한 나무는 하늘 높이 우뚝 곧게 자라서

뚝나무라고 이름을 붙여줬고

그 옆에 있는 나무는 가지가 풍성하게 자라서

풍나무라고 이름을 붙여줬죠.


사람들은 높이 솟은 뚝나무는 멀리서 보기를 좋아했고

가까이 와서는 잎이 풍성한 풍나무에 더 많이 모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뚝나무가 옆에 풍나무에게 말했습니다.


<풍나무야 나는 1년 내내 보살펴서 잘 키운

내 잎들이 색이 변하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게 싫어.

그래서 올해는 내가 있는 힘을 다해

나의 잎들을 지켜낼 거야.

겨울만 이겨낸다면 다음 해에

이 잎들이 너보다 두 배는 

더 커질 수 있겠지?>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풍나무가 

뚝나무에게 말했습니다.


<뚝나무야 잎이 더 커지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오는데도

네가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으려면

잎들에게 충분하게 물도 주고

영양도 전달해줘야 하는데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러자 뚝나무는 풍나무를 쏘아보며 말했습니다.


<풍나무 너는 매사에 부정적이야.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겁을 먹으면

어떻게 큰 신선나무가 될 수 있겠니?

나 혼자서라도 이번 겨울을 이겨내서

내 소중한 잎들을 지킬 거야.

사람들이 크고 멋진 내 잎들 때문에

나를 더 좋아하게 되더라도

나중에 후회하지마!>


풍나무는 가만히 뚝나무의 말을 들으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가을이 오자 풍나무는

겨울을 준비했습니다.

봄, 여름 정성스럽게 키운 잎들 하나하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잎들에게 보내던 자신의 푸른 기운을 끊었습니다.


푸른 기운으로 생명력 넘쳤던 잎들은

곧, 푸른 기운을 잃어갔습니다.

수많은 잎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빨갛고, 노랗게 변한 모습에

어떤 잎은 무서워했고,

어떤 잎은 즐거워했으며,

어떤 잎은 슬퍼했고,

또 어떤 잎은 행복해했습니다.


변해가는 잎들을 보자

풍나무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모든 잎들이 함께 내년으로

또 다음 해로, 그 다음 해로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까요.

자기 손으로 키운 잎들을

자기 손으로 끊어 내는 그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요.


그때, 그런 나무의 마음을 위로해주듯

풍나무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봐주었어요.

잎들과 함께 영원하길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도 아는지

사람들은 잎들을 사진으로 잠시나마 남겨주었죠.

옆에 있던 뚝나무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수많은 울긋불긋 단풍나무 사이에서

홀로 푸른 빛을 유지하고 있는 뚝나무가 

돋보였기도 하고, 

가을이 되어도 단풍이 들지 않는 것을

신기해했기 때문이죠. 


뚝나무는 봄, 여름 아주 정성스럽게 키운 잎들을

가을이 왔지만 푸른기운을 끊어내지 않았어요.    

푸른기운은 뿌리로부터 영양을 빨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땅이 차갑고 마르면 굉장히 힘든데도

뚝나무는 그 고통을 참고 있었던 거죠.

매년 가을이 되어 잎들을 잃는 그 순간은

뚝나무에게 너무나도 참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풍나무의 잎들은 모두 땅에 내려앉아

풍나무의 뿌리를 따뜻하게 덮었습니다.

하지만 뚝나무의 잎들은 

아직도 푸른빛이 돌고 있었죠.

뚝나무는 풍나무에게 말했습니다.


<푸..풍나무야. 어떠냐? 

난 푸른 잎들을 아직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넌 잎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람들은 나를 보려고 여기까지 오는데

널 보려고는 아무도 안 오잖아.

부럽지?>


풍나무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주 깊은 잠에 든 것 같았죠.

뚝나무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잠이 자꾸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소중한 잎들을 잃을 수 없었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던 거죠.

이번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추웠나 봐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외롭게 서있던 뚝나무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 순간이었어요.

똑. 똑. 똑.

얼음이 녹아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뚝나무는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습니다.

따뜻한 봄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죠. 

하지만 뚝나무는 

앙상해져버린 자신의 나뭇가지들을 보았습니다.


깜박 잠이 든 사이 겨울이 지나갔고,

푸른기운을 받지 못한 잎들은 

단풍이 되지도 못한 채 얼어서 떨어진지 오래였죠.

뚝나무는 너무나도 슬펐습니다.

사랑스러웠던 잎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몇날 며칠을 고통스러운 슬픔 속에서 지내며

봄의 기운을 머금은 땅의 푸른 기운도 

먹지 않았어요.

점점 뚝나무는 메말라 갔습니다.


어느새 잠에서 깬 풍나무는

그런 뚝나무를 위로했지만 

뚝나무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어요.

뚝나무는 사랑했던 자신의 잎들이

눈앞에 아른 거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자신도 잎들처럼 

사라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뚝나무는

문뜩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어요.

봄비가 내리고, 까치가 앉았다 가도

떠나간 잎들 생각에 아무 느낌도 느낄 수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죠.


뚝나무는 눈을 힘겹게 열고는

간지러운 머리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희미하지만 아주 연한 녹색의 어린잎 하나가

메마른 나뭇가지를 뚫고 태어나고 있었어요.

그 순간, 뚝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어요.

그것이 무슨 감정인지 알지 못했지만

뭔가 뜨거웠고, 그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가슴으로,

가슴에서 다리까지 내려가더니

다시 가슴으로 올라오는 게 느껴졌죠. 


금방이라도 톱밥가루처럼 사라질 것 같았던 뚝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막아두었던

뿌리 입을 활짝 열고 푸른 기운을 끌어당겼어요.

뚝나무는 그것이 자신이 한 게 아니란 걸 느꼈습니다.

마치 그렇게 되기로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머리 꼭대기에 태어나고 있는 한 생명을 위해

마치 자신이 쓰임 받는 느낌이었죠.


뚝나무는 그 거대한 흐름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러자 고통스러웠던 죄책감과 슬픔이

거대한 흐름을 타고 떠내려가 버렸어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태어나고 있는 

저 높은 곳에 하나의 잎과 연결되었죠. 


뚝나무는 자신이 나무임을 인정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어린 잎에게

지난 해 있었던 일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도 다짐했죠.


추운 겨울 얼어버리게 하지 않겠다고.

노랗고 빨간 너의 본연의 색깔을 

꼭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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