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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즈 Jan 29. 2023

생각 많은 소년

이 많은 생각들 중에 정답이 있을까?

별이 유난히도 반짝이던 날 밤,

아직 앳된 얼굴의 한 소년이

무작정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웬 오래된 컨테이너박스 앞에

모닥불을 켜놓고 앉아있는 한 백발의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소년을 발견하고는 불러 세우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소년은 딱히 목적 없이 걷고 있었고,

그곳엔 노인 혼자밖에 안 보였기 때문에

혹여 노인이 나쁜 마음을 먹고 자신을 공격하더라도 

몸집이나 힘으로나 자신이 질 것 같지는 않았기에

경계심을 떨쳐내고 천천히 다가갔다.

노인 앞에 벌겋게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을 보니

왠지 모르게 더 가까이 가보고 싶기도 했다.     


소년이 다가오자

노인은 아주 천천히 간이 의자 하나를 

모닥불 가까이에 펼쳐주었다.

소년은 넉살 좋게 노인이 펼쳐준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뭐하고 계시는 거예요?”

“나? 자넬 기다리고 있었지 허허”

소년은 노인이 농담도 하는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엔 노인이 소년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고민이 있어서 나를 찾아왔어?”

“제가 찾아왔다고요? 무슨 소리세요. 

할아버지가 절 불러서 왔잖아요.”

소년은 이 노인이 치매가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아니지, 자네는 가로등도 없는 이 캄캄한 밤길을 걷고 있었어.

아마 자네 마음도 캄캄해서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렇게 내가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고.”

“그건 맞아요. 그런데 내가 고민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인을 쳐다봤다.


노인은 하얀 백발과 같은 색인 눈썹과 콧수염 사이로

미소를 보였다.

“어떻게 알았나 묻지 말고 정말 궁금할 걸 물어 보게나”

소년은 소설 속에 나오는 마법사를 

현실에서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실 소년이 집을 나와 밤길을 걸었던 이유는

오늘따라 머릿속에 온갖 질문들이 

한꺼번에 올라와서 괴로웠기 때문이다.

이 생각들은 끊임없이 혼자서 질문하고 답하며

끝없는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이 때문에 소년은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질문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었다.

‘남들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 걸까?’

‘삶의 목적, 내가 태어난 목적이 있을까?’

‘죽은 다음 천국 가려면 봉사활동이라도 해야 할까?’

답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고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무작정 집을 나와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득 소년은 이 노인을 만난 지 얼마 안됐지만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생각들이 

계속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처음 노인을 봤을 땐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자

노인을 치매 걸린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말을 듣자

이젠 도인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년은 살면서 처음으로 생각이라는 것에 의문이 들었다.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가고 변하는데

이 중에 정답이란 게 과연 있는 걸까?’     


생각에 더 깊이 빠지려는 찰나,

소년은 노인이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처음엔 이 사람이 누군 줄 알고 

속마음을 털어 놓냐는 생각 때문에 살짝 망설였지만

차라리 처음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슨 말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노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질문들이 올라와요.

대부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선택의 문제들이 많은 것 같아요.

대학은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열심히 살아야하나 적당히 살아야하나,

삶의 목적이란 게 있을까 없을까...

그런데 답을 못 찾겠어요.

이게 답인가 싶으면 저게 답인 것 같고

계속 정답이 바뀌는 것 같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노인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는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자네 교회 다니나?”

“아니요. 저는 무교에요. 그런데 천국은 있을 것 같아요.”

“나도 종교는 없네.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 하나는 알지.

성경에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처럼

예수의 제자들이 쓴 글들이 담겨있는데

그 중에 도마라는 제자가 쓴 도마복음이라는 게 있어.

원래 초대교회에서 성경으로 사용되었는데

정치적으로 소각당할 위험한 시기를 맞게 되네.

당시 로마의 태양신을 섬기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의 왕권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파기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지.

그래서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항아리에 도마복음을 넣어서 모래에 숨겼다네.

그러다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후에

이 도마복음이 

요한외경, 빌립복음, 마리아복음과 함께 발견되었지.

그러데 도마복음의 특이한 점은 다른 성경의 내용처럼

예수가 행한 기적이라든지, 예언이 이루어졌다든지,

동정녀로부터 탄생했다든지, 재림이나 심판의 이야기 없이

오직 순수하게 예수가 말했던 어록만이 적혀 있었다는 거야.”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재밌는 이야기 해주신다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소년은 지루하다는 듯 약간 퉁명스럽게 말했다. 

“허허, 미안하네. 사실 자네한테 들려주고 싶은 문장이

이 도마복음에 쓰여 있거든.”

“뭐라고 쓰여 있는데요?”

갑자기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말에

소년은 급하게 자세를 고쳐 앉고는 두 눈을 말똥거렸다.

“허허, 고놈 참.

도마복음에 적힌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어.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금식은 어떤 방식으로 할까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선을 베풀까요?

음식은 무엇을 먹을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거짓말하지 말라.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 말라.

하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밝혀지지 않고서 감추어질 것은 아무것도 없고,

드러나지 않고 가려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년은 눈을 끔벅 거렸다.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뭔가 찾고 있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장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단다.

하지만 너의 고민들을 예수의 제자들도 똑같이 했었다는 거야.

그래서 예수에게 물어보았단다.

그리고 예수는 대답했지.

생각에 속지 말고 진실하라고.

끊임없는 생각에 속게 되면 

너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하게 돼.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것 같지?

이렇게 해야 할까, 저렇게 해야 할까 고민스럽지?

그것들은 전부 생각이야.

생각이 너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고,

너는 그 수많은 생각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끝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야.

하지만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만족할 수 없지.

더 좋아 보이는 것들은 계속 나타나고,

가슴 깊은 곳에서는 이런 게 아니라는 

직관 같은 게 계속 올라올 테니까. 

하지만, 너가 만약 정말 진실해지기로 한다면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사실, 이미 넌 그 모든 정답을 알고 있단다.

정답을 모른다는 현상은

정답을 알고 있었을 때만 나타나니까.” 


소년은 다시 한 번 눈을 끔벅 거리며 생각했다.

‘내가 정답을 알고 있다고?

정말 그럴까?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면

도대체 난 무엇을 찾고 있는 거고

왜 난 모른다고 생각하지?

어라! 생각?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 소년을 바라보던 노인은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사람들은 방황을 잘못된 것이라고 하지만

방황은 아주 소중한 것이라네.

왜냐하면 방황을 시작할 때

우리를 감싸고 있던 껍질들이 깨지기 시작하거든.

그래서 방황이 끝났을 때 

우리는 한층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게야.

마음껏 제대로 방황 하게나 젊은이.

마침내 모든 껍질이 벗겨졌을 때

모든 질문도 벗겨졌음을 알게 될 걸세.

방황의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더라도

절대, 절대 멈추지 말게나.”     


노인은 이 말을 끝으로 

모닥불에 장작을 몇 개 더 넣더니

컨테이너박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년은 모닥불을 응시한 채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닥불이 꺼지고, 뻘겋던 숯마저 

하얀 재가 되었을 때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돌아온 길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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