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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주 Apr 28. 2020

당신이 힙하다는 걸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어

영화 <영어완전정복>

힙 심은 데 힙 난다?


 아주 유명하지 않은 영화를 우연히 관람했다. 보통 영화를 선택할 땐 선호하는 감독, 배우, 장르 순으로 고려하는데, 순전히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영화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귀중한 2시간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괜찮은 영화를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과시할만해야 한다. 순전한 호기심으로 힙하지 않은 걸 보려면, 일단 이걸 봤다는 걸 절대 들키지 않아야 하며, 별점을 높게 주어서도 안 되고, 평을 쓰더라도 '나는 선입견이 없는 사람이지만 별로인 건 별로라고 말한다' 정도의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영화를 과시 삼아 본다는 데 이견을 가지는 사람이 많겠지만, 취향을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현대 사회의 행태를 모른 척하기란 힘들 것이다. 이것은 비단 현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과시와 허영심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찬찬히 뜯어보자. 무엇이 과연 과시할만한 것인가? 누구는 각종 영화제를 휩쓴 작품을 힙하다고 말한다. 누구는 쉽게 보기 어려운 작품을 독립영화관에 들락거리며 찾아보는 걸 힙하다고 말한다. 누구는 아무도 힙하다고 말하지 않는 B급 이하를 힙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근본도 연고도 없는 작품은 어떻게 평가될까? 자신만의 멋으로 세상과 맞서 당당히 패배한 영화, <영어완전정복>이다.


세 줄 요약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영주'는 외국인 민원인을 상대하기 위해 영어 학원에 등록한다. 그곳에서 만난, 바람기 넘치는 남자 '문수'. 영어로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학원에 다닌다는 문수의 마음을 영주는 가질 수 있을까?


 이나영, 장혁 주연의 2003년 산 영화를 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혼란의 세기말이 지나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득 머금은 채 혜성처럼 등장한 이 작품은 귀여운 내레이션, 독특한 애니메이션 표현 방식, 게임 화면 채용 등 분명 실험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까지 실험적이지는 않다. 실험적이라 함은 응당 관객과 시네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야 하는데 그러기엔 본 작품이 한 실험들은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을 한 번 살펴보자. 안경 쓴 너드 역할의 이나영과, 촌스럽지만 잘생긴 장혁, 의욕이 넘치지만 서툰 영어 선생님, 캐릭터 확실한 팀원들은 각자의 역할에 아주 충실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 낸다. 영화의 배경이 모두 동네 언저리고, 익숙한 아파트와 동사무소의 풍경으로 친밀하고 따뜻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애초에 분위기로 승부하는 영화가 아니니만큼 또 그렇게까지 멋지지는 않다. 주제와 결말은 사랑스럽지만 애매하고, 분명 독특하지만 진부하기도 하고. 도대체 뭘로 승부하는 영화인 걸까? 이 영화가 남기는 인상이라곤 현재 <아수라> 등 꽤 흥행하는 작품을 뽑아내는 감독의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을 엿보는 것 정도다. 괴작이라고 불리기도, 운이 나빴다고 하기도 적절하지 않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과거에나 현재나 힙하지 않은 영화다.


힙의 굴레


 그렇지만 나는 이 영화를 힙하다고 느껴버렸다. 왜인지 모른다. 일단 느낌이 오자 그것을 알아채고, 어디서 그 느낌이 오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음악? 특별하지 않다. 내레이션? 뻔하다. 내러티브? 워낙 톡톡 튀어서 다음 장면이 예상하기 어렵긴 했지만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뻔하고 진부한 모든 것들이 자기 귀엽지 않냐며 굉장히 자신감 넘치는 어필을 하니 거부하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이 거친 자본주의의 세계를 어떻게 헤처 나가려고 그런 클리셰와, 그런 캐릭터와, 그런 스토리로 뻔뻔스럽게 어필을 하느냔 말이다. 누가 이런 영화를 귀여워해 준다고! 그렇지만 한 번 그를 귀엽다고 생각한 이후로, 필자는 줄곧 이 영화의 '셀링 포인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00년대의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빈티지함을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병맛의 향연인 대사와 내레이션은? 아니, 이 영화가 힙하다는 걸 왜 다들 몰라주지. 대체 힙하다는 건 뭐지? 고민은 꼬리를 물고 고뇌로 이끌었다.

 결국 힙이라는 건 남들과 다름이다. 내가 이 영화가 힙하다고 느낀 건 현재 나오는 '힙한 영화' 카테고리에 전혀 속하지 못해서이고, 그 시대에도 소외감을 느끼는 애매한 무언가였을 것이며, 아무도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영화를 '좋다'라고 느낀 나 조차도 이 영화를 봤다고 자랑하고 싶지가 않다. <안티 크라이스트>를 봤을 때 스트레스가 극심했다며 투정 섞인 자랑을 하고 다닌 것과는 완전히 반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힙'이라는 것이 현재 절정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혹여나 이 영화가 90~00년대 감성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에게 재조명되며, 촌스러운 스타일로 주목받는다면 작품은 빛을 잃고 버려질 것이다. 마이너 할수록 취향은 빛을 발한다. 그러니 나는 이 영화를 힙하다고 말해야 할지, 꽁꽁 숨긴 채 영원히 힙을 유지하게 둘 것인지 고민이다.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에도 그 고민은 유효하다.


 그러니 굳이 이 영화의 매력을 설명해달라고 말하지는 말아주길. 열정을 다해 연기하고, 망가짐이 꽤 노골적이며, 주제의식과 내레이션 모든 것이 어설퍼서 귀여운 게 전부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당당히 패배해버린 그 최후마저도 사랑스럽다. 이 영화 이후로 다시는 이런 영화를 찍지 않는 감독은 본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꽤 궁금하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한가. 그에게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게 만천하에 공개됐고 주목받지 못했다는 것, 그 모든 게 다 멋지다. 이것을 힙하다고 느끼는 필자 본인, 그리고 앞으로 이 영화의 행방, 힙의 유행이 바뀌는 과정을 통해 이 후기가 힙한지 아닌지도 또다시 판가름이 날 것이다. 그것이 조금 두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느끼는 힙은 실재하니까. 느낌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니까 받아들이기로 한다. 힙의 굴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만이 조금 부끄럽다. 


애매한 결론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나는 단연 '멋으로 살아간다'라고 얘기하고 싶다. 멋져지고 싶고, 멋지지 않은 것까지 멋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미의식이란 참으로 변화무쌍하고 그렇기 때문에 신비하고 놀랍다.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얘기할 게 아니라는 거 나도 안다.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멋있는 걸 선호하고 앞으로도 멋으로 살아갈 거라는 걸. 이 힙에서 저 힙으로 계속 옮겨 붙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당장 내가 힙해서 좋다!는 마음으로 또 열심히 멋을 따라다니려고 한다. 당장 내가 부릴 수 있는 최대의 멋으로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영화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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