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층에서 시작된 우리의 하루

주거편 2|사이공, 하이엔드를 해석하는 도시

by 이서하


13층에서 시작된 나의 호치민


"Đi, Tower Nam" 택시를 타면 가장 먼저 내뱉는 말이었다. 타워 5로 가 달라는 뜻이다.


내가 선택한 집은 타워 5, 13층이었다.

당시 완공된 3개 타워 중 하나였고, 이후 확장될 중앙 브릿지와도 가까운 위치였다.

리비에라 포인트에서 살기 시작한 사람 대부분은 전망을 기준으로 집을 골랐다.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준 건, 이 집이 가지고 있던 균형감이었다.


뷰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탁 트여 있었다.

거실은 전면 통창 구조가 아니었다. 한국 아파트의 발코니형 창이었지만, 그 바로 앞에 도시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앞쪽 지역은 아직 개발 전이라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거의 없었고, 그 덕분에 13층에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넓은 개방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안방은 달랐다. 벽 한 면이 온전히 거대한 유리창이었다.

침대에 누우면 시야 전체가 하늘과 도시로 가득 찼다. 아침에는 햇살이 천천히 들어왔고, 밤에는 도시의 불빛이 별과 함께 뒤섞여 하루를 정리하는 풍경이 되었다.

"내가 여유가 있어 좋은 집을 구한 게 아니다. 그냥 이 도시가 나에게 풍경을 허락했을 뿐이다."

13층에서 바라본 호치민 — 풍경은 소유가 아니라 허락이다 ⓒ 이서하

'공간이 주는 의미' – 거실과 홈바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공간은 거실과 주방 사이에 있던 홈바였다.

리비에라 포인트의 평면 설계는 독특했다. 평수 대비 거실 공간이 넓게 설계되어 있었고, 주방 옆으로 작은 바(Bar) 형태의 공간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엔 늘 두 가지가 놓였다.

한 병의 맥주

그리고 메모장


나는 이 공간에서 매일 하루를 시작하거나 끝냈다.

한국에서는 바쁘게 흘러가는 업무 속에서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걸 잊고 살았는데, 이곳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게 일상과 감정이 정리되었다.

"이곳은 단순히 내가 지낸 집이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는 구조를 가진 공간이었다."

홈바와 주방 사이 한 뼘의 거리 — 의무가 즐거움으로 바뀐 공간 ⓒ 이서하



홈바 너머의 대화


아내는 나보다 늦게 호치민에 왔다.

처음 도착한 날, 그녀는 택시 창밖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진짜 여기서 사는 거네?"

그 말에는 낯섦과 설렘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단지 정문 앞에 도착해 고개를 들었을 때, 40층 가까운 타워들이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조심스럽게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이 공간이 우리에게 집이 될 수 있을까 확인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에 도착해 집 문을 열었다. 아내는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말없이 커튼을 열었다. 도시가 한 장의 풍경처럼 펼쳐졌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응. 괜찮은데? 이거 좋아."

그 한마디는 이 집을 선택한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안도였다.


한국에서 아내의 요리는 늘 시간이랑 싸우는 일이었다. 작은 주방, 멀리 있는 마트, 장보고 돌아오면 이미 저녁은 늦어 있었고, 조리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간에 갇혔다.

맛은 좋았지만, 그 시간은 종종 '해야 하는 일'처럼 흘렀다.


리비에라 포인트에서는 작은 구조 하나가 모든 걸 바꿨다.


주방과 거실 사이, 홈바.

나는 그 건너편에 앉아 맥주를 한 모금씩 마셨고, 아내는 인덕션 위에서 팬을 달궜다. 증기가 올라오면 후드가 낮은 소리로 숨을 쉬고, 도마 위 칼날이 채소를 톡톡 두드렸다.

우리는 그 좁은 바 사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오늘 마트에서 아보카도 아주 예쁘더라."

"그럼 명란 꺼낼까? 덮밥으로 갈까, 파스타로 갈까?"

"파스타 먼저. 덮밥은 내일."


초반엔 장보기가 작은 일정이었다. 근처 대형마트까지는 차나 바이크로 다녀와야 했고, 모자란 재료는 단지 앞 편의점이나 배달로 채웠다. 그래도 우리는 그날그날 해 먹는 템포를 유지했다. 필요한 재료가 없으면 메뉴를 바꾸면 그만이었고, 홈바 건너로 오가는 말들이 식탁의 공백을 메워 주었다.

아내는 체질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했지만, 나를 위해 스테이크를 자주 구워줬다. 팬 위에 올리브 오일, 굽기 직전 소금·후추, 팬과 고기가 맞닿을 때 나는 짧은소리. 그 사이 아스파라거스와 주키니를 굴리고, 방울토마토를 마지막에 한 번만 굴려 가니시를 완성했다.

접시에 올릴 때면 우리는 늘 같은 대사를 주고받았다.

"이건 당신 몫."

"이건 당신이 더 좋아하잖아."


파스타는 우리 집의 '치트키'였다. 소요 시간 대비 테이블 위의 만족감이 압도적이었다. 알단테의 탄력이 남아 있을 때 불을 끄고, 홈바 위 그릇으로 옮겨 담으면 접시 가장자리로 올리브 오일이 얇게 흘렸다. 간단한 알리오 올리오, 바질 페스토, 가끔은 토마토로 진하게.


주말이면 작은 실험이 이어졌다. 치즈를 사 와서 작은 냄비에 녹이면 즉석 퐁듀가 됐다. 빵과 미니 캐럿, 구운 버섯을 차례차례 찍어 먹었다. 다른 날엔 나초 위에 치즈를 뿌려 오븐에 넣고, 살사를 곁들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명란은 아보카도와 만나 덮밥이 되었고, 라임을 살짝 짜 넣으면 도시의 공기는 여름처럼 바뀌었다.

우리는 가끔 홈바에 서서 먹었고, 더 여유로운 날이면 거실의 긴 대리석 식탁에 마주 앉았다. 접시 위의 색깔이 늘어날수록 대화는 길어졌다. 억지로 묻지 않아도 서로의 하루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생각해 보면, 크게 변한 건 없다. 주방은 여전히 크지 않고, 장보기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달라진 건 동선이 아니라 거리감이었다.

홈바를 사이에 둔 그 한 뼘이, 의무의 시간을 즐거움의 시간으로 바꾸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저녁을 먹었다.

그게 이 집이 우리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었다.

대리석 식탁 위의 저녁 — 접시 위의 색깔이 늘어날수록 대화는 길어졌다 ⓒ 이서하



세 가지 대화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대화들이 있다.


어느 날, 내가 말했다.

"여보, 우리 부모님 집에 내가 모아 놓은 맥주잔들 기억나지? 그 잔들이랑 몇 가지 술을 올려둔 홈바를 가지는 게 내 작은 꿈 중 하나였어. 그게 꼭 비싼 게 아니어도, 나만의 코너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지."


아내는 잠시 프라이팬을 돌리다 고개를 들었다.

"여보, 내가 항상 집 고를 때 주방을 제일 신경 쓰는 거 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조는 싱크대가 거실을 바라보는 구조야. 설거지를 하면서 당신을 보고 대화하고 싶었거든. 이 집은 싱크대가 거실을 향하진 않지만, 홈바가 대신 그 역할을 해줘서 좋아."


그리고 마지막 대화는 둘이 동시에, 같은 속도로 나왔다.

"나중에 한국 돌아가서 진짜 우리 집이 생기면, 싱크대가 거실을 바라보는 주방에, 그 사이 홈바를 두자. 주방과 거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우리만의 공간으로."

그날, 우리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아마 그 대화가 이 집의 완성선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집이란 결국, 함께 그리고 싶은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공간이니까.



보이지 않는 집주인


베트남에서 외국인은 대부분 월세로 산다. 집주인은 대체로 부유층이거나 임대업을 병행한다. 보증금은 월세 두 달 치. 전세라는 제도는 없다.

여기에 풀옵션 문화까지 더해지면, 가구·가전·집기가 대부분 집주인 소유다. 그래서 많은 집주인은 정기적으로 '순찰'을 돈다. 세입자 입장에선 그날이 곧 시험날이다.


우리 집 집주인은 달랐다.

처음 계약서를 쓸 때 한 번 마주쳤고, 그게 전부였다. 이후 네 해 동안 그는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다. 연락은 언제나 중개인을 통해서만 왔다.

누군가는 "그게 더 불안하지 않아?"라고 물었지만, 우리의 대답은 늘 같았다.

"괜찮아. 이 집의 규칙은 신뢰니까."


어느 날 TV 화면이 깨져 보이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리도 당황했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혹시 우리가 변상해야 할까?'

중개인에게 상황을 전했다. 다음 날, 새 TV가 도착했다. 아무 질문도, 현장 점검도 없었다. 설치 기사만 조용히 다녀갔다. 브랜드는 LG였다.

중개인은 덧붙였다.

"집주인이 그러네요. 한국 분들이라 한국 브랜드가 좋을 것 같다고요."

그 한 문장이 집을 가볍게 했다.


그 뒤로도 계약 갱신 때마다 소소한 요청을 했다. 오래된 거울을 교체해 달라거나, 작은 방에 수납장을 하나 놔달라거나, 월세를 조금만 손봐 줄 수 있느냐고. 모든 대화는 여전히 중개인을 통해 흘렀지만, 결과는 대개 "가능합니다"였다.

우리는 한 번도 집주인을 직접 부르지 않았다. 그도 한 번도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


한 번, 1군 동커이 거리의 빈컴센터에서 그와 닮은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말없이 지나갔다. 서로에게 필요한 거리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도시는 과한 친절도, 과도한 간섭도 없다. 대신 정확한 선이 있다. 집주인이 그 선을 지켰고,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을 채웠다.


우리는 네 해 동안 이사하지 않았다. 고치고 바꾸고 조율하는 동안, 집은 서서히 '우리 것'이 되었다.

그리고 가끔 TV를 켤 때면, 처음 그 교체 날이 떠올랐다. 어떤 설명보다 강력한 태도.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우리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는 진정한 쿨가이였다.

Tower Nam, 타워 5 로비 — 네 해를 함께한 우리의 주소 ⓒ 이서하

단지가 커지자, 삶도 넓어졌다


내가 리비에라 포인트에 살기 시작했을 때, 단지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총 아홉 개의 타워 계획 가운데 3개 동만 완공된 상태. 편의시설도 최소한의 것만 갖춰져 있었고, 단지 내 상가 구역도 대부분 빈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 거대한 계획이 한 조각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3개 동에서 6개 동으로 — 변화의 시작


입주 후 2년쯤 지났을 때, 건너편에서 새로운 3개 동의 외관이 완성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베란다에 서서 공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았는데, 건물이 하나씩 스카이라인 위에 자리 잡을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도시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직접 보고 있는 느낌."

하지만 진짜 변화는 건물의 숫자 증가가 아니라 '브릿지'의 완성에서 왔다.


5층, 공중 위에서 연결된 일상


기존 3개 동과 신규 3개 동은 5층 높이에 공중 브릿지로 연결되었다. 단순한 연결 통로가 아니었다. 그 공간 전체가 하나의 공중 커뮤니티였다.

그곳에는:


리조트 스타일의 대형 수영장

수영장을 감싸듯 놓인 카바나 데크

저녁 식사를 즐기기 좋은 바비큐 존

사이사이 놓인 선베드와 라운지 공간

곳곳에 조경된 자연형 풀 가든

아이들을 위한 소형 워터파크 구역


이 공간은 내가 지금껏 알고 있던 '아파트'와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었다.

그곳은 하나의 작은 도시이자, 하늘 위의 정원이었다.

호텔과 비교하면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더 자유롭고 편안했다. 여권을 꺼낼 필요도 없고, 체크인도 필요 없다.

엘리베이터만 타고 올라오면 언제든 돌아오는 나만의 리조트였다.

5층 브릿지 수영장 — 하늘 위의 정원, 나만의 리조트 ⓒ 이서하

상가가 열린 뒤 — 식탁의 속도도 바뀌었다


상가층이 본격 가동되면서 1층에 큰 마트가 들어왔다. '장을 본다'는 말은 더 이상 반나절짜리 일정이 아니었다.

우리는 슬리퍼를 신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서 필요한 것만 담고 5분 뒤 다시 주방에 서 있었다.

오늘 필요한 재료를 오늘 사서 오늘 요리하는 생활. 계획보다 기분이 먼저인 식탁이었다.


상가동이 열린 뒤, 도시는 더 가까워졌다. 새로 문을 연 상가동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었다. 그 아래층은 작은 도시처럼 움직였다.

아침이면 베이커리에서 커피 향이 올라왔고, 점심엔 로컬 식당의 철판 소리가 들렸다. 저녁 무렵엔 미니 펍 앞에 조명이 켜지고, 주말이면 헤어살롱과 네일숍 앞에 예약표가 걸렸다. 마사지 스파에서는 늘 라벤더 향이 흘러나왔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함께 단지는 하루 종일 살아 있었다.

처음엔 단지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게 낯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밖에 나가야 한다'는 감각이 사라졌다.

로컬 식당에서 먹은 쌀국수 한 그릇, 카페에서 마신 연유커피 한 잔이 오히려 이 도시의 리듬을 내 일상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단지는 완성되어 갔지만, 그 완성은 닫힘이 아니라 확장이었다. 문을 나서면 곧바로 생활이 이어지는 구조 — 리비에라 포인트는 그 안에서 '사는 일'을 도시의 일부로 만들어 주었다.


일상의 중심이 된 세 가지 공간


리비에라 포인트는 거대한 거주 공간이었다. 그러나 내 삶을 바꾼 건 화려한 설계나 시설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쌓인 '생활의 루틴'이었다.

나는 이 단지 안에서 세 가지 공간을 가장 사랑했다.


1) 수영장 데크 — 고요한 밤을 주는 장소


리비에라 포인트의 수영장은 크기만으로도 인상적이었지만, 진짜 매력은 낮이 아니라 밤에 드러났다.

일과를 마친 저녁, 종종 맥주 한 캔만 들고 5층 수영장 데크에 나갔다. 카바나에 앉으면 수면 위로 은은한 조명이 깔리고, 멀리 1군 도심의 불빛이 수평선처럼 펼쳐진다.

그곳에선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책을 읽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조용히 사색하는 사람—모두가 자신만의 속도로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가끔 옆자리의 중년 외국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묘하게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천천히 사는 법'을 배웠다.

수영장 데크의 밤 — 고요 속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 이서하

2) 단지 내 상가 — 일상을 완성해 준 생활권


단지가 6개 동으로 확장되면서 바뀐 것은 스카이라인만이 아니었다. 생활의 밀도가 달라졌다.

1층 상업동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그 풍경은 하나의 작은 도시 같았다.


대형마트, 로컬 식당과 카페, 미니 펍

네일숍, 헤어살롱, 애견샵, 마사지 스파


나는 이곳을 '걸어서 해결되는 생활'이라 불렀다.

집과 마트가 걸어서 1분, 카페는 2분, 스파는 3분. 모든 게 가까우니까 슬리퍼만 신고 다녀도 되는 삶이었다.

특히 마트는 자주 가는 단골 장소였다. 몇 번 얼굴을 비추자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게 되었고, 어느 날은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아까 와이프 왔다 갔어요. 오늘 저녁 메뉴 뭐예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외국에서 이웃이 생겼다는 느낌, 그건 숫자나 비용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1층 상가동 — 슬리퍼만 신고 다니는 삶이 시작되었다 ⓒ 이서하


3) 24층 테라스 — 도시를 내려보는 장소


24층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거주층이 아니라, 전망을 위해 열린 층이었다.

그곳엔 20명 이상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과 여러 개의 소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음악을 듣고, 누군가는 와인을 따랐다.

나는 이곳을 리비에라 포인트의 심장이라고 생각한다.

단지는 13층에서 살아가고, 5층에서 휴식하고, 24층에서 생각한다.

도시가 커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건 도시를 지배할 때가 아니라, 도시와 화해할 때다.

그 감정을 알려준 곳이 바로 24층 테라스였다.



그리고, 그날 — 한 편의 길이 된 영상


우리는 이미 결혼한 사이였다. 하지만 마음속에 늘 남아 있던 생각이 있었다.

"미완으로 마무리된 프로포즈가 아니라, 진심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포즈를 다시 하기로 했다.

그런데 장소는 정해져 있었다. 우리가 함께 살아온 이곳, 리비에라 포인트였다.


'영상 편지가 시작되다'


그날 저녁, 나는 조용히 1층 인공 폭포 앞으로 내려갔다.

폭포 앞은 리비에라 포인트의 중심과도 같은 자리였다. 5층 브릿지 수영장을 지나 내려오면 만날 수 있는 공간—단지 전체의 이야기가 모이는 곳.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준비해 둔 영상을 아내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 영상 하나 보냈어. 지금 틀어봐."


영상은 편지로 시작했다.

"고마웠어. 낯선 도시까지 와서 함께 살아줘서. 나를 믿어줘서. 그리고 기다려줘서.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편지가 끝나자 장면이 바뀌었다.

1인칭 시점으로 촬영된 영상이 시작됐다. 마치 아내가 직접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한 사람을 데려오는 길' 영상의 여정은 이렇게 이어졌다.


13층 집 앞에서 시작

긴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까지 이동

5층 브릿지 라운지로 내려와 수영장 데크를 지나며 밤 풍경이 펼쳐진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하강

단지 내 조경 산책로를 한 걸음씩 따라 내려간다

그리고 마지막 — 폭포 앞에서 화면이 멈춘다


마지막 자막이 떴다.

"이제, 네가 걸어올 차례야."


아내는 영상을 다 보고 나서 잠시 멈췄다. 그리고 그 길을 그대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선택의 순간'


폭포 앞에서 기다리던 나는 그녀가 걸어오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머리를 묶지도 못한 채 급히 내려온 모습.

하지만 눈빛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만나러 가는 길인지.


그녀는 내 앞에 섰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에 있던 반지를 천천히 빼냈다.

티파니의 실버 링.

한국에서 처음 맞춘 그 반지. 그녀가 귀국길에 꼭 사고 싶어 했던, 우리 연결의 증표.

"이 반지 기억나? 우리가 처음 함께 고른 거."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도 같은 반지가 있었다.

"다시 돌아가도, 여전히 너와 결혼하고 싶어. 나랑… 계속 함께 가줄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울기 시작했다. 웃으면서 울고,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빼낸 반지를 다시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이 반지처럼, 우리 계속 함께해."

그녀는 내 손을 꽉 잡았다. 반지가 맞닿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날, 우리는 서로를 다시 한번 선택했다.
1층 인공 폭포 앞 — 우리가 서로를 다시 선택한 곳 ⓒ 이서하

공간이 남기는 것


리비에라 포인트에서 보낸 시간은 내게 분명하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

좋은 공간은 편리함을 넘어 관계를 바꾼다는 것.

그곳에서 우리는 단순히 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다시 발견했다.

수영장 데크에서 서로의 하루를 듣고, 24층 테라스에서 도시를 바라보며 같은 방향을 생각했고, 거실 한가운데 놓인 대리석 식탁 위에서 친구들과 세계 여러 나라 음식을 나눴다.

이 모든 순간들이 모여 '우리 집'이라는 개념을 완성했다.


집은 주소로 정의되지 않는다. 집은 내가 어떤 사람과 어떤 하루를 쌓아가느냐로 완성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나는 이곳에서 배웠다.

리비에라 포인트, 우리의 네 해 — 주소가 아닌 관계로 완성된 집 ⓒ 이서하

이미지 출처

커버이미지 & 본문 — All photos ⓒ 이서하


다음 이야기


그런데, 이 도시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리비에라 포인트에서 살면서 나는 '합리적 하이엔드'를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친구의 초대가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주거편 3 | 절대적 하이엔드를 만나다〉

"7군 깊숙이, 진짜 하이엔드가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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