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하이엔드를 만나다

주거편 3|사이공, 하이엔드를 해석하는 도시

by 이서하


어느 날, 다른 세계의 문이 열렸다


리비에라 포인트에서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13층 창밖으로 펼쳐지는 도시, 홈바에서 나누는 저녁 대화, 5층 수영장 데크에서 마시는 맥주. 모든 것이 완성된 듯 보였다.

그렇게 스스로 이 도시의 주거를 이해했다고 믿은 바로 그 시점, 한 통의 메시지가 그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마크: "우리 형 집에 잠깐 올래? 그냥 놀다 가면 돼. 수영하고 싶으면 수영복 챙겨 와도 되고."


마크는 호치민에서 알게 된 친구였다.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자랐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지금은 방글라데시 부유층 출신 여자친구 리나와 함께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미국과 호치민을 오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마크는 교육받은 사람 특유의 정중함이 있었다. 말투도, 제스처도, 사용하는 단어 자체가 매너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딱딱하거나 거리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친근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무례의 선은 절대 넘지 않았고, 의외로 장난도 잘 쳤다. 취기가 오르면 혼자 춤을 추기도 하는 숨은 똘끼도 있었다.

그런 그였지만, 우리 부부와는 유독 더 편하게 지냈다. 내 느낌일 뿐일지 모르지만, 마크와 리나는 우리를 특별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종종 1군의 작은 펍이나 7군의 숨은 로컬 플레이스에서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날 제안은 조금 달랐다. "형 집으로 오라"는 초대. 그 순간 뭔지는 몰랐지만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7군 깊숙이, 도시가 한 번 더 바뀐다


마크가 보낸 주소를 따라갔을 때, 그곳은 내가 알던 7군과도 조금 달랐다.

리비에라 포인트가 있는 지역보다 더 안쪽. 길은 더 조용했고, 간판도 적었다. 상가 대신 집과 나무, 그리고 바람이 공간을 채우는 동네였다.


우리는 큰 대문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곧 문이 열렸다.

그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앞에는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었고, 오른쪽에는 개인 수영장이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가족용 수영장보다 컸고, 호텔 풀보다 개인적이었다. 물은 막 채워지는 중이었고, 표면 위로 늦은 오후 빛이 반짝였다.

이건 아파트가 아니었다. 공간이 삶을 설명하는 집이었다.

7군 깊숙이 숨어 있는 프라이빗 빌라 — 공간이 삶을 설명한다 ⓒ 이서하

드디어 마주한 마크의 형


현관문이 열리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크의 형.

그는 말보다 존재감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었다.

짧게 깎은 헤어, 드웨인 존슨(The Rock)을 떠올리게 하는 탄탄한 체격. 나이는 아마 50 전후쯤일 텐데, 외모는 30대 후반 같았다. 단단하게 삶을 살아온 사람 특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들어오세요."

영어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없지만, 그의 말투에는 상대를 존중하는 단단한 정중함이 있었다.

우리 셋은 거실로 향했다.



공간은 말이 없지만 오래 기억된다


집은 3층 구조였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바닥이었다. 대리석이었는데, 차갑고 회색빛 도는 이탈리아산이 아니었다. 따뜻한 우드톤이 흐르는 대리석이었다. 브라질산 쿼터자이트일까. 베이지와 옅은 브라운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패턴에, 빛을 받으면 은은한 골드빛 베인이 드러났다.

기둥과 벽도 같은 톤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화려한 장식은 거의 없었지만, 재료의 질감만으로 공간의 수준이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값비싼 것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 집. 힘을 숨길 줄 아는 공간이었다.


마크의 형은 찬장을 열어 병 하나를 꺼냈다.

야마자키 18년.

일본 싱글몰트 위스키. 호치민에는 일본인도 많고 일본 기업도 많아서, 일본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야마자키 같은 일본 위스키는 한국보다 오히려 구하기 쉽고 가격 메리트도 있다. 그럼에도 평범한 블렌디드 위스키 대신 18년 산을 선택한다는 건, 취향의 문제였다.

"좋아하면 한 잔 하죠."

그는 잔에 얼음을 넣어 천천히 돌렸다. 위스키를 붓는 손길은 과장되지 않았지만 확신이 있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잔을 건네며 말을 덧붙였다.

"편하게 드세요. 여기선 편안함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 말은 단순한 환대가 아니었다. 이 집의 규칙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살고 있었다. 그게 더 강했다.



한 잔의 위스키, 한 겹의 세계


우리는 주방 옆 대리석 아일랜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형은 다시 찬장을 열더니 잔과 병을 우리 앞에 놓고 이렇게 말했다.

"필요하면 더 따라 드세요. 편하게."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집에는 과시가 없고 경계가 없다는 것을.

여기서는 손님도 역할을 벗는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대접받는다.

나는 한 모금 마셨다. 깊고 복합적인 풍미가 입안에 펼쳐졌다. 셰리 캐스크의 달콤함 뒤로 미즈나라 오크 특유의 향신료 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부드럽고 정제된 맛. 블렌디드 위스키의 직선적인 강렬함과는 다른, 여러 겹의 풍미가 천천히 펼쳐졌다.

이런 태도는 돈으로 배울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삶의 경험과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다.



왜 돌아왔는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마크가 형에 대해 설명했다.

"형은 포틀랜드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대학도 나왔어. 그런데 졸업하고 다시 호치민으로 돌아왔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국에서 태어나셨는데, 왜 다시 이곳으로 오셨어요?"

형은 잠시 잔을 돌리다가 입을 열었다.

"미국은 좋은 곳이죠. 안정적이고, 시스템도 잘 되어 있고. 하지만 거기서는 늘 이방인이었어요. 베트남계 미국인.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느낌."

그는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오니까 이상했어요. 언어도 완벽하지 않고, 문화도 낯선 부분이 많은데... 오히려 더 편하더라고요. 뿌리가 있는 곳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죠."

"그래서 사업도 이곳에서 시작하신 거예요?"

"네. 의료장비 수입이요. 미국과 유럽에서 장비를 들여와서 베트남 병원들에 공급해요. 허가도 복잡하고, 인증도 까다롭지만... 신뢰만 쌓이면 오래갈 수 있는 일이에요."

그는 '내가 얼마나 번다'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어떤 기준으로 일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중요한 건 볼륨이 아니라 방식이라는 듯이.



수영장 물을 가는 사람


대화가 잠시 멈췄을 때, 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요. 수영장 물 좀 확인해야 해서."

그는 뒤편으로 나가더니 수영장 가장자리에 섰다. 손으로 물을 떠서 확인하고, 펌프 쪽으로 걸어가 무언가를 조작했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 앉았다.

"매일 물을 가나요?"

"네. 이틀에 한 번은 확인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전체 물을 갈아요. 안 그러면 금방 탁해지거든요."

마크가 웃으며 말했다.

"형이 수영장 관리를 직접 다 해. 청소 업체 부를 수도 있는데."

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내 공간이니까 내가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물이 깨끗한지, 펌프가 제대로 도는지...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편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내 구두장이 떠올랐다.

존 롭, 에드워드 그린. 내가 오랜 시간 모아 온 하이엔드 클래식 슈즈들. 이 신발들을 신는다는 건 단순히 고가의 구두를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 피부처럼, 클리닝과 보습, 영양 공급, 보색, 샤이닝의 과정을 거치며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일반 구두 수선집에 맡길 수 없는 영역이다. 물론 하이엔드 슈즈 전문 관리 업체도 있다. 1회에 3-5만 원을 내면 섬세하게 관리해 준다.

하지만 나는 직접 한다.

전용 솔만 해도 먼지떨이용, 광택용, 틈새용, 슈크림 도포용으로 나뉜다. 그 도구들을 직접 고르고, 내 손으로 가죽을 닦고, 크림을 바르고, 광을 내는 시간. 그 수고로움이 싫지 않다. 오히려 그 시간 자체를 즐긴다.

하이엔드 클래식 슈즈라는 영역은, 본인의 물건을 소중히 관리할 줄 알고 그 시간을 즐길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


형이 수영장 물을 가는 이유를 이해했다.

리비에라 포인트의 수영장은 관리비에 포함되어 있다. 내가 할 일은 없다. 그냥 내려가서 쓰면 된다. 편리하다.

하지만 이 수영장은 다르다. 물을 가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모두 이 사람의 선택이고 수고다.

절대적 하이엔드는 돈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수고를 감수하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압도와 편안함, 그리고 거리감


나는 그 집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압도되었다. 3층 구조, 개인 수영장, 우드톤 대리석, 야마자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편안했다. 형은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과시하지 않았고, 경계 짓지 않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거리감이 있었다.

이건 부러움이 아니었다. 동경도 아니었다.

그저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라는 확인이었다.


리비에라 포인트의 수영장은 공동 관리비로 운영된다. 수백 세대가 함께 쓰고, 전문 관리팀이 매일 청소한다. 나는 그냥 내려가서 수영하면 된다.

하지만 이 수영장은 다르다. 형 혼자 물을 갈고, 청소하고, 관리한다. 편리함 대신 수고를 선택한 것이다.

그 차이가 바로 절대적 하이엔드와 합리적 하이엔드의 경계였다.



고급스러움은 외형보다 태도에서 드러난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이곳은 분명 화려한 공간이다. 우드톤 대리석과 수영장, 층고 높은 구조, 여유로운 공간 구성.

하지만 이 집이 주는 감각은 '부'보다 '균형'에 가까웠다.

공간은 넓지만 허세는 없다.

비싸 보이지만 불필요한 장식은 없다.

말은 적지만, 의미는 늘 충분했다.

고급스러움은 결국 태도였다.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절대 낮추지 않는 태도.



진짜 하이엔드는 과시하지 않는다


수영장 물은 어느새 가득 찼다.

마크가 물었다.

"수영하고 갈래?"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공간은 어떤 행동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편안한 흐름에 따라 존재하면 되는 곳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건 내가 경험한 '합리적 하이엔드'와는 결이 다르다.

리비에라 포인트는 구조로 완성된 하이엔드였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이것은 돈으로 구축한 하이엔드가 아니라, 삶의 기준과 수고로 완성된 하이엔드다.



그리고 하나의 기준선이 생겼다


그날 이후 나는 많은 공간을 보게 된다. 많은 서비스를 경험하고, 수많은 도시를 걷는다.

하지만 그날 본 풍경은 기준이 됐다.

"하이엔드는 결국 삶의 방식이다."


공간은 그 방식을 숨기지 않는다.

마크 형의 집에서 본 것은 화려함이 아니었다. 정제된 선택,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용기, 그리고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배려.

그리고 무엇보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태도.

그게 진짜 하이엔드였다.



세 가지 하이엔드


그날 이후, 나는 호치민에서 본 세 가지 하이엔드를 정리할 수 있었다.


절대적 하이엔드 – 마크 형의 집

프라이빗 빌라

개인 수영장 (직접 관리)

우드톤 대리석 마감

3층 구조

야마자키를 집에서 음료처럼 마시는 삶

태도와 수고로 완성된 공간

이것은 자본의 결과이자 삶의 기준이 만든 세계다. 접근 가능한 사람이 제한적이고, 재현 불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다.

리버사이드의 프라이빗 빌라 — 태도와 수고로 완성된 절대적 하이엔드 ⓒ 이서하

서비스드 하이엔드 – Vincom Residence

호텔+레지던스

룸 클리닝, 세탁, 룸서비스

월 $3,000 이상

편의성으로 완성된 공간

이것은 서비스의 결과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구조. 편리하지만, 삶의 루틴이 돈으로 대체된다.


합리적 하이엔드 – 리비에라 포인트

생활 플랫폼형 레지던스

수영장, 라운지, 커뮤니티 (공동 관리)

월 $1,000-1,200

구조로 완성된 공간

이것은 설계의 결과다. 돈이 아니라 구조로 삶의 질을 높인다. 접근 가능하고, 재현 가능하다. 그리고 수고는 최소화된다.

리비에라 포인트 — 구조로 완성된 합리적 하이엔드 ⓒ 이서하

각자의 길


마크 형의 집을 나오며 생각했다.

나는 절대적 하이엔드를 목격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멀리 있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리비에라 포인트에서 경험한 합리적 하이엔드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했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


마크 형은 태도와 수고로 공간을 완성했다.

나는 구조로 삶을 완성하고 있었다.

둘 다 하이엔드였다. 다만 길이 달랐을 뿐.



리비에라로 돌아오며


택시를 타고 리비에라 포인트로 돌아오는 길,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7군의 거리가 지나가고, 익숙한 타워들이 보였다.

리비에라 포인트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곳이 내 집이다."


마크 형의 집은 완벽했다. 우드톤 대리석도, 개인 수영장도, 야마자키도 모두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집이었다. 그가 매일 수고하며 유지하는 공간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절대적 하이엔드가 아니라, 내가 매일 살 수 있는 합리적 하이엔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거실이 보였다. 홈바 위에는 아내가 준비해 둔 메모가 있었다.

"맥주 있어. 저녁 늦게 먹을래?"

나는 웃으며 맥주를 꺼내 홈바에 앉았다.


창밖으로 도시가 펼쳐졌다. 13층 높이. 3층 빌라의 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내게는 완벽한 높이였다.

5층 수영장도 매일 내가 물을 갈 필요가 없다. 관리팀이 한다. 편리하다.

그리고 나는 그 편리함을 선택했다.

"합리적 하이엔드는 비교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의 문제다."

그날,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절대적 하이엔드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합리적 하이엔드가 왜 가치 있는지.

마크 형은 수영장 물을 직접 간다. 나는 관리비를 낸다.

둘 다 옳았다. 다만 선택이 달랐을 뿐.

리비에라 포인트 13층 — 절대적 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완벽한 높이 ⓒ 이서하

이미지 출처

커버이미지 & 본문 — All photos ⓒ 이서하


다음 이야기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왜 이 구조가 가능한가?"

리비에라 포인트는 어떻게 월 $1,000 수준에서 리조트급 시설을 제공할 수 있는가? 경제 구조, 도시 설계, 문화적 배경은 어떻게 이 가격을 만들었는가?


〈주거편 4 | 하늘 위의 거실은 어떻게 합리적이 되는가〉

"구조가 만든 가격, 가격 너머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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