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읽는 법, 집을 고르는 기준

주거편 1|사이공, 하이엔드를 해석하는 도시

by 이서하


경험은 가격을 설명하지 않는다. 공간은 늘 더 솔직하다.


동남아가 '저렴한 여행지'라는 인식 아래 오랜 시간 살아온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호치민에서 머무는 동안 그 생각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을 여러 번 마주했다.

하이엔드는 사치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기준의 문제였고, 태도의 문제였으며, 무엇보다도 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삶의 구조였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다


처음 호치민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오래 머물게 될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명목상 이유는 "해외 지사 파견"이었지만, 복귀 시점도 계약 기간도 불분명했다. 그저 한 가지 분명한 건, 당분간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처음 머문 곳은 호텔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준비해 준 7군의 아파트먼트, Happy Valley(해피밸리)가 나의 첫 거주지였다.

깔끔한 시설, 단지 내 편의시설, 7 군이라는 안정적인 환경. 조건만 보면 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묘한 생각이 들었다.

Happy Valley는 분명 살기에 편한 곳이었지만, 머물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도시와 적당한 거리가 있었고, 사람과 서비스는 친절했지만, 공간은 어디까지나 회사에서 제공한 임시 거주지일 뿐이었다.

내 선택으로 들어온 집이 아니니 정체성이 없었다. 생활은 가능했다. 하지만 '나의 삶'은 시작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제공된 임시 거처, Happy Valley. 머물 수는 있었지만 살 수는 없었다. ⓒ 이서하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집은 계약서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감각이 결정한다는 것을.

그래서 직접 집을 찾기로 했다.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을 갖고, 이 도시에서 시작되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싶었다.


2016년 11월, 나는 처음으로 내 집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탐색은 호치민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떤 단지는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직접 방문했고, 어떤 곳은 거주하며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어떤 곳은 새로 완공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것은 그 시간이 만든 호치민 주거 지형도다.



도시를 이해하면 주거가 보인다


집을 찾기 전에 먼저 호치민이라는 도시를 이해해야 했다.

여행자의 도시와 거주의 도시는 다르다. 검색과 리뷰로는 보이지 않는 결이 있다.

호치민은 단순히 오래된 자전거와 로컬 시장이 있는 도시가 아니다. 이곳은 숨은 경제 구조가 움직이는 도시이며, 도시를 읽는 기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호치민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생활 권역부터 나누어야 한다.


1군(District 1)은 CBD 중심이다. 외식, 업무, 문화시설이 풍부하다. 하지만 거주 공간은 부족하고 소음과 혼잡이 일상이다.

2군(Thủ Đức)은 외국인 타운이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다만 개발 중인 공사 구간이 많아 아직 거칠다.

7군(Phú Mỹ Hưng)은 주거 특화 지역이다. 안전, 편의, 교육이 완성형으로 갖춰져 있다. 대신 도심 중심까지는 거리가 있다.

Bình Thạnh은 신흥 주거 지역이다. 빈홈 개발의 영향으로 접근성이 우수하다. 다만 지역 내 편차가 존재한다.


중심(Center)과 주거(Living)는 다르다.

나는 그 차이를 직접 걸어보며 확인했다.

1군은 좋다. 하지만 너무 바쁘다.

2군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아직 거칠다.

7군은 다르다. 도시가 아니라 삶이 중심이었다.


주거 선택의 기준 – 단순한 집이 아니라 '생활 가능성'


호치민에서 외국인이 거주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단순한 집의 크기가 아니다.

생활 가능성이다.


즉, 아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안정적인 보안 시스템

거주자의 동선과 취향을 고려한 편의시설

낯선 환경에서도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필요할 때 물리적 이동 없이 해결 가능한 생활 자립성


이 기준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파트먼트 + 커뮤니티 시설 조합의 주거 형태가 선택된다.


여기서부터 한국과 근본적인 차이가 생긴다.

한국은 아파트가 '최종 주거 형태'처럼 느껴지지만, 동남아에서는 아파트가 최상위 주거가 아니다. 최상위는 프라이빗 하우스(빌라)다. 아파트는 그 아래다.


이 차이가 바로 합리적 하이엔드가 가능한 구조적 배경이 된다.



4년간 발견한 호치민의 주거들


호치민에 살면서 나는 이 도시의 다양한 주거 단지들을 경험했다.

어떤 곳은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되었고, 어떤 곳은 새로 완공되며 도시의 화제가 되었다. 각각은 호치민이 '어떻게 살 만한 곳이 되는가'에 대한 서로 다른 해답이었다.


Vinhomes Central Park – 도시 안의 도시


가장 먼저 주목한 곳은 Vinhomes Central Park(빈홈스 센트럴 파크)였다.

도시 한가운데의 공원, Vinhomes Central Park. 호치민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상징 ⓒ 이서하

도시 한가운데 거대한 공원과 마천루 Landmark 81(랜드마크81)을 끼고 있는 주거 복합 단지. 단지 규모는 서울의 중형 신도시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공간의 품질감 때문이다.

도심 한복판에 숨겨진 듯 펼쳐진 광활한 리버사이드 공원

호텔식 관리 시스템

탁 트인 강변 조망

단지 안에서만 해결 가능한 생활 인프라: 마트, 카페, 레스토랑, 약국, 국제학교 셔틀


한국이었다면 이런 곳은 한강변 초호화급 아파트 취급을 받겠지만, 호치민에서는 '비싸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Vinhomes는 호치민이 세계에 내보이는 상징 같았다. 규모가 주는 압도감이 있었지만, 동시에 일상의 밀도보다는 스케일이 먼저 말을 거는 공간이기도 했다.


2군의 매력 – 실용과 감각이 공존하는 자유로운 주거지. Masteri와 Estella


Vinhomes가 호치민의 거대한 상징이라면, Masteri(마스테리)와 Estella(에스텔라)는 그보다 더 일상에 닿아 있는 공간이었다.

두 곳 모두 2군 타오디엔(Thảo Điền)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오랜 시간 외국인들이 사랑해 온 주거지다.


Masteri – 생활 밀착형 실용 미학

Masteri 단지 전경 — 머무는 시간을 전제로 설계된 집 ⓒ Unknown / https://www.booking.com

Masteri는 호화로운 느낌보다 생활 중심형 아파트에 가깝다.

하지만 그 '생활'의 수준이 다르다. 단지 내부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수평적 자립 구조를 갖췄다.

단지 내 대형 마트

수영장(호텔 사이즈)

피트니스 센터

카페 거리 & 간단한 펍

실외 정원과 산책로


여기서 흥미로운 건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의 아파트가 효율성과 동선 중심이라면, 이곳은 머무는 시간을 전제로 설계된 공간 같았다. 먼저 나가고 나중에 돌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집이 아니라, 살면서 머무는 집이라는 느낌.


Estella – 유럽식 감각이 흐르는 아파트

Estella 단지 전경 — 감각이 흐르는 자유로운 주거지 ⓒ Unknown / https://www.agoda.com/

Masteri가 실용적인 주거라면, Estella는 생활의 격을 높인 공간이다.

단지 전체가 하나의 작은 유럽 도시처럼 설계돼 있다.

건물 외벽부터 따뜻한 톤과 곡선 라인을 적극적으로 사용

블록마다 테라스와 정원이 흐르듯 이어짐

수영장과 라운지가 '사람이 자연스럽게 머무는 구조'를 전제


낮에는 아이들이 잔디 위에서 뛰놀고, 저녁이면 라운지 공간에서 가벼운 맥주를 즐기는 부부들이 앉아있다.

거주자의 시간이 흐르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곳은 단지 기능적으로 편리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밀도를 높이는 장소였다.


2군은 매력적이었다. 감각과 취향의 균형을 가진 '자유로운 주거지'였다. 다만 곳곳에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불안정함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프라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7군에서 발견한 안정의 미학


2군이 감각과 취향의 균형을 가진 '자유로운 주거지'였다면, 7군(Phú Mỹ Hưng)은 다르게 다가왔다.

이곳은 감각보다 편의성, 자율성보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도시였다.

7군은 계획적으로 설계된 신도시답게 구조적 완성도가 높았다.

차선이 넓어 교통 체증 스트레스가 적다

보행자 동선과 차량 동선이 분리되어 안전하다

국제학교, 병원, 마트가 촘촘하게 이어진다

'주거에 적합한 동네'라는 메시지를 공간이 직접 말한다


여기서부터 호치민의 주거는 조금 더 구체적인 생활성을 띠기 시작한다.


Scenic Valley – 수영장이 만든 일상의 중심

넓은 수영장이 단지의 중심을 이루는 곳, Scenic Valley. 여유가 구조가 된 공간 ⓒ 이서하

7군에서 인상 깊었던 곳이 Scenic Valley(시닉 밸리)였다. 7군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단지 중 하나다.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했다. 그러나 진짜 매력은 단지 중앙 공간에 있었다.

넓은 야외 수영장과 길게 이어진 선베드 존

캡슐 형태의 휴식 라운지

어린이 플레이 존과 작은 산책 동선

단지 내부에서 바로 연결되는 상가 라인(식당·카페·네일샵)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실내 수영장이 함께 있다는 점이었다. 호치민의 대부분 아파트는 야외 수영장이 기본인데, Scenic Valley는 야외 + 실내 풀을 동시에 갖춘 드문 단지였다.

이 구조 덕분에 비가 오는 날에도 물놀이는 멈추지 않는다. 날씨에 제약받지 않는 생활이었다.


Sunrise City – 생활 밀도를 높이는 구조


고층 타워로 이뤄진 수직 도시, Sunrise City. 빠르게 살지만 멈출 줄도 아는 사람들의 집 ⓒ trungydang / commons.wikimedia.org

Scenic Valley가 여유롭고 정돈된 느낌이라면, Sunrise City(선라이즈 시티)는 더 도시적인 감각이었다.

고층 타워가 이어지고 남쪽과 북쪽 윙이 크게 나뉘며, 내부는 수직 생활 동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가층에는 카페, 회전초밥집, 한식당, 패스트푸드점까지 들어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기만 하면 하루가 시작된다

바쁜 사람에게 최적화된 구조 – "컴팩트하지만 완결된 생활성"


단지 안에서 한 끼 식사, 장보기, 운동, 간단한 외출까지 끝낼 수 있는 시스템.

여기서는 '일상 비용'이 줄어든다. 시간, 체력, 이동의 피로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드러나는 결정적 차이


이 단지들을 경험하며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이곳의 특징은 "동선 최소화 + 거주 만족도 최대화" 구조다. 단지 내부에서 생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여유 시간은 이동이 아니라 삶 자체로 쓰인다.


한국과 비교하면 근본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주거 개념부터 다르다. 한국은 주거와 출퇴근 중심이다. 호치민은 주거, 여가, 일상이 균형을 이룬다.

커뮤니티의 역할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커뮤니티 시설이 존재하지만 활용도가 낮다. 호치민에서는 일상의 중심이다.

단지 구성 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효율과 동선을 중심으로 설계된다. 호치민은 여유와 체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관계 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이웃과 단절되어 있다. 호치민은 가벼운 연결을 허용한다.


내가 발견한 가장 큰 차이는 삶이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에서 재구성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합리적 하이엔드'라는 개념의 가능성이 열린다.



리비에라 포인트(Riviera Point)를 만나다


그런데, 처음으로 돌아가면

Vinhomes, Masteri, Estella, Scenic Valley, Sunrise City.

이 단지들을 소개하고 나니,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왜 리비에라 포인트를 선택했을까?"

지금 돌아보면 호치민에는 선택지가 많았다. 각각 장점이 있었고, 각각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2016년 11월로 돌아가보자.

그때 나는 아직 호치민의 주거 지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Vinhomes의 압도적 스케일도, Scenic Valley의 완성된 시스템도, Masteri의 일상 밀착형 구조도 모두 이후에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단 하나의 확신만 있었다.

집은 계약서가 아니라 감각이 결정한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부동산 중개인이 하나의 단지를 제안했다.

"Riviera Point는 어때요? 아직 완공이 덜 됐지만, 보러 가볼 만해요."

전체 9개동 중 완공된 3개동, 미완의 스카이라인. 그 여백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다. ⓒ 이서하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다. 지도에서 보면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푸미흥 생활권 중심에서 다리를 하나 건너 떨어져 있고, 주변 개발도 아직 진행 중이었다.

생활권 완성도만 보자면 분명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도 한 가지, 마음을 끄는 점이 있었다.

그곳에는 '이야기가 진행 중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설계가 말해주는 의도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두 가지였다.

도시를 향해 열린 수평적 스카이라인

9개 타워를 연결해 가는 거대한 계획적 구조


리비에라 포인트는 한 번에 완성된 단지가 아니었다.

전체는 9개 동으로 설계되어 있었지만, 내가 방문했을 당시 완성된 건물은 3개 동뿐이었다.

미완성. 대부분은 '공사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더 끌렸다.

끝나지 않은 공간, 계속 만들어지는 집. 완성된 곳보다 여백이 있는 쪽이 더 궁금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마음은 여기에 더 붙었다.

나는 완성된 답안보다 가능성이 있는 공간을 선택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왜 이곳을 선택했는가


리비에라 포인트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논리적인 기준 때문은 아니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보면 7군 중심에 있는 이미 완성된 단지가 더 좋은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집은 논리보다 감각이 먼저 반응한다.


나를 움직인 건 이런 이유였다.

높은 층고가 주는 개방감

40층까지 올라가는 타워가 만드는 스카이라인

5층 브릿지 라운지와 리조트형 수영장 계획

3개 동을 연결한 특이한 구조 – 앞으로 발전할 여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곳에서 살았을 때 그려지는 일상


"여기서 살면 분명 매일 똑같은 하루는 아니겠구나."

나는 계약서보다 삶의 그림을 보고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은 옳았다.


계약, 그리고 시작


계약을 마친 날, 나는 Happy Valley를 나왔다.

짐은 많지 않았다. 몇 개의 캐리어와 상자. 회사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

택시를 타고 리비에라 포인트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7군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넓은 도로, 정돈된 거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타워들.

"이제 진짜 내 집에 간다."


그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드디어 이 도시에서 나만의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

커버이미지 — Landmark 81 over Buildings in Ho Chi Minh in Evening ⓒ Ninh Tien Dat / Pexels

본문 — Happy Valley. 머물 수는 있었지만 살 수는 없었다. ⓒ 이서하

본문 — Vinhomes Central Park. 호치민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상징 ⓒ 이서하

본문 — Masteri 단지 전경 ⓒ Unknown / https://www.booking.com

본문 — Estella 단지 전경 ⓒ Unknown / https://www.agoda.com/

본문 — Scenic Valley. 여유가 구조가 된 공간 ⓒ 이서하

본문 — Sunrise City. 빠르게 살지만 멈출 줄도 아는 사람들의 집 ⓒ trungydang / Pexels

본문 — Reviera Point. 미완의 스카이라인 ⓒ 이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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