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편 2|사이공, 하이엔드를 해석하는 도시
호치민 스파의 지형도를 그리기 시작한 건, J군이 아니라 D군 덕분이었다.
어느날, 카카오톡에 메시지가 떴다.
"형, 나 D다. 담주에 호치민 간다 카이. 시간 좀 되나?"
D군은 사회 동호회에서 만난 한살 아래의 동생이었다. 100kg이 넘는 거구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친구.
한국에서도 택시비와 마사지에 매달 200만 원을 쓸 정도로 편의성과 휴식을 중시하는 친구였다.
"그래, 와라. 보자."
"형, 거기 마사지 좋다 카더라. 진짜 기대된다, 마."
일주일 후, D군이 호치민에 도착했다. 우리가 첫날 저녁을 함께 보낸 후, D군은 이틀째에 혼자 시내 구경을 나갔다가 여행자들에게 팁 포함 40만 동(약 2만 원)이라는 가격과 강력한 압으로 유명한 '137 마사지'를 다녀왔다. 이튿날 나를 다시 만나자마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무용담을 쏟아냈다.
"형, 어제 137 갔다 왔는데 말이다. 내 인생 마사지였다 아이가."
그의 눈이 반짝였다.
"내 같은 거구를 내 허벅지만 한 여자들이 번쩍 들어 올려가 돌리고 꺾고 하는데… 이건 시원한 걸 넘어가 경이롭기까지 하대이. 사람이 이래 접히나 싶고."
그는 진지했다. 100kg이 넘는 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테라피스트들의 기술은 그에게 마사지가 아니라 기예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내 정도 덩치면 솔직히 돈 두 배 달라 캐도 할 말 없다. 옷을 맞춰도 옷감이 두 배로 들잖아. 팁 포함이라 카는데, 내는 미안해가 팁 따로 쥐어주고 나왔다. 거는 인정해줘야 한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한편으로 머릿속에 '137 = 퍼포먼스형 미드급'이라는 카테고리를 저장했다. 하지만 그의 찬사 뒤에는 묘한 여운이 남았다.
"근데 형, 마사지는 진짜 시원한데… 거기가 좀 어둡고 캄캄하다. 한 방에 일곱 명씩 눕는데, 내가 엎드려 있으면서도 '이 수건은 깨끗할까?' 걱정이 좀 되긴 하대. 너무 개방적이라 눈 둘 데도 없고."
그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137이 보여준 것이 '압도적인 퍼포먼스'라면, 우리가 가야 할 다음 단계는 '균형'이었다. 나는 그에게 다른 곳을 제안했다.
"그럼 오늘은, 다른 곳을 하나 더 보여줄게."
"어디고?"
"Miu Miu(미우미우). 거기 가면 만족할 거다."
D군이 눈을 반짝였다. "오오, 기대되는데이. 형이 추천하는 건 믿을 만 하제."
다음 날, 우리는 택시를 타고 레탄통(Le Thanh Ton)으로 향했다. 일본인 거리를 중심으로 1호점에서 5호점까지 확장한 호치민 스파의 또 다른 표준, Miu Miu였다. 1~5호점이라는 압도적인 공급이 있지만, 예약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에 서비스를 받을 수 없거나 몇 시간씩 대기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2호점에 도착했다. 인테리어는 확실히 로컬 샵이나 137과는 달랐다. 통일된 컨셉, 깔끔한 리셉션, 유니폼을 입은 테라피스트들. 냄새와 소리도 달랐다. 강한 오일 냄새 대신 허브와 나무 향이 섞인 은은한 향, 옆 침대의 대화가 그대로 들려오는 대신 수면 음악과 속삭이는 정도의 소음.
"야, 여기는 공기부터 다르네."
D군이 눈을 굴리며 속삭였다.
"그제는 솔직히, 가게 들어가자마자 '아, 오늘은 위생 상태 운에 맡겨야겠다' 싶었거든. 근데 여기는… 그래도 한 번쯤 맡겨도 되겠다 싶다, 마."
메뉴를 보던 D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아추 마사지? 이게 뭔데이?"
직원이 설명했다. "Shiatsu massage. Japanese style. No oil, only pressure."
내가 물었다. "아로마 마사지랑 뭐가 달라요?"
"Aroma massage is soft. Shiatsu is strong, focus on pressure points."
D군이 물었다. "그거 좋은 기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받아봐. 호치민에서는 희소한 스타일이야."
우리는 90분 시아추 마사지를 받았다. D군에게는 가장 강한 압을 추천했고, 나는 적당한 밸런스 코스를 택했다. 90분간 이어진 시간은 격정적인 퍼포먼스라기보다, 정교하게 조율된 휴식에 가까웠다. 굳은 곳을 찾아내고, 근육의 결을 따라 풀어주는 섬세함.
마사지가 끝나고 건식 사우나와 샤워 시설을 이용했다. 그리고 로비에서 차를 마셨다. 빠르게 마사지만 받고 나가는 시스템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면 어느 정도 체류가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계산할 때 가격을 확인했다. 50만 동 내외. 팁 포함. 한화 약 2만 5천 원. 로컬보다는 비싸지만, 한국 대비 여전히 합리적이었다.
D군이 개운한 얼굴로 차를 마시며 말했다.
"그제 137이 몸을 들었다 놨다 하는 서커스였다면, 여기는 진짜 사람 대접받는 느낌이다. 깔끔하고, 체계적이고. 마음이 좀 놓인다. 그래도 역시 내 허벅지 감당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이대. 내는 역시 돈 두 배 내야 맞는 거 같다."
그렇게 미드급 스파의 두 축이 정리되었다. 137이 관광객을 위한 화려한 '한 방'이라면, Miu Miu는 언제 와도 실패 없는 '균형 잡힌 안식처'였다.
스파가 일상이 된 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 Thirsty Thursday에서 만난 민이 아내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MJ, 나 아는 로컬 스파 있는데 같이 갈래? 진짜 좋은 곳이야."
민은 베트남 여성이었고, 우리에게 호치민의 진짜 로컬 문화를 안내해 주는 길잡이였다.
"어떤 곳인데?"
"3군 주택가에 있어. 외국인들은 거의 모르고, 현지인들이 회원제로 다니는 곳이야. 가격은 저렴하지만 퀄리티는 진짜 달라."
그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회원제 로컬 스파라니.
"우리도 갈 수 있어?"
"당연하지! 내가 회원이니까 오늘은 특별히 체험 형식으로 이야기해둘게."
그렇게 민, 브라이언, 나, 아내 넷이 3군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간판도 작은 평범한 2층 주택이었다. 화려한 네온사인도, 호객행위도 없었다.
브라이언이 주위를 둘러보며 속삭였다. "This place looks... very local."
민이 웃으며 대답했다. "That's the point. You guys need this!"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이곳이 단순한 '저렴한 마사지샵'이 아님을 직감했다. 화이트와 우드 톤의 정갈한 인테리어, 인공적인 향 대신 은은한 허브향이 감돌았다. 이곳은 관광객의 피로를 푸는 곳이 아니라, 생활인의 피부와 건강을 '관리'하는 공간이었다.
벽에 붙은 메뉴판은 내 예상을 확인시켜 주었다. 단순한 전신 마사지보다 '트러블 집중 케어', '비타민 앰플 테라피', '탄력 관리' 같은 항목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는 마사지도 하지만 스킨케어가 메인이야. MJ, 트러블 케어 받아보는 거 어때?"
민의 제안에 아내는 트러블 케어를, 나와 브라이언은 전신 관리를 선택했다.
60분의 관리가 끝났다. 내가 받은 마사지는 화려한 기교 대신 정확한 압점으로 뭉친 곳을 풀어내는 실용적인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진짜 충격은 아내에게서 왔다. 케어를 마치고 나온 아내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어땠어?"
"대박. 진짜 대박이야."
아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 한국에서 공장형 피부과 많이 다녀봤잖아. 기계로 슥슥 하고 지나가는 거. 근데 여기는… 노동의 밀도가 달라."
그녀가 말한 '노동의 밀도'란 압출 서비스였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트러블 하나하나를 잡아내는 정성. 한국의 빠른 회전율 시스템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집요한 케어였다.
계산을 하려는데 가격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전신 관리 10만 동(약 5천 원), 아내의 집중 케어조차 20만 동 수준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가격의 차이가 아니었다. 접근 방식의 차이였다.
팁을 좀 더 얹어주려 하자, 민이 손으로 막았다.
"여긴 팁 안 줘. 그런 문화 자체가 없어. 미국이라면 모를까, 한국에도 팁 문화 없잖아? 호치민이라고 있을 리가 없지. 원래 동양 문화는 팁 문화가 아니야."
그때서야 이해가 갔다. 내가 알던 스파는 관광객을 위한 상품. 민이 데려온 스파는 동네 사람을 위한 '관리 인프라'. 같은 '마사지'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지만, 세계가 달랐다.
"나 여기 회원권 끊고 싶어."
아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민이 웃으며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가격은 좋은데, 거리가 문제야. 7군 집에서 여기까지 매번 택시 타고 오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걸?"
그 말이 맞았다. 아무리 훌륭한 로컬 샵이라도 생활 반경을 벗어나면 지속하기 어렵다. 접근성과 동선, 그것이 로컬 케어의 핵심이자 한계였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회권 결제를 포기해야 했다.
민의 로컬 스파를 나와 택시에 올랐다. 넷이 함께 타니 차 안이 좁았지만, 오히려 그게 대화하기 좋았다. 브라이언이 먼저 입을 열었다.
"So... that was really different from the other places."
"Right? 완전 다르지?"
민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내가 끼어들었다.
"근데 브라이언, 너는 어땠어? 마사지 괜찮았어?"
"Good. Very good. But..."
브라이언이 잠시 말을 멈췄다.
"I think I prefer places where I can... stay longer? You know, like sauna, tea, relax."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거기는 마사지 끝나고 바로 나와야 하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회원제인 거야."
민이 설명했다.
"동네 사람들은 자주 오니까 빨리 받고 나가는 게 효율적이지. 근데 너희처럼 가끔 오는 사람들은 체류하면서 쉬고 싶잖아."
그렇구나. 아내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한테는 Miu Miu가 더 맞는 건가?"
"용도가 다른 거지."
내가 대답했다.
"관리 받으러 가면 여기, 쉬러 가면 Miu Miu."
"정확해. 나도 피부 관리할 땐 여기 오고, 친구들이랑 놀러 가면 Miu Miu 같은 데 가."
민이 웃으며 덧붙였다. 아내가 다시 물었다.
"민은 137은 안 가?"
"거긴... 관광객 전용이지. 나 같은 현지인은 안 가. 비싸고 시끄럽고."
민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우리는 좁은 택시 안에서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7군 집으로 돌아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으로 호치민의 밤 풍경이 보였다. 오늘 경험한 세 개의 세계가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여보, 오늘 느낀 건데… 스파가 두 종류인 것 같아."
아내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응. 마사지 중심이냐, 케어 중심이냐."
"맞아. 137이랑 미우미우는 몸 풀고 피로 회복하는 '회복'이라면, 오늘 간 곳은 피부 관리하고 트러블 없애는 '관리'였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복은 누구나 필요하지만, 관리는 좀 더 적극적인 행위다. 한국에서는 비싼 비용 탓에 망설였던 '관리'의 영역이 이곳 호치민에서는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거리였다. 아무리 훌륭한 로컬 샵이라도 생활 반경을 벗어나면 지속하기 어렵다. 접근성과 동선, 그것이 로컬 케어의 핵심이자 한계였다.
그날 밤, 나는 세 개의 세계를 정리했다.
137이 보여준 퍼포먼스, Miu Miu가 알려준 균형, 그리고 민의 로컬 샵이 가르쳐준 관리(Care)의 가치. 우리는 이제 단순히 '시원한 곳'을 찾는 여행자가 아니었다. 이 도시의 삶에 스며들며 우리 몸에 맞는 최적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며칠 후, 저녁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1군과 3군의 경계 지역을 걷게 되었다. 화려한 유흥가도, 관광지도 아닌 한적한 도로변. 그곳에서 나는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4층짜리 단독 건물. 반짝이는 유리 외벽도, 과장된 네온사인도 없었다. 대신 단단한 구조와 절제된 외관이 있었다. 마치 겉모습보다 내용으로 승부하겠다는 태도를 가진 공간처럼 보였다.
'이 건물은... 뭔가 다르다.'
나는 주저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알지 못했다. 민의 로컬 샵에서 느꼈던 '케어'의 가능성이, 이곳에서 스파의 정의를 송두리째 바꾸는 경험으로 완성될 거라는 것을.
이미지 출처
커버이미지 — 얽히고설킨 도시의 전선들 아래, 우리가 발견한 세 가지 휴식의 세계. ⓒ Tuan Vy / Pexels
본문 — 호치민의 밤거리. 화려함과 혼란함이 공존하는 이곳 어딘가에 '퍼포먼스의 끝판왕'이 있다. ⓒ Huy Pham Q. / Pexels
본문 — 깔끔한 인테리어와 체계적인 시스템. 미우미우(Miu Miu)는 실패 없는 선택지다. ⓒ 이서하
본문 — 화려함 대신 정갈함이 돋보이는 로컬 스파. 이곳은 '관광'이 아닌 '생활'의 공간이다. ⓒ 이서하
다음 이야기
로컬에서 배운 건 본질이었고, Miu Miu에서 배운 건 균형이었다. 그렇다면 이 4층 건물에서 우릴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스파편 3 | 사람의 태도가 공간을 완성할 때〉
"상무님. 그녀는 내게 품격이란 무엇인지 가르쳐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