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편 1|사이공, 하이엔드를 해석하는 도시
호치민에서 가장 먼저 친해진 한국인은 J군이었다.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특유의 오지랖으로 "형"이라 부르며 빠르게 다가왔다. 처음엔 이상했다. 친하지도 않은데 지나치게 사교성이 좋았고, 눈에 띌 정도로 정의감이 넘쳤다.
한번은 여럿이 16인승 차를 타고 가는데, 창밖으로 어떤 베트남 남자와 여자가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가 손을 들어올리며 여자를 위협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J군이 갑자기 소리쳤다.
"기사님, 차 세워주세요!"
"왜?"
"저 여자 구하러 가야 해요."
순간 차 안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J군을 쳐다봤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돌아갔다. 남자가 제스처를 취한 직후, 여자가 기습 싸대기를 날리며 기선을 제압한 거였다. 베트남은 여권이 강한 나라였다.
차에서는 결국 내리지 않았지만, 그날 나는 J군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진심으로 남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
호치민에 도착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몸이 보내는 신호를 느끼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 새로운 업무, 이주 초기의 긴장감. 그 모든 게 겹치면서 어깨는 무겁게 굳어갔고, 두통은 주 2~3회씩 찾아왔다.
한번 시작되면 자고 일어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았다. 심한 날은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라면 진통제 한 알 삼키고 버텼겠지만, 여기서는 그마저 익숙하지 않았다.
야근에 시달리는 날들이었다. 오후 8시에 퇴근해도 이른 편이었다.
그날도 퇴근 시간 후 사무실에서 목을 주무르고 있었는데, J군이 다가왔다.
"형, 아직 마사지 안 받아봤지?"
"응, 아직."
"나랑 같이 가자. 진짜 시원하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한국에서 마사지는 특별한 날에나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J군은 마치 저녁 먹으러 가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했다.
"지금?"
"응, 지금. 형 집 근처 푸미흥에 괜찮은 곳 있어."
"푸미흥?"
"응. 7군. 형 거기 살잖아."
작은 2층 건물
J군이 데려간 곳은 푸미흥의 작은 2층 건물이었다.
"Massage & Spa"
화려하지 않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외관.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조용한 내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라벤더였을까, 아니면 유칼립투스였을까. 정확히 무슨 향인지는 몰랐지만, 그 향만으로도 긴장이 조금 풀렸다.
리셉션 직원이 J군을 보자 웃으며 인사했다.
"Mr. J! Welcome back."
"Hi! 35번 있어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Yes, available."
J군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형도 받을 거지? 90분?"
"90분?"
"응. 60분은 아쉽고 90분이 딱 좋아."
"이 형은 처음이니까 7번으로 해주세요."
번호 시스템
대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J군에게 물었다.
"35번이 뭐야?"
"번호. 여기는 테라피스트마다 번호가 있어."
"번호?"
"응. 한 번 좋은 시술 받으면 다음에 그 번호로 지명하면 돼. 35번은 내가 어디를 시원해하는지, 압을 어느 정도 선호하는지 완전히 알아. 그래서 나는 항상 35번한테만 받아."
"그럼 35번이 없으면?"
"그럼 7번. 7번도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J군이 말을 이었다.
"한 번은 35번 생일이라길래 팁으로 50만 동 줬어."
"50만 동?"
"응. 보통 팁이 5만 동에서 10만 동 정도거든. 근데 생일이라길래 10배 줬지. 35번이 진짜 고마워하더라. 눈물까지 흘렸어."
나는 잠시 생각했다. 2만 5천 원. 한국에서는 큰돈이 아니지만, 여기서는 의미가 달랐다.
"그 뒤로 35번이 나 진짜 잘 챙겨줘. 한 번은 내가 예약 없이 갔는데, 다른 손님 받고 있는 중이었거든? 근데 끝나자마자 바로 나 찾더라."
침대 위에서 시작된 회복
잠시 후, 7번이라는 작은 체구의 여성이 나를 안내했다.
영어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압의 세기를 묻는 간단한 제스처만으로 충분했다.
"Strong? Medium? Soft?"
나는 "Medium"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침대에 엎드렸다.
처음 몇 분은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낯선 손길, 낯선 공간. 하지만 그녀의 손이 어깨를 따라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하자,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압은 정확했다.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오일이 등 줄기를 따라 미끄러지듯 퍼졌다. 손가락 끝이 뭉친 승모근 깊숙이 파고들 때, 억눌려 있던 날숨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다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감각
이건 그냥 마사지가 아니었다. 기술이었다.
90분 동안 바뀐 것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 나는 잠들어 있었다.
얕은 잠이었지만,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긴장을 완전히 놓은 순간이었다. 어깨의 무게가 사라졌고, 머리의 통증이 잦아들었다.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실제 체감은 30분 정도로 느껴질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그만큼 잘 쉬었다는 뜻이었다.
마사지가 끝나고 일어났을 때,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과장이 아니다. 시야가 더 선명했고, 호흡이 깊어졌고, 무엇보다 마음이 고요했다.
로비로 나오자 J군이 웃으며 물었다.
"어땠어?"
"...미쳤다."
"그치?"
리셉션에서 계산을 하는데, 가격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250,000 VND. 한화로 약 13,000원. 한국이라면 택시비로 날아갈 돈. 혹은 치킨 한 마리 값. 그 돈으로 나는 90분의 완전한 휴식과, 다시 일할 수 있는 몸을 샀다. 이것보다 확실한 투자가 있을까?
한국에서 이 정도 시간이면 최소 8만 원은 나왔을 텐데.
J군이 말했다.
"여기서는 이게 일상이야. 나는 2주에 한 번은 꼭 와."
J군과 함께 마사지를 받은 뒤로, 나는 자연스럽게 그곳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몸이 피곤할 때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J군이 말했다.
"형, 피곤해지기 전에 가는 게 더 좋아.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잖아."
그 말이 맞았다.
야근에 시달리는 날들이 계속됐지만, 나는 전략을 세웠다.
너무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8시에 퇴근해서 늦어도 9시 전에는 마사지샵에 도착했다. 90분 마사지를 시작하고, 10시 30분 종료, 11시 집 도착. 씻고 바로 취침.
이 루틴이 주 2~3회 찾아오던 두통을 잡아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7번을 지명하게 됐다. J군처럼 나도 번호 시스템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월요일: 업무 시작
화요일-목요일: 집중 업무 + 야근
컨디션 나쁜 날: 8시 퇴근 → 9시 마사지 시작 → 11시 귀가
주말: 회복된 상태로 휴식
이 리듬은 내 삶을 바꿨다.
한국에서는 월요일부터 쌓인 피로가 금요일에 폭발했다. 주말은 쓰러져 자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피로는 쌓이지 않고 흘러갔다.
어느 날, 한국에 있는 L군과 통화를 했다.
"거기서 뭐 하고 지내?"
"일하고... 스파 다니고."
"스파? 자주 가?"
"응, 주 2~3회?"
"미쳤네. 돈 많나 봐."
그 말을 듣고 웃었다. L군에게는 스파가 여전히 '사치'였다. 하지만 내게는 '생활'이었다.
한국에서 90분 마사지는 8만 원이 넘는다. 호치민에서는 1.3만 원이다. 하지만 차이는 가격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스파는 '사치'다. 특별한 날에만 가는 곳. 예약이 필요하고, 마음먹어야 갈 수 있다.
호치민에서 스파는 '일상'이다. 주 2~3회 가도 부담 없고, 예약 없이 퇴근길에 들를 수 있다.
인식이 달랐다.
한국 vs 호치민
90분 마사지: 8만원+ vs 1.3만원
인식: 사치 vs 일상
빈도: 특별한 날 vs 주 2~3회
접근성: 예약 필요 vs 즉시 이용
한국에서는 스파를 '이벤트'로 소비한다. 하지만 호치민에서는 스파를 '인프라'로 사용한다.
이곳에서 스파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누구나, 언제든, 부담 없이 누리는 회복의 민주화. 그것이 호치민이 가진 가장 큰 복지였다.
J군은 나를 여러 곳으로 데려갔다.
그중 하나가 "Thirsty Thursday"라는 외국인 모임이었다.
매주 목요일 저녁, 호치민의 로컬 플레이스를 탐험하는 모임.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처음엔 낯설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J군만 믿고 따라갔는데, J군은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This is my friend. He just moved here."
그렇게 만난 사람들 중에 마크와 리나가 있었다. 민과 브라이언도 있었다.
그날 이후, 이 모임은 내 호치민 생활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이 도시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스파는 특별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도시 전역에 퍼져 있었다.
J군이 알려준 곳만 해도:
회사 근처 : 점심시간용 30분 발마사지 샵
집 근처 : 퇴근 후 전신 케어 스파 (푸미흥, 내가 다니는 곳)
쇼핑몰 안 : 쇼핑 중 들를 수 있는 간단한 케어샵
스파는 목적지가 아니었다. 생활 동선 안에 배치된 공간이었다.
어느 날 J군이 말했다.
"형, 점심 대신 발마사지 받고 올게. 30분이면 돼."
처음엔 이상했다. 점심을 거르고 마사지를? 하지만 J군은 30분 후 돌아왔고, 오후 내내 집중력이 높아 보였다.
나도 한 번 시도해봤다. 그리고 이해했다.
이 도시는 회복을 위해 시간을 따로 만들지 않는다. 일상 안에 회복을 배치한다.
그리고 또 하나 발견한 게 있었다.
머리를 자르러 한국인 미용실에 갔을 때였다.
커트가 끝나고 한국 미용실처럼 머리를 감겨줬다. 그런데 이상하게 너무 오래 감겨주는 거였다. 지압까지 해주면서.
"이거... 원래 이렇게 해주는 거예요?"
"네, 두피 마사지 포함이에요."
헤어 트리트먼트 제품의 시원한 느낌이 지압과 합쳐지면서 진짜 너무 시원했다. 머리속까지 개운해지는 느낌이랄까. 전신 마사지랑은 또 다른 종류의 회복이었다.
계산하며 물었다.
"혹시 두피 마사지만 받을 수도 있어요?"
"네, 5만 동이면 20분 받으실 수 있어요."
5만 동. 2,500원.
나중에 알고 보니 호치민의 대부분 미용실은 이런 시스템이 있었다. 머리를 자르지 않아도 5만 동만 내면 20분간 두피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 뒤로 두피 마사지를 자주 받았다. 두통이 올 것 같을 때, 전신 마사지까지는 필요 없지만 뭔가 개운함이 필요할 때.
이건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케어가 아니었다. 호치민의 생활 곳곳에 얼마나 회복 시스템이 녹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호치민에서 살기 시작한 초반, 가장 먼저 몸으로 느낀 건 이 도시의 회복 속도였다.
한국에서의 회복은 늘 미뤄야 하는 문제였다. 월요일부터 쌓인 피로는 금요일이 되어야 풀 수 있었고, 머리가 지끈거려도 진통제를 삼키며 버티는 게 익숙했다.
쉬는 것은 사건이었고, 회복은 사건의 사후 처리처럼 다뤄졌다.
그런데 호치민에서는 달랐다. 회복은 미뤄지지 않았다.
야근 → 8시 퇴근 → 9시 스파 90분 → 11시 귀가 → 즉시 회복.
단순하면서도 놀라운 리듬이었다.
회복을 기다리지 않는다. 필요하면 바로, 일상 안에서 처리한다.
이 리듬이 주는 감각은 강렬했다. 바쁘게 살아도 삶이 깎이지 않았다. 피로는 쌓이지 않고 흘러갔다.
주 2~3회 찾아오던 두통도 사라졌다.
그 흐름의 중심에는 스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J군이 있었다.
이미지 출처
커버이미지 — 회복을 기다리지 않는 도시. 호치민 밤의 전경 ⓒ 이서하
본문 — 낯선 도시의 소음과 열기. 그 속에서 J군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 이서하
본문 —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시의 소음이 차단된다. 라벤더 향이 먼저 마중 나오는 공간. ⓒ 이서하
본문 — 90분의 침묵. 근육이 비명을 지르다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시간. ⓒ Unsplash Heftiba / Unsplash
본문 — 단돈 2,500원의 사치. 이 도시에서 회복은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이다. ⓒ 이서하
다음 이야기
그리고 주말, 민, 브라이언, 아내와 함께 3군의 조용한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케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된다.
〈스파편 2 | 케어의 발견, 세 개의 세계〉
"마사지가 아니라 케어다. 풀어주는 게 아니라 회복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