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편 3|사이공, 하이엔드를 해석하는 도시
호치민에 온 지 2년. 나는 회사를 대표해 이곳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스템을 설계하고, 팀을 꾸리고, 수십 명의 직원을 관리했다. 사무실의 불은 늘 내가 껐다. 새벽이슬이 맺힐 때까지 혼자 남아 자료를 정리하고, 다음 날의 전략을 짰다. 주 2~3회씩 찾아오는 두통은 원인 없는 결과가 아니었다.
나의 고됨은 곧 아내가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짐을 의미했다.
오직 나만을 믿고 낯선 타국에 온 그녀. 타국에서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찾았다. 미식을 탐하고, 리비에라 포인트의 공간을 꾸미고, Mifuki 스파를 찾았다. 그것들은 사치가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우리 삶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였다.
그 치열한 시간이 다시 임계점에 다다를 무렵, 우리는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나는 결심했다. 오늘 하루만큼은, 우리 둘을 위한 완벽한 시간을 설계하겠다고.
결혼기념일 당일. 우리는 다시 Times Square 건물을 지나 The Reverie Saigon으로 향했다.
호텔 입구는 여전히 건물 뒤편에 숨어 있었다.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간판. 하지만 이번에는 알 수 있었다. 이 은폐는 불친절이 아니라, 아무나 들이지 않겠다는 '선별'의 의도라는 것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은 묵직하게 열렸다.
내부는 어두웠고, 거울은 사람의 형체를 조금씩 비틀어 반사했다. 벽면은 보석 광석 같은 질감으로 빛을 흐렸다. 화려하지만 묘하게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
이 공간은 올라가는 동안 탑승자에게 무언의 무게감을 요구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등을 펴고 정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건 감탄을 유발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자세를 교정하는 구조였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서 진짜 The Reverie Saigon이 등장했다.
압도는 크기에서 오지 않는다. 질서에서 온다.
천장은 성당처럼 높았고, 마르칸토니오 대리석 패턴이 흐르는 바닥 위로 빛의 결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었다.
Visionnaire, Poltrona Frau, Giorgetti.
하이엔드 아트 가구와 이탈리아 왕실 납품 브랜드, 그리고 장인의 수공 철학이 담긴 가구들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럭셔리가 '미니멀'을 택하며 절제를 미덕으로 삼을 때, 이곳은 그 공식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보라, 골드, 에메랄드. 문장을 쓰듯 설계된 조각형 가구 라인.
이곳은 돈으로 지은 호텔이 아니다. '이탈리아'라는 확고한 감각적 정체성과 의지로 지은 호텔이다. 은근한 매력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완성도로 과함을 설득하고 있었다.
체크인 데스크 앞에 섰다. 직원이 모니터를 확인하더니 부드럽게 고개를 들었다.
"Welcome back, Mr. Lee. We have prepared Junior Suite River View for you."
그리고 덧붙였다.
"And... Mango, of course."
나와 아내는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Mango, please."
첫 방문 때, 웰컴 드링크로 무심코 주문했던 망고 주스. 그 사소한 취향이 기록되어 있었다. 묻지 않고 준비된 한 잔의 주스. 호텔은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Junior Suite River View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입구부터 침대까지, 붉은 장미꽃잎으로 만든 길이 이어져 있었다.
순간, 2020년의 호치민과 2016년의 태국 코사무이가 겹쳐졌다. 침대 위에는 그때처럼 타월로 접은 백조 두 마리가 하트를 그리며 마주 보고 있었다.
"여보... 진짜 예쁘다."
아내가 내 손을 꼭 잡았다. 4년 전의 그날처럼.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행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
코사무이는 시설은 완벽했지만 리듬이 없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밖으로 탈출해야 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장미꽃길은 시작일 뿐이었다. 스파, 애프터눈 티, 라운지. 완벽한 서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창밖으로 사이공강이 펼쳐져 있었다. 방을 둘러보던 나는 욕실 어메니티에서 시선이 멈췄다.
지난번 일반 객실에서 묵었을 때는 Chopard였다. 부드럽고 정돈된, 불편하지 않은 감각. 하지만 이번 주니어 스위트에는 Hermès가 놓여 있었다.
Chopard가 아니라 Hermès.
단순히 더 비싼 브랜드라서가 아니다. 묵직하고 질서 있는 향. 감각이 흐르지 않고 공간의 공기를 정리하는 밀도.
이 호텔은 어메니티를 브랜드로 고르지 않고, '레벨'로 나누고 있었다. 상위 객실에만 제공되는 에르메스는, 뷰와 라운지뿐만 아니라 '감각의 접근권' 또한 계층화되어 있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미니바에는 가격표가 없었다. 냉장고 안의 모든 음료와 스낵은 자유였다.
"여보, 여기 지난번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엔 진짜야."
짐을 풀고 예약된 스파로 향했다.
호텔 스파는 처음이었다. 복도에 들어서자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진한 향이 아니라, 속도를 낮추는 차분한 향이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직원들은 손짓 하나 없이 눈 맞춤만으로 환영의 신호를 보냈다. Mifuki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규모감과 전문성을 호텔이라는 하나의 구조 안에 완벽하게 이식해 놓은 듯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우리가 Mifuki에서 발견했던 핵심 가치를 다시 마주했다.
'같은 공간, 같은 리듬, 같은 감각.'
치열했던 일상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회복하는 시간. 우리는 스파를 통해 관계를 복원해 왔다.
하지만 Mifuki나 Miumiu 같은 외부 스파는 한계가 명확했다. 마사지가 끝나면 다시 시끄러운 현실의 거리로 나가야 했다. 기껏 맞춰놓은 리듬이 도시의 소음 속에서 다시 흐트러지는 것이다. 회복은 2시간짜리 단편 영화로 끝이 났다.
The Reverie Saigon은 달랐다.
스파의 노곤함은 애프터눈 티의 여유로, 다시 객실의 휴식으로 끊김 없이 이어진다. 동선이 끊기지 않으니 감각도 끊기지 않는다. 회복이 2시간이 아닌, 하루 전체로 확장되는 경험.
상담 카드를 작성했다. 이 호텔은 취향을 묻지 않고 신체 상태를 물었다.
커플 룸의 통창 너머로 야외 수영장의 푸른 곡선이 내려다보였다. 족욕볼 안에 띄워진 장미 꽃잎을 보며 관리사가 말했다.
"오늘 하루는 여기서 천천히 시작하시면 됩니다."
침대에 엎드렸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더 굳어 있었고, 더 많은 힘을 쥐고 있었다.
관리사의 손이 닿자 체온이 깊은 층까지 스며들었다. 근육을 힘으로 으깨는 것이 아니라, 근막의 길을 따라 '밀어 올리고' '흘려보냈다'.
몸이 조용히 정리되자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마사지가 아니라, 몸의 무게를 되돌리는 의식이었다.
스파 베드를 떠나 아내는 파우더룸으로, 나는 사우나로 향했다.
스파와 연결된 통로 끝,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음악이 사라지고 라탄 소재 대신 차가운 대리석이 등장했다. 락커룸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지만 질서가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돈된 나무 락커 안에는 접혀있는 타월과 케어 키트가 완벽하게 동일한 구성으로 놓여 있었다. 화장대에는 L'OCCITANE(록시땅) 어메니티와 제형 도구가 차분히 배열되어 있었다. 관리받은 사람이 스스로를 다시 정돈할 수 있는 여백. 그것은 배려라기보다 마무리의 품질에 대한 집요함이었다.
습식 사우나의 문을 열자 뜨거운 증기가 시야를 가렸다. 내부는 온통 대리석이었다. 열이 천천히 피부를 눌러왔다. 이 넓은 공간에 나 혼자였다.
뿌연 증기 속에서, 문득 서울에서의 기억 하나가 겹쳐졌다. 가난했던 젊은 날. 막차를 놓치거나 택시비가 아까워 몸을 구겨 넣었던 동네 사우나. 좁은 수면실에서 쪽잠을 자며 견뎌야 했던 가난한 밤들. 그때 사우나는 휴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대피소였다.
시간이 흘러 지금 호치민. 나는 5성급 호텔의 대리석 사우나에 앉아 있다. 공간은 변했지만, 어깨를 누르는 가장의 무게는 여전했다. 매일 새벽 사무실의 불을 끄며 삼켜야 했던 고단함, 그리고 그 시간을 홀로 견디게 한 아내에 대한 부채감.
뜨거운 열기 속에서 땀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몸 안의 노폐물과 함께, 마음을 짓누르던 책임감의 찌꺼기들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버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땀을 흘린다.
그렇게 몸의 온도를 올리고 마음의 무게를 덜어냈다. 비로소 온전히 아내에게 집중할 빈 공간이 생겼다.
사우나를 나와 로비 층의 원형 계단을 따라 'Café Cardinal'로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오는 순간 거대한 공간이 열렸다. 복층 전체가 뚫려 있어 시선이 수직으로 확장되었고, 대리석 패턴이 물결처럼 이어진 바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곳은 단순한 라운지가 아니었다. 공간이 사람을 압도하도록 설계된 '극장형 다이닝 존'이었다.
위층 로비에서 연주되는 피아노 선율이 계단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그 음악 소리를 들으며, 나는 2007년의 홍콩으로 잠시 미끄러져 들어갔다.
23살, 혼자 떠난 여행. JW 메리어트 호텔의 로비에서 처음 경험했던 애프터눈 티. 홍차 향은 그윽했고 스콘은 따뜻했다. 모든 게 완벽했다. 단 하나, 찻잔을 내려놓은 시선 끝엔 비어 있는 의자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홍콩의 로비가 흐려지고, 호치민의 높은 창가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2020년, 호치민 Café Cardinal.
시선의 끝에, 아내가 미소 지으며 찻잔을 들고 있었다. 집에서는 늘 무언가를 챙기느라 바빴던 아내의 손이, 이곳에서는 오롯이 찻잔만을 들고 우아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은빛 3단 트레이 위에는 망고, 코코넛, 패션후르츠 등 동남아의 햇살을 머금은 디저트들이 놓여 있었다.
"여보, 오랜만에 참 여유 있는 오후다."
"응."
그래. 오후의 홍차는 본래 둘이 즐기는 것이었구나. 비어있던 맞은편 의자가 채워지자, 비로소 맛이 완성되었다.
애프터눈 티를 마치고 객실로 돌아왔다.
"여보, 저녁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냥 여기 있자. 라운지도 있으니까."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이 완벽한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다.
저녁은 호텔의 심장, 21층 The Reverie Lounge에서 보내기로 했다.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클래식한 몰딩과 순백색과 골드의 조화, 바닥을 가득 덮은 두꺼운 페르시안 카펫,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파노라마. 이곳은 단순한 라운지가 아니었다. 호텔이 숨겨둔 별관 응접실 같았다.
자리에 앉자 직원이 다가왔다.
"Good evening. May I offer you something to drink first?"
"Hennessy XO, please. On the rocks."
"And mojito for me."
잠시 후, 얼음 위로 호박색 액체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 묵직한 오크 향과 함께 기억 하나가 얼음 위로 떠올랐다.
D 군이었다.
몇 년 전 서울. 온라인 동호회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첫 만남은 동네 세계 맥주집이었다. 7만 원 남짓 나온 계산서를 내가 집으려는 순간, D군이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형, 이건 내가 살게요. 다음에 형이 사이소."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그의 말씨엔 투박한 정이 묻어 있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2차는 내가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D군이 말했다.
"형, 우리 집 앞 바 가실래예? 거서 키핑 해둔 술 있는디, 같이 한잔 하이소."
"키핑? 어떤 거?"
"꼬냑입니다."
D군의 집 앞 바는 평범한 동네 바였다. 하지만 사장이 가져온 병을 보고 나는 놀랐다. Hennessy XO.
처음 만난 사이에 헤네시 XO를 나눠 마시자고?
반 병 정도 남아 있던 술은 대화와 함께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자 D군은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사장님, 이거랑 똑같은 거 한 병 더 주이소."
두 번째 병도 거의 다 비워갈 무렵이었다. 한 병에 30만 원. 당시 학생이던 나에게 하룻밤 술값 30만 원은 큰 부담이었다.
D군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지, 덤덤하게 말했다.
"형, 우리 동네까지 왔는디 오늘은 내가 낼게예."
그날 D군은 50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신세는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이후 호치민에 놀러 온 D군에게 빚을 갚으려 했지만, 그는 이곳에서도 더치페이를 고집했다. 마음의 빚은 갚을 길 없이 여전히 잔바닥에 침전물처럼 남아 있었다.
지금 나는 이곳에서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Hennessy XO를 마시고 있다. 더 이상 그 술값이 두렵지 않은 나이가 되었지만, 이 맛은 여전히 그때의 고마움과 미안함을 소환한다.
"여보, 무슨 생각해?"
"응? 아, 옛날 친구 생각."
"누구?"
"D군. 처음 만났을 때 헤네시 XO 사준 친구."
"아, 그 대구 친구? 호치민 왔을 때 같이 돌아다녔던?"
"응. 그 친구."
아내가 웃으며 내 손등을 덮었다.
"다음에 또 오면 여기 데려와. 우리가 사자."
"그래. 그래야지."
나는 허공에 잔을 살짝 부딪쳤다. D군, 고마워.
리버리의 라운지는 뷔페가 아니라 풀 테이블 서비스다. 직원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데, 물 잔은 채워지고 접시는 정돈된다. 이것은 훈련이 아니라 철학이다.
밤은 깊어가고, XO의 향은 짙어지고, 우리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는 밤이었다.
라운지를 나와 객실로 돌아왔다. 회복은 몸에서 시작해 마음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느끼며 문을 열었다.
"어, 저기 봐."
아내가 데스크를 가리켰다. 얼음 통에 담긴 샴페인 한 병, 장미 한 송이와 초콜릿. 그리고 쪽지 한 장.
Dear Mr. Lee,
Happy Anniversary.
We wish you a wonderful evening.
The Reverie Saigon
"여보, 이거..." 아내가 쪽지를 들었다.
"기념일 축하한대."
아침의 장미꽃길이 환영이었다면, 저녁의 샴페인은 축하였다. 호텔은 우리의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었다.
나는 욕실로 향했다.
이 호텔의 욕실은 사이공강 리버뷰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물이 차오르자 야경의 수평선이 욕조의 수평선과 나란히 정렬되었다.
그 생경한 풍경 속에서, 문득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서울, 몇 년 전.
결혼식 당일,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 L군이 미안하다며 선물을 준비했었다. 본인이 일하는 장충동 풀만(Pullman) 호텔, 그곳의 디너와 객실이었다.
L군이 내어준 방은 일반실이 아니었다. 복도 가장 끝에 있는 방.
"왜 이렇게 끝 방을 줬지?"
의문을 품고 들어간 욕실에서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욕실의 천장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다.
욕조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밤하늘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고요하고 평안했다. 나는 그 까만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서울의 밤하늘이 흐려지더니, 호치민의 화려한 야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천장의 별빛은 도시의 불빛이 되었고, 서울의 하늘은 사이공강의 검은 물결로 바뀌어 있었다.
고층 건물의 욕실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뷰. 닫힌 공간이 열리는 묘한 해방감.
서울에서 한 번, 사이공에서 다시. L군이 선물해 주었던 그 밤의 하늘이, 사이공강의 야경 위로 오버랩되었다.
"L군, 고마워."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따뜻한 물이 근육을 감쌌다. 반신욕으로 깨어난 몸은 긴장을 놓았고, 심박수는 과하지 않은 이완 구간으로 내려왔다. 욕조는 단순한 목욕 공간이 아니었다. 하루의 속도를 제어하는 장치였다.
욕조에서 나와 Frette 가운을 걸쳤다.
이곳의 침구와 린넨, 로브는 모두 Frette다. 타월의 감각이 로브로 이어지고, 침대 시트로 끊김 없이 연장된다. 다른 촉감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것. 그것이 '정리된 감각'을 만든다.
베개는 Low Pillow를 선택했다. 목 라인을 편안하게 개방해 호흡을 확보하는 타입.
침실로 돌아오니 아내가 먼저 누워 있었다. 4년의 호치민 생활 중 가장 평온한 얼굴이었다.
조명을 낮췄다. 더 이상 오늘을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완벽하게 설계된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호텔은 조용히 할 일을 했고, 우리는 그 안에서 무너지지 않는 법을 다시 배웠다.
밤이, 회복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커버이미지 & 본문 — All photos ⓒ 이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