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서 발견한 합리적 하이엔드 라이프 – 런치 편

하편 - 고층 스카이라인 레스토랑, 15,000원의 기적

by 이서하

21층에서 만난 뜻밖의 초대

낯선 건물 앞에서 시선이 멈췄습니다.

호치민 중심부에 솟아 있는 거대한 타워.

반짝이는 유리 파사드만 봐도 안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이서하, All rights reserved

1층 로비는 대리석 바닥과 커피 향으로 가득했습니다. 로비를 지나자, 통제된 게이트 앞에서 보안 요원이 다가왔습니다.
“21층 레스토랑 이용 맞으시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막혀 있던 통로가 열렸습니다.

마치 작은 통과의식처럼 느껴지더군요.


엘리베이터 옆에는 작은 배너가 서 있었습니다.


“Meet me at Lunch – only from VND 149,000 ++"


한화로 약 8,000원부터 시작.


그런데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가 붙어 있던 배경이 달랐습니다.

대리석 로비, 보안 게이트, 호치민 중심부의 랜드마크 빌딩.

그 모든 맥락 위에 놓인 가격표는 ‘싸다’가 아니라 ‘이건 경험이겠다’라는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창밖의 도시, 테이블 위의 세계

21층 버튼을 누르고 올라가자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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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와 진입로는 짙은 목재와 샹들리에 조명으로 고급스러움을 풍겼고, 안쪽으로 들어서자 벽면 가득한 유리창 너머로 호치민 시내가 내려다보였습니다.


붉은 지붕이 이어진 오래된 건물들, 끊임없이 경적을 울리며 흐르는 오토바이의 행렬,

멀리 은빛으로 반짝이며 굽이치는 강줄기.

발아래는 분주한 도시, 내 앞 테이블 위에는 고요한 세계가 놓여 있었습니다.

창가 자리는 빠르게 움직인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보상.

그날은 운이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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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 만든 작은 축제

앞서 경험한 3코스 런치가 ‘정석’이었다면, 이곳은 한 단계 더 진화한 모습이었습니다.

애피타이저부터 본식, 디저트까지 모든 코스에서 폭넓은 선택지가 주어졌고, 각자 한 메뉴씩 골라 자신만의 코스를 완성할 수 있었죠.


애피타이저는 만두, 샐러드, 랩 등 여러 가지가 차례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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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식은 버거, 파스타, 라이스 디쉬 등 다양했고,

계절마다 메뉴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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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디저트는 초콜릿 무스와 소르베, 유리잔 속 디저트까지. 접시는 모두 작은 전시품처럼 정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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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평하기 전에, 이미 공간과 접시가 말해주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점심 한 끼가 이렇게까지 될 수 있구나.’


합리적 하이엔드의 의미

이 레스토랑은 원래 저녁에 스테이크, 해산물, 와인 같은 고급 코스로 운영되는 파인다이닝입니다.

런치는 일종의 프로모션. 디너의 격을 낮 시간대에 압축해 보여주는 구조죠.

덕분에 우리는 저녁 가격의 십 분의 일로, 같은 공간과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합리적 하이엔드란 바로 이런 겁니다.

가격이 싸다는 뜻이 아니라, 동일한 가치를 다른 구조에서 합리적으로 누릴 수 있을 때 성립하는 개념.

21층에서 먹은 점심은 그 사실을 눈앞에서 증명해 주었습니다.


작은 사치가 바꾼 태도

그 후 저는 이 레스토랑을 일주일에 두 번은 찾았습니다.

지인들에게도 소개했고, 다녀온 모두가 만족했습니다.

그렇게 한두 곳씩 제가 발견하고 공유한 장소들이 모여, 훗날 사람들은 농담처럼 그것들을 “제이슨 로드”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레스토랑이 바로 그 시작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점심은 단순히 “싸고 맛있었다”는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제 일상에 작은 사치를 허락함으로써,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준 경험이었습니다.

합리적이면서도 충분히 하이엔드한 삶의 가능성.
바로 그것이 제가 이 시리즈를 통해 끝까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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