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노트 11|이소룡의 한 가지 발차기의 반격

사라질 기술일수록 마지막 세대가 시장을 지배한다

by 이서하

한 가지 발차기는 시대를 이기지 못했지만,
시대가 잊은 순간 반격을 시작한다.

이소룡은 말했다.

“나는 만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한 사람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두렵다.”

이 문장은 오랫동안 집중의 가치, 장인정신의 상징처럼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정반대 이야기를 한다.

적응력, 문해력, 커뮤니케이션, 협업 능력.

이제는 하나만 잘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나 역시 오래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한 사람을 만나고 나서 깨달았다.

그 말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라는 것을.

세상은 분명 제너럴리스트를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시대가 변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능력,

대체 불가능한 전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1. 사라지는 게 아니다. 희소해지는 것이다.

2008년부터 15년째 같은 곳에 옷을 맡기고 있다.

처음 그 수선집을 찾았을 때는 중구의 오래된 건물 2층이었다.

낡은 간판과 조용한 재봉기 소리, 시간을 견뎌온 기술이 숨 쉬는 공간.

하지만 그 공간에는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오래된 기술만이 품을 수 있는 공기의 무게 같은 것.

처음 맡긴 옷은 재킷 소매 수선이었다.

대부분의 수선집에서는 “이 정도면 그냥 입으셔도 됩니다”라는 답을 들었지만,

그곳의 실장님은 옷을 눈으로 읽는 듯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옷은 숫자가 아니라 균형입니다.
길이를 맞추는 게 아니라 흐름을 맞추는 일이에요.”


그 말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옷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옷의 구조와 품격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로 나는 다른 곳을 가지 않았다.


지금 실장님은 청담동의 오래된 아파트 상가에서 혼자 일하신다.

공간은 더 작아졌고 간판도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손님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일의 기준에 대한 태도다.

한 번은 내가 바지를 맡기며 이렇게 말했다.

“자주 입을 옷도 아니라 편하게 해 주세요.”

그는 단칼에 이렇게 말했다.

“편하게 해 달라는 말이 제일 위험합니다.
결국 대충 해달라는 뜻이니까요.”


그는 성급함을 경계하고, 타협을 거부한다.

돈을 위해 속도를 택하지 않고, 정확성을 위해 불편함을 선택한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기술자가 아니라, 장인이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다.

이제는 이런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장님은 요즘 말로 하면 ‘비효율적인 사람’이다.

속도보다 정확성을, 이익보다 완성도를, 트렌드보다 원칙을 택한다.

그는 변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 회사도 규모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방식이 틀렸다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다른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일은 시간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일은 정확도로 측정된다.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그는 소공동 양복점에서 일을 배우셨는데,

그곳에서는 하루 종일 손님들 담배 심부름과 재단 조각 정리만 하며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가 말했다.

“그 시절에 배우는 건 바느질이 아니라 책임감이었어요.”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이 사람은 평생 동안 한 가지 일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그 세계 안에서 그는 결코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지킨 사람이었다.


2. 효율이 평범함을 대체하면, 희소성은 반격을 시작한다

그는 말했다.

“10년 뒤면 이 동네에서 수선 일은 거의 사라질 겁니다.
가르쳐도 할 사람이 없어요. 고되고 인내가 필요하거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멈췄다.

스스로의 업에 대해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불평하지도 않았다.

단지 하나의 사실을 확인하듯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다는 건, 없어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사라질 정도로 희소해지는 것일 뿐.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은 효율의 시대라고.
AI와 시스템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할 거라고.
제너럴리스트가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그 말은 절반만 맞다.

효율과 자동화는 늘 평균적인 일부터 대체한다.
대체 가능한 사람과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차이는 기술의 범위가 아니다.
일을 대하는 기준, 정확성, 그리고 책임감이 경계를 만든다.


시장에는 두 종류의 가치가 존재한다.

대량성의 가치 : 더 싸게, 더 빨리, 더 많이 만드는 힘

희소성의 가치 : 오직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정확함과 신뢰


지금 세계는 전자, 대량성의 가치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래서 모두가 효율과 다기능을 말한다.

제너럴리스트가 각광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균형은 언제나 돌아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셜리스트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줄어든 것은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다.

다시 말해,

전문가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급이 줄어든 시장에서는 반드시 같은 일이 일어난다.

가치는 폭발한다.


3. 한 가지 발차기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장인정신은 낭만일 뿐이다. 이제 세상은 속도와 효율의 시대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효율은 시장을 지배할 수 있지만, 신뢰를 지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 물건을 살 때 가격을 보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결국 사람을 찾는다.

차를 고칠 때는 믿을 만한 정비사를 찾고,

수술이 필요할 때는 가장 정확한 의사를 찾는다.

옷의 생명을 살리고 싶을 때는 마지막 남은 장인을 찾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술은 결과를 만들지만, 태도는 신뢰를 만든다.


세계는 점점 두 방향으로 나뉠 것이다.

가성비의 확장 : 더 많은 사람이 이용 가능

하이엔드의 상승: 진짜 실력과 신뢰의 비용 상승


중간은 사라질 것이다.

평균은 자동화되고, 보통은 시스템에 흡수된다.

하지만 그 위에 남는 작은 영역이 있다.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존재하는 영역.

그 사람은 완벽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정확함을 말한다.

그 사람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정직하게 오래 남는다.


나는 이제 확신한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한다는 건 기술을 파는 일이 아니다.
기준을 지키는 사람으로 남는 일이다.


세상은 변하지만, 기준은 사람을 남긴다.

이제 사람들은 다시 ‘잘하는 사람’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사라지는 직업은 없다. 사라지는 건 기준이다.
기준을 지킨 사람만이 끝까지 남는다.

한 가지 발차기의 무서움은 정교함이 아니라 희소성이다.

스페셜리스트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공급이 사라졌을 뿐이다.

사라질 기술일수록 마지막 세대가 시장을 지배한다.

한 가지 발차기는 시대를 이기지 못했지만, 시대가 잊은 순간 반격을 시작한다.


작가 코멘트

나는 장인정신을 미화하지 않는다.

이 글은 낭만이 아니라 구조를 이야기한다.

효율은 필요하다. 하지만 기준은 더 필요하다.

기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은 기준이며, 남는 것은 기준을 지킨 사람이다.


언젠가 나는 물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일하고 있는가?

그 기준은 세월이 지나도 당신을 증명해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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