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미 Mar 06. 2022

병아리야 메추리야

그림: @의미

초등학교 후문과 붙어있는 아파트 단지 사이엔 작은 공터가 있었다. 등하교 시간이 아니라면 조용한 공터였다. 화창한 날에만 잠시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으로 변하곤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을 골라 상인들은 공터로 모여들었다. 초등학교 하교 시간에 맞춰 색색의 돗자리들이 자리를 잡았다. 달고나, 구운 쥐포, 떡꼬치, 번데기, 오징어, 솜사탕, 쫀드기, 슬러시가 즐비했다. 이를테면 초등생들의 장날이었다. 공지 하나 없어도 아이들은 전부 좁은 공터로 몰려들었다. 저마다 모아두었던 용돈을 모두 털어 먹고 싶던 군것질거리를 입에 하나씩 물었다. 흥분된 마음으로 나 또한 기꺼이 친구들과 함께 공터로 향했다. 전 재산을 탕진한데도 아쉬운 것 없었다.


병아리 할머니가 공터에 등장한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장터에 처음으로 먹을 수 없는 게 출현한 날이기도 했다.


왜 병아리 할머니였냐 하면, 말 그대로 병아리를 팔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커다란 썬 캡을 푹 눌러쓰고 눈은 가린 채 지나가는 초등 생들을 유심히 살폈다. 볼 수 있는 건 썬 캡 위로 삐져나온 흰머리뿐이었다. 이따금 꽃무늬 부채를 요란히 부칠 때만 희끗한 눈썹이 언뜻 보였다. 할머니는 다른 상인들과는 다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쓰지 않아도 모든 여덟 살들의 시선은 병아리로 쏠렸다. 줄곧 우와 우와 환호성을 연발하며 할머니 주위로 쪼그리고 앉았다.


“한 마리에 천 원”이라고 적힌 푯말 뒤론 종이 박스가 놓여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울었다. 병아리들은 각자의 개성이 확실했다. 기본 털 색만 비슷했다. 너무 다닥다닥 붙어있어 박스 안 병아리들은 하나의 노란 덩어리 같기도 했다. 샛노란 날개가 퍼덕일 때마다 자리가 좁은지 병아리들은 서로를 짓누르며 날았다. 제자리 뜀뛰기를 했다.


내 주머니엔 딱 천 원이 있었다. 일주일 치 용돈이었다. 사실은  떡꼬치를 사 먹으려고 장날을 줄곧 기다려왔던 참이었다. 떡꼬치가 아닌 병아리라면 딱 한 마리만 데려올 수 있었다.  혼자라면 너무 외로울 텐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천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적은 돈이었다. 갖고 싶은 걸 다 사려면 아무래도 돈이 더 필요했다.


그날 저녁은 늦게까지 밥을 먹지 않았다. 손도 대지 않은 밥 앞에서 시위하듯 팔짱을 끼고 앉아있었다. 엄마는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가방을 바닥에 탁, 내려놓은 엄마는 소파에 몸을 날렸다. 동시에 나도 엄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축 늘어진 엄마 손이 보였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엄마 나 병아리 사줘. 용돈 모자라.”

“병아리는 사는 거 아니야.”

“하지만 학교 앞에서 팔던데?”

“그런 병아리들 다 아픈 병아리들이야. 농장에서 약하게 태어난 아기들 데려와서 파는 거야. 엄마도 다 어렸을 때 키워 봤어.”

“엄마가 아픈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엄마도 키워봤으면 나도 키워 볼래. 돈 줘.”

엄마는 그제야 상체를 일으켜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피곤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너 강낭콩도 죽인 적 있잖아. 병아리도 죽으면 어떡해. 정 예뻐해 주고 싶으면, 동생들 더 예뻐해 줘.”

“인간은 싫어. 하나도 안 귀여워.”

“귀여워서 뭐 키우는 거 아니야. 너도 지금 하나도 안 귀여워.”

소파에서 힘겹게 일어난 엄마는 다 먹고 남은 그릇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도 안 귀엽다니. 자기가 낳았으면서. 대부분의 경우 엄마는 솔직했다. 짜증이 몰려왔다. 


흥!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대답도 없었다. 흥!! 더 큰 목소리로 엄마를 쏘아봤다. 역시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왔다. 동생들이 침대 위에서 매트가 꺼질 듯이 치고받고 놀았다. 시끄러워. 쟤내들을 어떻게 귀여워하란 말이야.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한 가지였다. 


거실 티브이가 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이 조용해졌다. 밖에선 냉장고 소리와 코 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뒤꿈치를 한껏 들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목표물은 안방 침대 옆에 있었다. 체크무늬 지갑. 분명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 두었을 것이다. 손이 덜덜 떨렸다.


지퍼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듯했다. 옆에서 엄마가 몸을 뒤척였다. 숨을 꼴깍 넘어갔다. 초록색 지폐가 보였다. 병아리 열 마리가 스쳤다. 엄지와 검지를 잔뜩 세우고 지갑 사이를 조용히 헤집었다. 얌전히 손가락을 빼 지폐를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지갑, 가방 지퍼를 닫고 힐끗 침대를 쳐다봤다. 규칙적인 숨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방을 기어서 거실로 빠져나왔다. 훔친 만 원을 정성스레 접었다. 


모든 정신은 온통 창밖 하굣길 공터로 쏠려 있었다. 괜히 하늘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날들이었다.

‘오늘은 병아리 할머니가 올까? 아니면 내일은? 그 내일에 내일은?’

떨리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나는 친구들에게 토로했다. 사실은 만원이 있다는 말. 병아리들과 함께 살 거라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조그맣고 복슬복슬한 노랑이들이 어느덧 장성한 꼬끼오 닭이 되면 어떨지도 골똘히 생각했다.


병아리 할머니는 정확히 열흘 만에 다시 공터를 찾았다. 병아리 털만큼 노란 개나리가 어느덧 공터 여기저기를 메우고 있었다. 햇빛을 받는 병아리들의 털은 매끈하게 빛났다. 병아리들 주위로 여느 때처럼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는 다른 내가 있었다. 나는 기세 좋게 할머니를 에워싼 다른 여덟 살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만원이 든 주머니에서도 빛이라도 나는 것처럼.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나는  자랑스럽게 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내 할머니 앞에 들이밀었다. 처음으로 할머니와 눈이 맞았다. 어쩐지 졸려 보이던 할머니의 눈망울이 순간 반짝였다. 할머니는 돈과 나를 한 번씩 쳐다보고는 씩, 미소를 지었다. 입가 주위로 주름이 자글자글 모였다.


“할머니, 병아리 주세요.”

“오냐, 몇 마리 줄까?”

“다섯 마리요!”

 자신 있게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왜 열 마리 다 사지 않구?”

“다섯 개가 넘어가면 너무 많을 것 같아서요.”

“근데 할미는 잔돈을 안 갖구 다니는데? 만원이면 열 마리를 사야 하는 거여.”

어느 틈에 할머니는 작은 상자를 접어 열 마리 병아리를 담고 있었다. 한 마리를 담을 때마다 병아리들이 더 크게 울었다. 상자 안엔 금세 병아리 군락이 형성되었다.

“네가 잘 돌봐 주면 나중에 복날에 닭백숙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클 겨.”


지폐는 빠르게 무거운 상자로 교체되었다. 어, 저저. 어안이 벙벙한 사이 품 안에는 병아리 열 마리가  안겨있었다. 고음이 귀를 때렸다. 귀엽긴 한데 어쩐지 조금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졌다. 흥분하는 여덟 살들과 함께 나는 공터 어귀로 밀려 나왔다. 지금부턴 뭘 하면 되는 거지. 상자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친구들 앞에 상자를 내려놓고는 멀리서 할머니의 선캡을 주시했다. 혹시나 못다 한 말이 있어서 나를 불러 세우지 않을까. 할머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천천히 시선을 상자로 다시 옮겼다. 책가방을 바닥에 깔고 털썩 주저앉았다. 주위로는 친구들이 바글거렸다. 이 상태로 집에 갈 순 없었다.


대부분은 말을 한 번도 안 해본  친구들이었다. 언제 다 키우냐, 넌 무슨 돈이 그렇게 많냐. 두서없는 질문 속에 멍하니 상자만 보던 하니 눈에 익숙한 앞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까지 짝꿍이었던, 고양이 여러 마리를 키운 적이 있다던, 얼굴이 쉽게 빨개지고 점심시간이면 생기가 넘치고 김치는 꼭 남기는 준우였다. 


“너 병아리 좋아해? 혹시 너희 집에서 키울래?”

“왜?”

“우리 집에 다 가져가면 나 쫓겨날지도 모르거든”

“……”

“기르기 싫어서 너한테 넘기는 거 아니야. 우리 집엔 동생 둘이 있거든. ”


준우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매번 남기는 김치를 배식받을지 안 받을지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게 골똘했다. 하니는 잽싸게 말을 덧붙였다.

“너 혼자 키우는 거 아니야. 나랑 같이 키우는 거야. 그냥 너희 집에 두자는 거지.”

“…… 엄마가  책임질 수 없으면 데려오지 말랬는데.”

“맨날 학교 끝나면 내가 너희 집으로 가서 돌볼게. 밥도 주고, 똥도 치우고, 물도 갈고 할게. 너도 매일 얘네들 볼 수 있어서 좋잖아. 닭이 될 때까지 같이 보살피자.”


준우는 학교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병아리를 맡기기에 적격인 첫 번째 이유였다. 게다가 준우 집엔 항상 엄마가 있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부턴 언제고 엄마가 집에 있다 했다. 아주 중요한 두 번째 이유였다. 낮에는 집이 비어있고 동생 둘로 복작이는 하니 집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엄마가 보면, 놀랄지도 몰라.” 준우가 목에 매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 동안 하니는 빽빽이는 상자를 안고 옆에 서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준우 엄마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놀란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준우 짝꿍이에요.” 슬쩍 엿본 준우네 집 거실은 넓고 볕이 잘 들었다. 주먹만 한 병아리 열 마리가 무럭무럭 크기에 최적이었다.


“학교 앞에 버려진 애들 데리고 온 거야. 나랑 완이랑 키울 거야.” 웬일로 확신에 찬 말투였다. 처음으로 김치도 못 먹는다고 놀렸던 준우가 듬직했다. 하니는 준우 옆에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엔 없었다.


준우 엄마는 얼음처럼 얼어 있었다. 땡! 하고 건드려야 움직일 것 같았다. 여전히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동생이 칭얼대기 시작했다. “삐약 삐약” 과 “애-! 애” 소리가 겹쳐졌다. 준우 엄마는 멀뚱히 복도에 서있는 여덟 살들을 황급히 집안으로 들였다. 한숨 소리와 동시에 문이 닫혔다.


거실에 볕이 잘 드는 이유는 창이 큰 복도 때문이었다. 거실 옆에는 기다란 복도가 나 있었다. “여기서 얘네들 키우면 좋을 것 같아요, 아줌마.” 보일러 밑 복도 끝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준우 엄마는 당황스럽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안된다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 나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매일 학교 끝나고 저랑 준우랑 와서 볼게요. 계속 여기에 두는 거 아니고 좀 크면 저희 시골 할아버지 집으로 보낼 거예요.” 물론 그런 할아버지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다음날부터는 준우와 하굣길을 함께했다.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준우 자리로 쪼르르 달려가 병아리들의 근황을 물었다. 같이 열 마리 병아리의 이름을 정하고, 도서관에서 “그림으로 보는 조류 도감”을 찾아 읽고, 먹이의 종류와 몸의 증상들과 날개의 미세한 변화를 띄엄띄엄 익혔다. 집에선 똥 밭이 되어있는 신문지를 갈고, 물을 채우고, 노란 알갱이 밥을 새로 담았다. “병아리 관찰 일기”를 매일 쓰기로도, 약속했다. 내가  건강 상태를 기록하고 준우가  그림을 그렸다. 서로가 엄마고 아빠였다. 엄마라고 불리는 건 이상했다. 어쩐지 어깨가 으쓱 절로 올라가 만 징그럽게 답답한 구석이 있었다. 온종일 삐약거리는 병아리들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더 그랬다. 시끄럽고 이유 모를 외침. 어쩔 때는 잘 때도 병아리 십 남매의 목소리가 들렸다.

“뺙뺙뺙뺙. 뾱뾱뾱뾱.”

언제까지 엄마 여야 하나. 엄마에서 탈출하고 싶어 졌을 때쯤이었다. 아직 병아리 할머니가 다녀간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침부터 준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른 얼굴로 자꾸 내 자리를 흘깃거렸다. 나한테 화가 난 건가? 수업 시간 내내 준우는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남은 애들이 세 마리야?”

학교부터 준우 네 집까지는 10분이면 도착했다. 내가 느낀 가장 긴 10분이었다.

“응. 나머지 애들은 일요일 아침부터 몸이 안 좋아 보였어. 눈을 감고 다리를 덜덜 떠는 거야. 몸도 계속 뒤뚱거렸어.”

“…… 땅에 묻었어?”

“아니.”

“왜?”

“너도 작별인사하라고.”

“…… 나머진 괜찮아?”

준우는 괜찮다는 의미가 뭔지 모른다는 것처럼 나를 빤히 쳐다봤다.


분명 햇빛이 잘 들고 있는데도 복도는 어두웠다. 윙윙 돌아가는 보일러 밑에, 상자가 놓여있었다. 딱 한 마리 남았더라. 준우 엄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자는 신문지로 덮여 있었다.

이쑤시개처럼 가지런히 놓인 발들이 보였다. 투명하고 노란 발이었다. 삐약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아주 약하게. 곧 끊어질 것처럼 드문드문. 이윽고 휘청거리는 발이 등장했다. 혼자 남은 병아리는 눈을 질끈 감고 울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 병아리가 눈을 감은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하니는 생각했다. 역시 눈은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단출하고 조용했다. 아파트 화단에 준우, 나, 엄마, 동생까지 딱 넷이었다. 나는 손바닥만 한 모래무덤 위로 병아리 솜털처럼 고운 개나리를 눕혔다. 공터에 피어있던 개나리도 하나둘 지고 있었다.


줄곧 나는 꿈에서 다리를 떨었다. 주체할 수 없이 부들부들 떨렸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자가 꽉 차 있어서였다. 답답한 상자 안에 만원 승강기처럼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소리를 질러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대로 날아갔으면. 주위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달고나 냄새가 났다. 장날이었다. 저 멀리 할머니의 캡 모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신발주머니를 뱅글뱅글 돌리기 시작했다.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가빠왔다.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았다.

“사기꾼이야! 거짓말쟁이. 내가 잘 키우면 닭이 된다면서요!”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물오물 엿을 씹고 있었다. 입술은 작고 거칠었다. 동생이었다면 몹시 아프게 꼬집어주고 싶은 표정이었다. 할머니는 웃었다. 왜 웃는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냐. 늬가 잘 못 돌봤나 보지.”

병아리를 구경하던 초등학생들의 눈길이 모두 나에게 꽂혔다. 조심스럽게 둘을 번갈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럴 리 없어요. 난 할머니도 알려주지 않은 대로 잘 키웠다고요. 책도 보고, 일기도 썼다고요. 그러니까…환불해주세요.”

언젠가 집에 있는 정수기가 완전히 고장 나 버려서 엄마가 전화로 화를 냈던 모습을 떠올렸다. 환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새로운 정수기가 온 걸 보면, 좋은 말임이 분명했다.

할머니는 또 허허, 웃었다. 

“병아리를 어떻게 환불하냐 욘석아. ”

허리를 툭툭 치며 일어났다. 할머니의 키는 나와 얼추 비슷했다. 괜히 좀 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 건 순전히 키 때문이었다.

“병아리가 안 되면 저거 주세요. 안 그러면 친구들한테 할머니가 거짓말쟁이인 거 다 말하고 다닐 거예요.”

병아리 옆엔 “메추리: 한 마리 이천 원” 글씨가 쓰여 있었다. 메추리가 뭔진 몰랐지만, 병아리보다 두 배 비싼 걸 봐서 두 배는 더 오래 살 것 같았다. 병아리보단 약간 작고, 노란색 바탕에 검은 점박이들이 날개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뺙뺙뺙뺙. 메추리는 병아리보다 더 얇고 높게 울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이끌려 몰려온 초등학생들로 할머니와 하니 주위엔 동그란 원이 생겼다. 

할머니는 별말 없이 손가락에 침을 묻혀 검은 봉지를 뜯었다. 검은 봉지로 메추리 두 마리가 들어갔다.

“비싼 애들이여. 저번에 많이 샀으니까 서비스로다가 주는 거여.”

검은 봉지 안에서 뺙뺙뺙, 소리가 들려왔다. 부시럭, 부시럭 분주하게 메추리들이 움직였다.

“넌 이제 다신 오지 말아라. 시끄러워 부네 아주.”

할머니는 손으로 두 무릎을 짚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벌건 얼굴로 잽싸게 달리기 시작했다.


자꾸 “뺙뺙, 뾱뾱”이며 봉지들이 부스럭댔다. 씩씩거리며 달려 나왔지만 얼마 못 가 자리에 멈춰 서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눈앞에 쓰레기통이 보였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먹던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검은 봉지에 묶어 버렸다. 마침내 손에 든 것도 검은 봉지였다. 빠르게 멀어지는 아저씨의 뒤통수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갑자기 코끝이 아렸다. 손바닥도, 목구멍도, 귀도, 눈도 뜨거웠다. 그 자리에 털썩 앉아 주먹으로 눈을 눌렀다. 옆에 놓인 검은 봉지 안에서는 계속 “뺙뺙 뾱뾱”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차츰 메추리 소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혼자만 있는 것처럼 고요해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행동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들고 있던 검은 봉지 끝을 묶었다. 열 발자국 떨어져 있던 쓰레기통을 향해 걸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주위를 살폈다. 뒷목이 쿡쿡 쑤셨다. 통 안으로 한 번에 검은 봉지를 밀어 넣었다.


턱.


아까 아저씨가 넣은 검은 봉지보다 가벼운 소리가 났다. 철 휴지통에서 “뺙뺙, 뾱뾱” 소리가 울렸다. 귀를 막고 뒤를 돌았다. 지금까지 달렸던 어떤 운동회보다 더 빨라야 했다. 다리가 안 보이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달리고 또 달렸다. 소리는 고막을 맴돌고 또 맴돌았다. 귀를 막은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집은 조용했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동생들은 유치원에, 엄마는 회사에 있을 것이었다. 식탁엔 밥과 김치찌개, 장조림, 연근 무침, 김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책가방을 거실로 던졌다. 여느 때처럼 냉장고에 엄마의 쪽지가 보였다. <골고루 밥 잘 먹고 있어. 금방 올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가슴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텅 빈 속이 쓰렸다. 무엇이라도 욱여넣어야 할 것 같았다. 말없이 밥상에 앉아 숟가락 가득 밥을 퍼 입 안으로 가져갔다. 반찬이 입술 사이로 삐져나와도 상관없었다. 목구멍은 포도 씨가 걸린 것처럼 텁텁했다.


식탁 위엔 노란 알갱이가 뭉쳐있었다. 병아리를 데려올 때 할머니에게서 받은 사료였다. 목에 걸린 포도 씨 같은 게 점점 커지는 느낌이었다. 먹은 음식이 다시 다 나올 것처럼 목구멍이 시큰거렸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이윽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집이 떠나가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다리를 벌벌 떨었다. 몸이 뒤뚱거리는 것 같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