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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아 Nov 29. 2021

무궁화호에서

잠을 청하고 싶어 이불속에서 발버둥을 치던 때가 있는가 하면, 잠드는지 모르게 자게 되는 때가 있다. 어느 시골에서 다른 시골로 가는 기차의 창가에서 꼿꼿이 앉아 잠들고 만다. 바퀴 구르는 진동과 소음 속에서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평화를 맛본다. 읽던 책은 그 모양 그대로 무릎 위에 포개지고 누가 나를 재우기라도 한 듯이 잠든다.


다시 눈을 뜰 때야 내가 잠든 시간을 알 수 있다. 그 속에 있다가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이별한 후에야 사랑을 알 수 있고 땀을 닦는 순간에야 닦아낸 땀의 결실을 알 수 있다. 나는 영원히 휴식한 기분이며 또 그걸 알고 있기도 하다. 눈꺼풀은 무게를 덜었고 발은 족욕을 했다는 듯이 개운하다. 작게 요동하는 차창 밖에는 자두 과수원이 보인다. 노르스름한 젊은 열매를 바라보며 나는 행복해지기를 시작한다.


시간을 확인하면 십 분도 지나지 않았다. 나는 시간 감각이 없는 어린아이가 되어 어머니 무릎에서 잠들다 왔다. 내 가슴에 세계가 얇게 달라붙어 있음을 느낀다. 내 심장이 뛸 때 내가 느낄 수 있는 작은 세계가 같은 박자로 뛴다. 창밖에는 자두나무가 아니라 낡고 작은 교회가 보인다. 하얗게 칠한 벽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살아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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