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앙 Jun 17. 2024

이상한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스치는 인연은 붙드는게 아니다


초등학교 때 바로 옆동에 사는 친구였다. 같은 반을 몇 번 하면서 우리는 티격태격하면서 놀았던 사이였다. 논술그룹과외도 같이 했고 학교를 마치면 놀이터에서 같이 놀았다. 5학년 땐 같은 반에서 같은 합창단에 들어 어린이 동요제에 함께 나가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워낙에 질투가 많아서 자신이 항상 이겨야 했던 친구였다. 반면 필자는 경쟁에 관심이 딱히 없었다. 재미와 흥미로 동기부여를 받는 성격이라 누굴 이기려는 성질은 어릴 때부터 없었기에 무얼 하든 비교하고 경쟁하는 그 친구 옆에서 피곤함을 자주 느끼고 싸우기도 많이 했던 기억 밖엔 없다.


그리고 우리 둘은 그 친구가 여고로 배정되는 바람에 그 뒤로 가끔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엔 커피숍에서 만났던 것을 끝으로 연락이 툭, 끊겼다. 커피숍에서 자신은 우유가 소화가 안된다면서 라테 대신 아메리카노를 시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상태를 명확히 알고 설명하던 모습이 똑 부러져 보였다.


여러 해 끈질기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 뒤론 서로의 생일에 생일 메시지를 몇 차례 주고받았고 필자가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즈음 이 친구에게 만나자고 몇 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간신히 연락이 닿아도 조금 소식을 주고받는 게 다였던 거 같다. 잠깐 차 한잔이라도 마시자고 했는데 자신이 너무 부족해서 시간이 안 난다고 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면서 부족한 자신 탓을 하였다. 자신 탓을 하는 친구가 오히려 안쓰럽고 도리어 연락을 한 필자가 미안해졌다. 전문자격시험이 끝나면 만나자고 한 것이 두 해가 넘어갈 무렵이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연락하고 만나지 모으면 영영 포기할 생각이었다.


이상한 주문

24년도 최근 전문직 시험이 끝나는 시점 여느 때처럼 필자가 먼저 연락을 했고 결국엔 만날 수 있었다. 다이어트 중이라 커피숍에 가자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친구가 10분 전에 도착한 커피숍, 미리 주문하겠다고 해서 곧 도착하니 기다리라 했는 데 정시에 도착했을 땐 이미 케이크와 라테 그리고 네가 마실 아메리카노가 있었다.


이젠 필자도 우율 안 마시는데 라테를 시킨 데다  서로 먹지도 않는 케이크를 사둔 것이 그래도 날 위한 마음인 거 같아 카페인을 저녁에 못 마신다는 말로 대신하며 음료를 새로 주문했다. 십여 년 전 네가 우유가 소화 안돼 우유 들어간 건 안 마신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반가운 마음이 훨씬 컸다.


여러 해 동안 연락해서 만난 자리에서 15년의 세월을 압축한 친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 후 원하는 학교를 갔으며 전문직 시험을 사 년째 준비했다고 했다. 전문직 시험은 올해를 끝으로 하려고 한다고 했다. 두 시간 되는 시간 동안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들었다.


필자도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원하는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취업해서도 원하는 직무에서 일하고 싶어 고군분투를 했기에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진심으로 다독여 주었다. 


친구는 곧 있을 결혼소식을 전했다. '내 결혼식에 와주라'하면서 곧이어 '혹시 부케도 받아 줄 수 있니?' 부탁했다. 남자친구도 없었던지라 좀 망설였다. '아.. 난 강제로 요청하고 싶지 않아. 내가 수험생활을 오래 해서 친구가 없어서 그래'. 이 말을 듣고 나니 좀 전에 수험생활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까지 오버랩되어서 이건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곧바로 문자로 결혼식도 참석하고, 부케도 받아주겠다고 했다.


소개해준 상대의 무례함에도

자신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곧 필자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남자가 있다고 했다. 수험시절에 만났던 사람인데 집안도 학력도 성격도 좋아 결혼상대로 고려해 볼 만하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연락하면서 내 칭찬을 하는 친구의 모습에 고맙기도 했다.


고마움은 소개팅 상대의 무례함으로 종결되었다. 소개팅 약속을 잡은 당일 감기에 걸려 아프다며 약속파투를 냈고 다 나은 다음 연락하겠다던 그분은 일주일이 지나 답답해서 인사를 건넨 필자에게 한 마디를 남기곤 잠적했다. '연락이 늦었죠 그동안 잘 지냈나요?'였다. '네 잘 지냈어요'라고 라고 답을 했는 데 소위 '읽씹'을 행사했다. 그리고 처음 연락을 한 뒤로  한 달이 지난 어느 주말 새벽에 '이제 다 나았어요'라는 문자가 뜬금없이 왔다. 필자는 그 자리에서 상대를 차단했다. 이러한 상황을 친구는 알대신 사과한다고 했다. 필자는 소개팅 상대가 문제지 너의 잘못은 아니라고 미안해할 것 없다며 되려 다독여주었다. 솔직히 많이 열받았지만 말이다.


결혼식 전날 새벽에 온 문자

결혼식 전날 새벽 7시 반에 문자가 왔다. 새벽같이 무슨 문자람? 친구의 문자는 이랬다. 신부대기실 부케, 식중부케 둘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몰라도 결혼식 바로 전날 급하게 문자를 보낼 정도면 그러길 희망한다는 소망이 강하다는 사실과 적당한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다. 무엇보다 그 차이를 묻는 것보다 중요한 게 친구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바로 전날이라 신부가 더 예민해있을 거 같아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문자를 보자마자 바로 그러라고 했다.

결혼식은 6시였고 한 시간 전인 4시 20분에 출발했다. 역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거리인데, 배차간격이 긴지라 여름 뙤약볕에서 15분을 기다려 셔틀버스에 탔다.

땀을 흘리며 도착한 신부대기실에 친구가 없어 화장실로 갔더니 화장실에서 나오는 친구를 처음 봤다. '00아~~'네 이름을 부르는 나와는 달리 '어~~ 안녕'과 같은 짧은 인사를 했다. 그 느낌이 참으로 어색해서 길거리에서 만난 지인을 보고 아는 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왜 느낌이 싸할까. 그래도 친구가 먼저라며 화장실에 가고 싶은걸 참고 먼저 사진을 찍겠다고 함께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에 와있는 몇몇 친척들에게 인사하기 바빠 보였다. 다른 사람과 먼저 사진촬영을 하고 필자가 사진 찍기 위해 다가갔을 때 그제야 친구필자를 불러주었다. 


'부케 친구야~~'


'응? 부케 친구라고?' 정말 이상했다. 보통 친구를 만났을 때 반가워서 이름을 부르지 않나. 카메라 앞에서 어색했지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5성 호텔인지라 지정좌석제였고 홀로 들어와 내 이름을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부케 받으라며 맨 앞줄에 배정했다고 했는데, 어디 있을까 내 이름. 스몰 웨딩이라고 했기명단에 사람도 많이 없어 여러 차례 아무리 훑어도 없었는데 박영지. 옛날 내 이름이 보였다. 에이, 설마. 동명이인이겠지. 그럴 리 없다고 확신했다. 여러 번 훑은 뒤에서야 옛 이름이 신부친구 좌석의 첫 줄에 배정되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얼토당토 한 상황이었다. 서로를 개명한 이름으로 불러준 지 오래되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 친구는 필자보다 훨씬 전에 개명해서,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부탁을 해온 뒤로 한 번도 예전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필자는 개명한 지 어느덧 삼 년이 됐고 친구에게도 개명사실을 알린 지 최소 두해 이상이 되었으며,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서로 개명한 이름으로 불러왔던 터라, 처음 좌석 리스트에서 박영지이름을 본 뒤로도 설마, 설마 했다.  


 이름 좌석

호텔 지정석이라 테이블 위 옛날 내 이름도 대문짝 만하게 세워져 있었다. 기껏 왔는데 필자를 부르는 명칭이 부케친구라고 하고 옛 이름까지 써놓으니 이건 어찌 해석해야 할지 도무지 이 친구가 필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사진 촬영할 때라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친구들 사진 촬영이 있어 나가서 사진을 찍는데 이모님들 세분이 도와주며 불렀다.  '부케친구 어딨어요?' '부케친구 나오세요' 할 때 알게 되었다. 결혼식 준비할 때 명칭이었구나. 친구는 결혼식 당일, 내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이쯤 되니 기분이 참 오묘해지다 못해 마치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에 부케만 받으러 간 아르바이트생인 것만 같았다. 식장안에 들어선 뒤로부터 모순간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단체 촬영이 끝나 부케를 던질 때조차도 뒤에서 잘 받으려고 떨고 있는 필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친구 표정과 걸음, 제스처만을 신경 쓰는 행동들이 힘에 부쳐 보여서 결혼식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보는 내내 같이 불편했다.


받은 부케는 그대로 가져 가시는 거예요

친구가 부케를 던져 용케 받아낸 후 이어서 기념사진촬영을 했고 영상카메라 앞에 흔들며 좋아하라고 시켜서 그 연기까지 하고 바로 돌려주려고 꽃을 내밀었다. 줬다 뺏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체험되는 순간이었다.


그랬더니 이모님들이 일제히 "아니 그거 가져가세요", "돌려주는 게 아니라 가져가시는 거예요." 라며 손으로 가져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돌려달라고 했던 친구의 상황이 불편해질까 봐 암말도 않고 눈길로 '얼른 가져가'하면서 건네주었다. 이모님들은 여전히 이상하다, 이해 안 된다는 께름칙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바꿔주겠다는 꽃은 어떻게?

호텔 결혼식이라 2부가 시작되었고 코스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저녁약속이 있는데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식은 끝나질 않았고, 부케를 바꿔가져 가라던 친구와 인사도 못하고 있어서 속으로 참 애가 탔다. 약속한 친구에겐 30분만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드렸다.

음식은 맛이 없어 못 먹었다

테이블에 앉은 누군가가 "아이고 8시에 끝난다 해도 집에 가면  9시 반이 넘겠는걸?"이라 말하니 또 누군가 "너무 늦어지네"라 답할 즈음이었다. 모든 테이블을 돌고 나서 마지막에야 우리 테이블에 온 친구에게 '00아 축하해 내가 가봐야 하는데, 꽃은 어떻게 해?'라고 물었을 때, 친구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어? 어..? 어?... 어" 연신 물음표를 남발하며 내게 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동안 마치 주지 않을 생각이었거나 줄 생각이 없는 게 무언으로 전달이 됐다. 친구가 아무 말도 못 하며 "어? 어...?" 하는 그 시간 동안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을지 상상도 못 했으니까. 계속 무슨 말도 못 하는 친구 옆에 있던 남편이 "식전 부케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했다. 이 말을 들은 이모님 중 한 분께서 '아, 부케를 식전부케로 가져가시는 거죠? 제가 같이 가드릴게요'라고 하셨다.


메인부케 vs 서브부케

4시 반에 결혼식장으로 출발해 6시 예식의 시작을 보고 8시가 돼서야 친구와 이상한 소통을 끝으로 이모님과 식장을 걸어 나오게 되었다. 이모님께 물었다. '부케가 두 종류가 있나 보죠?' 이모님이 말했다. '네 메인 부케와 서브부케 다르죠. 하나는 메인 부케, 지금 드리려는 건 식전에 신부사진 찍는 서브 부케예요.' 정확한 설명을 듣고 난 후 '하난 메인이고 하난 서브군요'라고 이모님의 말을 되풀이했더니 '에이~서브도 이뻐요, 서브 너무 이쁘지 않나요?'라고 하셨다.


스치는 인연은 붙드는 게 아니다

온종일 부케 받는 알바체험을 하는 중인데 축의금도 냈다. 왜 그동안 네게 연락을 끈질기게 했을까.  초등학교시절 그저 잠시 스치는 인연이었음을. 와줘서 고맙다고 하는 건 누구나에게 할법한 인사치레였음을 온몸으로 깨달았던 하루였다.


화려한 결혼식에 까맣게 타버린 마음. 오랜 수험생활동안 고생 많았고 15년 만에 처음 만난 자리에서 들려준 기쁜 소식을 함께 축하해 주려고, 배려해준다고 한 지난 모든 행동들은 여기에서 접기로 했다. 애쓰는 관계는 유익하지 않다. 스치는 인연은 붙드는 게 아니다. 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 대표가 되어 본 세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