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아닌 나에게서
너 덕분에 웃는다. 얘기하니까 좀 나아지네.
일상에서 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이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혼자 있게 되면 한 없이 축 쳐지고 에너지가 바닥이 나기 때문이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원체 좋아하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활기를 되찾는다. MBTI 결과 역시 두루두루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외향적인 ENFP.
감수성이 풍부해 다른 사람의 말에 공감을 잘해주고, 정도 많아 한번 맺은 인연을 잘 챙기는 편이라 항상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그렇기에 심심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만나서 실컷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게 아니더라도, 혼자 꽁꽁 싸매고 있던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내 안에서 꺼내 밖으로 표출시키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제법 해소되었다. 언제나 쉽게 마음이 맞는 친구를 주변에서 찾을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기에 나는 나 스스로를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왔다.
그건 나의 교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쓸데없는 감정 소모, 시간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졌고 얄팍한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 썼던 에너지를 아끼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은 정리가 되어간다. 소위 말하는 '진정한 친구'들만 나의 곁에 남았다. 이에 더해 2020년의 재난과도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그들조차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상상도 못 했던 현실이 나에게 왔다.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나라는 사람이 '남' 없이 '나'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고 감정을 회복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럼 내 행복은?"
"니 행복을 왜 나한테 물어?"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나오는 대사.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너무나도 무책임한 남편이 부인에게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겠다며 했던 어처구니없는 마지막 말이었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기분과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이것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열심히 찾아 헤매 왔다. 약속이 없는 휴일을 싫어했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당장 뛰쳐나가거나 나가지 못하더라도 늘 전화를 붙들고 누군가와의 대화에 의지하고 있었다. 늘 주변에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 스스로를 대인관계가 원만하다고 그저 활동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해왔다. 이제 보니 나는 그냥 독립적이기보단 의존적인 타입의 사람이었다.
이제 이런 의존성을 끊어보려 한다. 늘 하던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지금이다. 이렇게 된 김에 '남'이 아닌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직까지는 나에게 딱 맞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기분전환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나름 이것저것 적극적으로 시도해보고 있다. 난생처음 온라인 강의로 심신 안정을 위해 뜨개질을 배워도 보고, 무작정 나가 노래를 들이며 정처 없이 걸어보기도 하고, 재밌다는 드라마를 몰아보기도 했다. 사실 이런 것들을 시도해보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나아졌는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시간은 잘 간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기도 한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이제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이 수 없이 많이 남아있고, 우리에게는 '스트레스 해소법'만 검색하면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개체가 넘쳐난다. '다음엔 뭘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면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다시 한번 다짐한다.
다른 사람의 존재 없이도, 혼자서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