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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Apr 29. 2017

27. 굶어 죽진 않겠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예술로 밥 벌어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작년에 봤던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하나만 꼽아보라 한다면 단연 <라라 랜드>다. 내 뇌리에 박힌 건 아름다운 음악도 영상도 아닌 주인공 미아의 대사 한 줄이었다.

 "사람들은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끌려. 자신이 잊고 있던 걸 상기시켜주거든."

 대사를 듣고 한 순간 심장 한 구석이 찌릿해졌다. 그랬다. 미아는 세바스찬이 아닌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끄집어내라고, 앞으로 다시 나아가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열정. 그 한 단어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가장 뜨거웠던 때를 떠올렸다. 내 몸이 제 몸이 아닌 듯,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려 나가던 때를 말이다. 1평짜리 고시원에서 살아가며 대학 입시를 했던 때, 맨땅에 헤딩하듯 여행자금을 모으기 위해 미친 듯이 일했던 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매일같이 새벽을 넘겨가며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던 때. 가진 것 없이도 열정 하나만 믿고 무턱대고 부딪혔던 나를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 열정은커녕 가슴속에 작은 불씨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의 뜨거웠던 나와의 간극은 더 커져만 간다.

 혹자는 그런 시기라며 위로한다. 그러나 난 그런 시기라서 괴롭고 불안하다. 열정 넘치던 과거의 내 모습이 자꾸만 낯선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무섭다. 이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인 걸까. 그렇다면 영원히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현실적인 얘기를 해야 보다 명확해질 것 같다. 실은 이제 열정만으로 무언가를 일궈낼 수 없는 때가 왔단 생각이 잦아지고 있다. 미아의 대사에서 느꼈던 찌릿함은 그 얕은 꼼수 같은 생각을 들킨 것만 같아서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 솔직히 난 이제는 열정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생각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꿈이 이뤄지는 이야기는 영화 속의 이야기뿐인 것만 같다. 죽어라 노력해봤자, 악착같이 버텨봤자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도대체 당장 내가 어떤 일로 돈을 벌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아니, 무슨 일이든 하면 돈이야 벌긴 벌겠다만. 과연 내가 하고픈 일들로 돈이란 걸 벌 수 있단 말인가?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날부터 지금까지 이 일이 '직업'이 된 나를, 아니,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 이 일로 '돈'을 벌어들이는 나를 제대로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아주 막연하게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바보같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만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쳐다봐줄 줄 알았다. 그러나 조금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자니, 이거 이거, 도저히 답이 없다. 그동안 내가 믿었던 한 마디가 터무니없이 무책임했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배우가 되는 거야."

 이보다 더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강동원, 원빈같이 입이 떡 벌어지는 외모나 매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일단 버텨야 하는 게 배우란다. 당시엔 콧방귀를 뀌어대며 '두고 봐라. 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할 테니'곱씹으며 결의를 다지는 나였다. 그러나 지금 내겐 불안함만 남았다. 누구보다도 특별하다 생각한 나 자신이 그저 부모님 눈에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들래미란 걸 알아버렸다. 대체 어떤 점이 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고민해보다가도 앞서 거론한 배우들만 떠올리기만 해도 금세 좌절한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경쟁력 따위, 상품성 따위 없는 존재, 그게 솔직한 현실의 내 모습이다.

 나는 도대체 뭘 믿고 여기까지 온 걸까?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고, 그렇다고 계속 걸어만 가기엔 눈 앞이 캄캄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젊음이란 것이 참 감사했는데, 이젠 너무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20대의 후반으로 달려가는 나,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은 대체 어느 방향인 걸까?

 이 와중에 학교 동기들이며 선, 후배 그리고 아는 지인들은 너도 나도 제 밥벌이를 너무나 잘 해나가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 되어 어디서든 심심치 않게 얼굴을 비치고 있고, 프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으며, 대기업에 입사하여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원하던 일로 돈을 벌고 있단 말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들은 무언가를 이뤄내고 있다.

 입대 후 두 달이 조금 넘어갔을 시점, 생활실 TV 속에서 아는 얼굴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꿈을 향해 본격적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동시에 TV 모니터엔 빡빡머리 내 몰골이 비쳤다. 백 마디 말이 필요 없었다. 그 모습, 그 자체가 내 현실이었다.


 참 어렵다. 내가 그저 무대 위에 서는 것만으로 충분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만족할만한 삶이겠지만, 정작 진짜 현실이란 게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라라 랜드>의 미아는 열정만으로 1인극을 만들어 무대 위에 올랐지만 혹평받았고, 행복하지 못했다. 그 장면이 유독 뼈아프게 다가왔던 것은, 남 얘기 같지 않아서, 진짜 현실이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기 때문이다. 현실은 <라라 랜드>의 결말처럼 모두 꿈을 이루지 못한다. 꿈을 노래하며 살기엔 현실이란 무대 위는 너무나도 치열하고 열악하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겐 더더욱이. 방법조차 알 수 없을 노릇이다.

 진짜 현실은 어쩌면 미아가 1인극에 실패하고 배우를 접는 부분까지, 딱 거기까지일 확률이 높다. 현실엔 진짜 배우가 된 미아보다 꿈을 접고 다른 일을 하는 미아가 훨씬 많지 않던가.

 꿈은 꿈에서 머무는 게 어쩌면 가장 꿈다운 모습일 수도 있다. 꿈을 이루는 순간 그건 다시 현실이 되니까. 꿈은 꿈꾸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시궁창 현실을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우린 그저 영화 속의 주인공들을 보며 대리 만족할 뿐이다. 미아의 대사 따라, 영화를 통해 내 안에 잊혔던 열정을, 꿈을 일깨울 뿐이다. 아니, 추억할 뿐이다.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듯이.


 사람들은 가끔 내게 그런 얘길 한다.

 "넌 굶어 죽진 않겠다."

 그림도, 노래도, 연기도, 여러 방면에서 깨작깨작 잔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엔 쓰임이 되겠다는 의미란 거,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내가 가진 것들은 결코 능력이 아닌 잔재주일 뿐이고, 그마저도 프로처럼 훌륭하지 않다. 당장 어떻게 해야 이것들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과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그리고 그곳은 내게도 필요한 곳일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을 한다.

 솔직히 말해, 요즘 어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가. 누구든 무슨 일을 하든 굶어 죽지 않을 정도는 벌 수 있다. 하나 문제는 무슨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연기하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것, 이게 정말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생활고에 시달리다 고시원 쪽방에서 5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어떤 연극인이 생각난다. 불규칙한 연극 수입으로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린 고인은 2평이 채 되지 않는 좁은 고시원 방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놀랍게도 이런 일이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다. 다들 미아처럼 툴툴 털고 일어나 엄청난 오디션에 합격하고 그토록 원하던 배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진짜 현실은 이렇다.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정말 굶어 죽을 수도 있는 곳이 내가 디딘 이 땅, 이 곳, 이 현실이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배우'라 대답한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멋있다'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다음 꼭 달려오는 말은,

 "근데 그게 돈이 돼?"

 멋있지만 돈이 되지 않는 직업. 돈이 되지 않지만 멋있는 직업. 난 그런 직업을 꿈꾸고 있나 보다.

 더 이상 연기하는 사람들을,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노래하는 사람들을 돈 벌기 어려워 멋진, 멋져서 돈 벌기 어려운 직업이라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멋진 직업이었으면 좋겠다. 평범한 수준의 돈을 받으며 살아가더라도, 그 행위 자체만으로 멋진 그런 직업이었으면 좋겠다. 성공한 예술가들의 생활고에 시달렸던 이야기가 훝한, 예술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 코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하는 세상이 비정상적임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것을 넘어서서, 하고 싶은 일을 돈 걱정 없이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열정으로 버티라는 조언 대신, 열정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적어놓고도 이상적인 어떤 유토피아 스토리를 적어놓은 것만 같아 가슴 한편이 씁쓸하다. 적어도 누구 한 명이라도 정말 굶어 죽지는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싶다. 진심으로.


 2015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세상 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연극인 고인 김씨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 누가 고인에게 열정이 없었다, 버티지 못했다 얘기할 수 있겠는가. 아직 남아있는 세상의 수많은 김씨들의 열정이 숨을 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본다. 그리고 나 또한 숨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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