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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Jul 11. 2017

38. 딱 1분만 더 자서 뭐하나

1분만이라도 더 꿈꾸고 싶다

 "저는 이틀에 한 번 자요."

 7년 전이었나, 8년 전이었나. 어느 인터뷰에서 한비야는 이렇게 얘기했다. 대답이 너무 쑈킹해서 질문이 뭐였는지는 기억조차 안 난다. 아니, 세상에. 사람이 무슨 이틀에 한 번만 자.

 하필이면 늦은 오후, 그것도 10시간 정도를 잤나. 느지막이 깨어나 부은 눈을 껌뻑 거리며 본 TV 화면에 저런 얘기가 흘러나오다니. 흐음, 내게 경고를 하려는 신의 계략인 걸까. 잠 좀 그만 자라고 말이야. 아니면 엄마가 일부러 저 채널을 틀어 놓은 걸까. 뭐가 됐든 성공하셨수. 내게 자괴감을 느끼게 하려던 거면.

 이틀에 한 번 자는 인간과 하루에 열 시간 자는 인간. 의지의 차이인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완전 의지 박약아인가? 왠지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 저런 생활 패턴을 가졌을 것 같네. 아, 짜증 나. 성공하려면 이틀에 한 번 자야 됨? 나 그냥 실패할래. 다시 자야지.


 인간에겐 참을 수 없는 세 가지 욕구가 있다고들 한다. 식욕, 성욕, 수면욕. 솔직히 내 기준으로는 식욕과 성욕은 컨트롤이 가능하다 본다. 미치도록 배가 고프면 물으로라도 배를 채울 수 있고, 미치도록 하고 싶으면 혼자라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자세히 설명하진 않겠어요.) 그러나 미치도록 자고 싶을 땐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자는 수밖에.

 특히 아침에 잠의 유혹은 어마어마한 크기로 불어나 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아침이 되면 나약해지는 것 같다. 큰 포부를 가지고 작성한 새해 버킷리스트 목록도, 의지를 개선하기 위해 잡아놓은 1교시 수업도, 아침잠의 유혹 앞에 처참하게 무릎을 꿇는다. 아침잠을 이길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텐데.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잠을 별로 자지 않는가 보다. 아아, 아무래도 이번 생에 성공하긴 글렀어.


 잠은 왜 잘까?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잠을 잔다고 한다. 누워서 자는 건 물론이요, 서서 자거나 눈을 뜨고 자거나 심지어는 뇌의 반만 수면 상태인 개체도 있다고 한다. 잠이 없기로 유명한 나폴레옹도 워터루 전쟁에서 수면욕을 이기지 못해 잠들었다던데, 전쟁통에서도 뿌리칠 수 없는 잠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과학적인 이유를 따져보자면 살기 위해서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뇌는 깨끗이 세척되며 활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한다고 한다. 굶는 것보다 잠을 자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빨리 죽는다는데, 과로사나 돌연사 같은 죽음이 이것에 해당된다. 면역력과 관련된 기관들의 활동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죽을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진다나 뭐라나. 내가 참을 수 없는 덴 다 이유가 있었어. 난 살고 싶었을 뿐이었던 거야. 앞으로 누군가 날 깨우면 목숨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살려달라고 해야지.

 하나 내 개인적인 이유는 생존 본능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더 자고팠던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고 싶은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도 치명적으로 날 유혹하기 때문이다. 녀석 앞에서 불가항력이 되어버릴 뿐. 그처럼 거대하고 풍만한 달콤함에 어찌 내 한 몸 바치지 못하리. 아침에 1분 더 자서 어디에 써먹겠는가. 저항할 수 없이 빠져들 뿐이다. 그 순간만큼은 영혼이라도 바칠 기세로.


 눈치챘겠지만 나는 잠이 정말 많다. 여행을 다닐 적에도 잠을 자느라 일정을 포기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해가 중천에 뜨면 그제야 눈을 뜨고 한 숨을 푹푹 내 쉬었다. 일정을 놓친 건 둘째치고 저 자신에게 적잖이 실망스러웠던 게다.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는 놈이 더한 일은 해낼 수 있겠어? 으휴, 쯧쯧... 반성하기가 무섭게 다음 날엔 또다시 늦게 일어난다. 그래 놓고 '아, 파리까지 와서 늦잠씩이나 자고... 나 꼭 현지인 같아!'라며 정신 승리! 아아, 어쩌면 내 여행은 전부 정신 승리 수행 과정이었는지도 몰라.

 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1교시 수업을 신청해놨다가 늦잠 때문에 가지 못했던 게 한두 번이었던가. 그것으로 큰 교훈을 삼고 2학년 때부턴 절대 오전에 수업을 넣지 않았더랬지. 덕분에 그동안은 완벽한 올빼미 생활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냥 '잠'이 많은 건 아니다. '아침잠'이 많은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다고요. 잠의 총량만 따져보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할 것이다.(이렇게 또 정신승리를 합니다.)

 아침엔 왜 이리 일어나기가 힘든 것일까. 그야 물론 전날 밤에 안 자고 딴짓했으니 그렇지, 가 가장 정답에 가깝겠지만, 쉿, 우리 그런 뻔한 대답 하지 말아요. 부조리한 세상인데 눈 떠 봐야 뭐하겠어, 같은 대답은 좋긴 한데 내 글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하지 말아요. 그렇다면 이런 대답은 어떤가. 나는 꿈을 꾸고 싶을 뿐이다. 1분이라도 더, 꿈을 꾸고 싶을 뿐이다. 오호, 제법 그럴싸한 대답이다. 그쵸?


 일상의 현실이 퀴퀴하고 더럽다고만 표현하고 싶진 않다. 눈을 뜨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보고 싶은 영화나 책을 마음껏 볼 수도 있다. 물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지루한 일상을 견뎌야 하기도 하고, 때론 밥을 먹다 씹힌 돌멩이처럼 뒤가 켕기는 일들도 적잖이 경험하긴 한다만, 그럼에도 현실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기에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꿈을 꾼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현실엔 뭔가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증거이다.

 꿈을 꾸는 이유에는 워낙 많은 학설이 존재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꿈 꾸는 이유는 한 가지, 그것만이 완전한 휴식이기 때문이다.

 꿈은 그 무엇도 차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끊임없이 따라붙는 라벨이 찍힌 상자 속에 나를 구겨 넣지 않아도 된다. 그곳에선 슈퍼맨이 될 수도, 원더우먼이 될 수도, 백만장자가 되어 좋아하는 연예인과 결혼을 할 수도, 세계일주를 다닐 수도 있다. 현실에선 목숨을 내놔도 힘들 일들이 꿈속에선 너무도 간단하게 현실이 되어준다. 내일 죽을 것처럼 아픈 사람에게도, 건강한 사람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유한 사람에게도 꿈의 세계는 공평하다. 완전한 휴식이란 이런 세계 속에 놓인 것을 뜻한다. 그 무엇도 눈치 볼 것 없이 온전한 나를 흩뿌릴 수 있는 상태 말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현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꿈꾸고 싶다. 현실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불구덩이에 온몸을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꿈속이 더 아름답기 때문이라기보단, 완전한 휴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제아무리 아름답다 할지언정 그곳에선 허락된 휴식만이 가능하니까. 형체가 없는 꿈일지라도 괜찮다. 잠을 자는 행위 자체가 나 자신을 무의식의 세계로 던지는 일이니 완전한 휴식을 향한 티켓이 되어주는 셈이다. 싫어하는 사람을 때려죽여도 괜찮은 세상, 사랑했던 사람을 깨끗이 잊을 수 있는 세상, 원하던 목표를 이룬 세상, 걱정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완전한 세상, 완전한 휴식 속에 단 1분만이라도 몸을 더 뉘이고 싶다.


 써 놓고 보니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이유 치고 쓸데없이 거창하다. 그래도 가끔 이런 정신 승리, 좋지 아니한가.


 잠이란 영역은 워낙 불가사의해서 아직까지도 끊임없는 연구대상이다. 건강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한다. 생각해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스마트 기기가 쏟아지는 중에도 '잠을 줄여주는 상품' 같은 건 없다. 기껏해야 '날아다니는 스마트 알람시계'따위가 전부다. 수면을 억제하는 식품이나 약 같은 것은 부작용이 있거나, 나중에 한꺼번에 수면이 밀려온다. 잠이 적었던 위인이라고 알려져 있는 에디슨이나 나폴레옹도 틈새 수면을 하거나 밥 먹듯이 낮잠을 잤기에 '수면 시간'만 놓고 보면 보통 사람들과 절대치에 별 차이가 없단다. 동그란 치즈 케이크를 어떻게 잘라먹느냐 하는 것처럼 말이다. 치즈 케이크의 반을 먼저 잘라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조금씩 잘라먹는 사람도 있다. 하나 홀케이크의 크기는 같다. 한꺼번에 한 번 자거나 조금씩 많이 자거나, 그 차이다.

 에디슨이나 나폴레옹, 한비야와 같이 선천적으로 잠을 조금만 자도 되는 사람들을 '숏 슬리퍼(short sleeper)'라고 한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이므로 애써 나의 수면과 저울질해가며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잠의 총량은 동그란 치즈케이크처럼 서로 비슷하기까지 하다지 않나. 어쩌면 내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잠자는 시간이 아닌, 남들의 시간과 내 시간을 비교하는 짓인지 모른다.


 다들 너무 치열하게 산다. 적게 자는 것을 부러워하는 나만 봐도 그렇다. 잠을 완전한 휴식의 세계로 던져주는 가치로 생각하면서도 그 가치에 취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니까 우리 "1분만 더 자게 내버려 둬"라는 사람에게 "1분 더 자서 뭐하게!"라고 얘기하지 말자. 그 대신 이렇게 얘기하는 거다. "그래, 1분이라도 더 아름답고 달콤한 꿈을 꾸려무나.(+엄마 미소)" 물론 잠자던 사람이 소름 끼쳐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훨씬 보기 좋은 풍경이다.

 잠을 많이 잔다고 해서 게으른 사람 취급하지 말자. 그는 단지 꿈꾸고 싶을 뿐이다. 못 자게 할 거면 꿈을 이뤄 주시던가.

 글이 더 길어지기 전에 1분이라도 더 좋은 꿈을 꿔야겠다. 자자, 어서 누워요. 그리고 모두, 잘 자요.(내 꿈 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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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nstagram.com/bpm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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