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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May 24. 2016

내가 만난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12

유럽이라서 가능한 아름다움, 2013-2014

2013~2014
다 합쳐 약 3~4달간 다닌 유럽, 발칸 중 가장 아름답다 생각된 순간만 모아보았다.

12위. 그 유명한 피렌체의 석양.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마주한 피렌체의 전경은 정말 예술이었다.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이 곳에 같이 갔던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가 '냉정과 열정사이' OST라며 내게 이어폰을 건네줬었다. 그 이어폰을 귀에 꼽는 순간 눈 앞에 보이는 피렌체의 석양이 마치 한 장면의 영상처럼 느껴졌다. 그 영화를 보지도 않았는데 눈앞엔 영화의 장면이 흘러가고 있었다.


미켈란젤로 언덕의 석양, Firenze, Italy, 2013
어두워질수록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Firenze, Italy, 2013

태양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빛으로 피렌체의 건물들을 물들였고, 건물들은 오묘한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마치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의 음률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인파가 이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담으려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왔지만 그 사람들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고 내 마음에는 내 귀가 담았던 음악, 눈이 담았던 피렌체의 눈부신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일 거라 확신했다.

유럽의 여름은 해가 엄청 길다. 8시가 돼도 해가 지지 않는다. 이 사진을 찍었을 무렵이 8시쯤이었다. 해가 무척이나 늦게 짐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머물다 가.. 조금만 더 머물다 가... 생각하다 결국 숙소에 늦게 들어가 버린 기억이 난다.




11위. 시간이 멈춘 듯한 중세도시, 아씨시의 비 오던 날.

인터넷을 보며 유럽여행 계획을 짜던 중 시간이 멈춘듯한 중세도시의 얼굴을 한 아씨시를 보고 반드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정말 기대했던 도시 중 하나였다.

보통 아씨시 여행은 당일치기 혹은 1박만 하고 떠나기 일쑤였는데, 난 아씨시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호스텔에 2박을 예약했다.

첫날은 정말 좋았다. 정말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의 모습이 눈 앞에 있었다. 조용하고, 조용하고, 조용하고.... 근데.... 너무 조용하기만 하다...

정말.. 얌전한, 점잖은 이런 수식어가 너무나 잘 들어맞는 마을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을은 너무너무 예뻤지만, 종교가 없는 내겐 그냥 예쁜 마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루함 속에서 맞이한 둘 째날인 정말 심심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너무 심심해서 그냥 구석구석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 붓기 시작했다. 불과 전 날만 해도 날이 너무 쨍쨍해서 땀을 뻘뻘 흘렸는데. 그냥 보슬비겠거니 하고 그냥 걸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급기야 나중엔 아예 쏟아붓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간신히 어느 처막 아래로 숨었는데 눈 앞에 그림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는 쏟아지고 있었지만 내 시선은 이 풍경에 완전히 멈춰 있었다, Assisi, Italy, 2013
고개돌려 반대편을 봐도 마찬가지, Assisi, Italy, 2013

그 순간 생각했다.

'아씨시에 오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2 박하길 잘했다.'

만약 하루만 묵었다면 비 오는 아씨시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테니까..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비가 오니 아씨시의 벽돌로 지은 건물들이 빗물에 젖은 색으로 물들었고, 안 그래도 조용한 마을에 빗소리만 가득 울리고 있으니.

비를 피하려 들어간 그 처마 밑에서 비 오는 아씨시를 바라보며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받아버렸다.


Assisi, Italy, 2013
Assisi, Italy, 2013
아씨시의 랜드마크가 된 성 프란체스코 교회, Assisi, Italy, 2013

비가 조금 그치고 난 뒤 다시 걷기 시작하며 보는 물에 젖은 아씨시의 모습은 더 아름다웠다. 뿌연 안개가 저 멀리 산을 감싸고, 무채색의 아씨시 건물들이 물에 젖은 채로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 그림 같았다.

아씨시. 정말 청초한 얼굴의 아씨가 생각나는 그런 곳이었다. 이름 값하네.




10위. 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만난 아기 천사들.

나의 첫 유럽여행의 첫 도시, 영국 런던.

런던에 도착하기 직전 한국의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치는 대형사고를 저지르고, 그 자리에서 다른 티켓을 새로 사서 가야 하는 엄청난 멘붕 상태여서, 처음 도시인 런던은 기대보다 두려움이 컸다.

일단 경비가 엄청나게 마이너스된 상태에다 안 그래도 처음 가는 곳이라 무서운데 시작부터 그런 큰 실수를 저지르니 무섭고 두렵기만 했다. 다행히도 런던에 묵는 8일 동안의 숙소는 미리 다 해결을 하고 온 상태였지만, 혼자 런던 구경 다니며 온전히 건강한 마음으로 다니기란 사실 불가능했다. 머릿속엔 돈, 돈, 돈 생각밖에 없었다. '뭐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고 '저거 하면 얼마를 쓸 테고 얼마 쓰면 얼마가 남을 테고, 됐다, 하지 말자.' 이런 식으로 생각의 흐름이 계속 반복됐을 뿐. 여행이 여행이 아니었다.


그래서 첫날 런던을 무작정 걸어 다녔다. 교통비가 아까우니까.

그래도 다행히 영국의 대부분의 미술관, 박물관은 공짜라서 '그래.. 그걸 구경하자' 해서 나 홀로 미술관 투어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National Portrait Gallery에 들러서 구경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합창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지 싶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까이 가봤더니 사진 속 빨간 옷을 입은 아이들이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U.K, 2013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모여서 선생님의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데... 주책 맞게... 눈물이 날 뻔했다..

 이 아이들이 성가대애들 마냥 기똥차게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니었고, 나름 짜 온 율동도 있는 것 같던데 다 틀리고 너무 서툴렀지만, 그냥, 그 당시 너무 지쳐있는 내 상태를 위로해주는 노래처럼 들렸다. 너무 아름답게만 들릴 뿐이었다.

그래서 한참을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앞으로 여행에서 힘들 때마다 이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힘을 받자!!'

그래서 녹화를 했다. 지금 다시 들어보니 그때보다 훨씬 못 해 보이는데, 그때의 감동은 아직까지 살아있다.




9위. 영국의 그리니치 공원이 준 자유.

영국에선 거의 도보여행이었다

만약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그리니치 쪽에 살지 않았다면 난 그냥 런던 센터 쪽에서만 줄곧 걸어 다니면서 돌아다녔겠지. 근데 다행히도 카우치 호스트가 그리니치 쪽, 그러니까 런던 근교 쪽에 살고 있어서 필연적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 대한 정보는 1%도 없었던 상태. (이런 식으로 호스트 찾아갔던 도시들이 많다.)

호스트 집에 짐을 풀고 나와 또 줄곧 걸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걷기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주위의 건물들과 풍경이 너무 예뻐서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기에 만족스러웠다. 사진 찍으면서 혼자 노는 거지, 뭐.

그러다가 그리니치 공원에 가봤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한 게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런던에 있는 유명한 공원은 다 가보고 왔는데도 그리니치 공원은 뭔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Greenwich Park, London, U.K. 2013
Greenwich Park, London, U.K. 2013
Greenwich Park, London, U.K. 2013
Greenwich Park, London, U.K. 2013

엄청나게 드넓은 평야와 초록색으로 우거진 나무들.

런던 날씨 지 X 맞기로 소문났는데 (하루에 비 왔다 맑았다를 내 나이만큼 반복하는 것 같은), 내가 있던 대부분의 나날은 사진처럼 엄청나게 맑았다.

그리니치 공원에서 누워보기도 하고 혼자 타이머를 맞춰 사진 찍기도 하고 생쇼를 하다가.. 문득 뭔가 내가 되게 자유로와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런던에 계속 있으면서 돈 때문에 허덕이며 숨 막히는 기분이었는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도 이 곳에서 이런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새삼...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돈 없어서 절대 사 먹지 않았을 2.5파운드짜리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질러서 기분까지 냈다.


기분 내기 위해 산 2.5유로 소프트 콘. 예쁘다. (영국에선 맛을 기대하면 안 된다.), London, U.K. 2013

먹고 나서 좀 비싼 것 같아서 바로 후회했지만..


돈 없이도 자유를 느끼게 해줬던 그리니치 공원의 이 순간. 시간이 지나서 또다시 돈 없이 이 곳을 찾는다면 이때처럼 자유를 느낄 수 있을까..?




8위. 모네가 사랑 한 지베르니, 그곳의 그림 같은 풍경.

파리는 런던을 떠나 두 번째로 갔던 도시고, 파리에 머무르는 8일 중에 하루 시간 내서 모네의 집을 가려고 지베르니를 다녀왔었다.

모네의 집은 생각보다 규모가 되게 작아서 좀 실망했는데, 뒤에 있는 정원은 정말 좋았다. 꽃 좋아하는 울 엄마가 가면 진짜 진짜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모네의 그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조금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환경이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아름다움은 건재했던 모네의 집 정원, Paris, France, 2013
Giverny Monet's Garden, Paris, France, 2013
진짜 모네 그림같았던 지베르니 풍경, Paris, France, 2013

모네의 집 밖엔 진짜 모네 그림 같은 풍경도 있었다. 그런데 내 기억 속의 지베르니는 이런 모습이 아니다.


Giverny, Paris, France, 2013

내 기억 속의 지베르니는 이런 모습.


파리로 다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뜨는 바람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걷기로 결심을 하고 지베르니 구석구석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정처 없이 걷다가 내가 산을 오르고 있단 사실을 발견하곤 했으니.) 끝이 나올 때까지 걸어보자 하며 끝없이 걸었는데 어느새 난 풀숲을 헤치면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었다. 시간을 보니 버스 시간이 가까워지고 해서 그냥 중간에 멈춰서 뒤를 돌아봤는데 사진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 정말이지, 가슴속까지 시원 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의 그 기분이 내 사진 속에선 전혀 표현이 안됐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혼자 여기서 동영상도 찍고 아주 쌩쑈를 했는데, 누가 보지 않았을는지 무섭다.




7위. 안시가 선물해준 푸른 행복.

안시는 정말 너무너무 좋은 곳이었는데, 카우치 호스트와 같이 다니다 보니 사진을 많이 못 찍었다. (이 당시엔 카우치 호스트랑 동행할 땐 사진을 많이 안 찍었다. 사진만 찍고 가슴엔 담지 않는 여행객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안시 사진이 별로 없다..
안시는 원래 여행 예정에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전 날 갑자기 프랑스 기차가 파업을 하는 바람에 원래 아를에 가려던 걸 안시로 바꾸게 돼 버렸다. 고흐를 만나러 아를에 가고 싶었던 건데.. 눈물을 머금고.. 안시로 행선지를 변경했다.

다행히도 전 날 카우치 호스트에게 리퀘스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당일 아침에 구해져서! 안시에서도 카우치서핑을 했다. 그리고 난 이 곳에서 최고의 카우치 호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파스칼 아저씨와 나탈리 아줌마 부부.

정말이지 나를 친자식처럼 챙겨주시고 아껴줬던 분들이다. 오죽하면 내가 프랑스 아빠 엄마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첫날, 나탈리 아줌마가 픽업을 해주셔서 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나와 동갑인 딸이 친구와 같이 집에 돌아와서 딸을 소개하여주셨는데, 오늘 저녁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갈 예정인데 나보고 같이 가잔다. 와, 친화력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처음 보는 외국인을 자기 친구들 모임에 껴줘서 같이 논다는 게. 어쨌든 난 당연 흔쾌히 OK 했고 같이 쫄래쫄래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따라갔다.


안시의 푸른 호수, Annecy, France, 2013

그리고 사진 속의 푸른 호수를 마주하게 된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 바다라 해도 믿을 정도의 규모다. 해가 지고 있어서인지 끝이 잘 보이지 않아 사라진 지평선처럼 보였다.

안시 호수 앞에는 커다란 잔디밭이 있었는데 페스티벌은 그곳에서 진행되었다. 커다란 야외 스크린을 펼쳐놓고, 애니메이션을 상영해주었다. 불어 더빙이라 하나도 못 알아 들어서 졸음을 꾹꾹 참고 있는데 그 친구의 다른 친구가 옆에서 친절하게도 영어로 내용을 계속 설명해주었다. 그런데도 너무 졸린 나머지... 결국 고개 숙이고 좀 잤다.

안시에서 둘째 날은 산도 올라가고 호수에서 수영도하고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말 많이 그립다.




6위. 모스타르 다리에서 본 해가 지는 풍경.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크로아티아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나라다. 전쟁이 끝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전쟁이 남긴 상처가 이곳저곳 아직도 남아있었다. 건물에 총 자국이 그대로 있는데 보수해놓지 않았다. 일부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해서. 다시는 또 그런 전쟁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모스타르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하루 머무르면 다 볼 수 있는 곳인데, 나는 3일을 머물렀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물가가 싸서.. 오래 있고 싶었다. 3일 동안 있었는데도 심심하지 않았고, 마을이 아기자기하게 예뻐서 아직도 가끔씩 생각나는 곳이다.


Mostar, Bosnia Hercegovina, 2014
Mostar, Bosnia Hercegovina, 2014
스타리 모스트(모스타르의 랜드마크 다리)에서 본 마을 풍경, Mostar, Bosnia Hercegovina, 2014

특히 모스타르의 마크와도 같은 스타리 모스트를 건널 때 보았던 석양의 모습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모스타르의 다리도 예전에 전쟁 때문에 한 번 무너졌다가 다시 재건한 것이다. 무너지는 영상을 다큐로 보았는데 정말 끔찍했다. 이 예쁜 다리가 다시 무너지는 일은 절대 없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5위. 다짐을 불러일으키는 자다르의 선셋.

크로아티아는 꽃보다 누나가 방영되면서 한국인들에게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했다. 방송에서 나간 도시는 자그레브, 라스토케, 플리트비체, 자다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정도인 것 같은데 나는 라스토케 만 제외하고 다 다녀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자다르. 자다르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자다르의 석양 때문이다. 자다르의 석양은 이미 많은 여행자 사이에서 유명하기도 하지만, 유명세대로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자다르의 해 지는 풍경 ,Zadar, Croatia, 2013

자다르에 묵은 첫날은 바다 오르간이 있는 자다르의 뷰 포인트에서 석양을 바라보았다.

Zadar, Croatia, 2013
Zadar, Croatia, 2013
Zadar, Croatia, 2013

그리고 두 번째 날인 사람이 없는 바닷가에서 석양을 감상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첫째 날보다 둘 째날 봤던 석양이 더 좋았다.

둘 째날 바다에 발을 담그고 석양을 바라보는데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내가 여행을 오게 된 목적이 무엇일까. 에서부터 지난날 내가 나 자신과 했던 약속들.. 뭐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큰 다짐을 했다. '꼭 성공하자' 고..

아직도 내가 나태하다 느낄 때면 그때 자다르의 석양 속에 했던 맹세를 떠올리곤 한다. 꼭... 꼭!!! 성공하자..!




4위. 내가 사랑하는 잘츠캄머굿트.

잘츠캄머굿 트는 오스트리아의 소금광산 지역 쪽을 통틀어 지칭하는 지명 이름이다. 그 유명한 할슈타트는 잘츠캄머굿트 내에 있는 마을 중 하나.

2014년 떠났던 배낭여행에선 할슈타트부터 다른 마을인 바트이슐 까지 걸어서 이동했었다. 거리로는 약 20km 정도 되는데, 이 날 걸었던 총 거리는 한 30~35km 정도 될 것 같다. 차로는 3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지만 걸어가면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더군다나 보행자 도로가 다 깔려 있는 게 아니어서, 차도 옆에 난 갓길로 걸어가기도 했는데 커다란 대형트럭이 바로 옆을 스쳐지날 갈 때마다 엉덩이가 찌릿찌릿 저려왔다. 날씨는 보슬비가 내리는 적당히 시원한 날씨여서 걷기에는 너무 좋았다.

잘츠캄머굿트를 걷다 조금 쉬려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마다 마법 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Hallstatt, Austria, 2014


Salzkamergut, Austria, 2014
Salzkamergut, Austria, 2014

목적지 부지런히 걸어가랴, 아름다운 풍경 눈과 사진에 담으랴... 바쁘게 움직인 다섯 시간이었다. 이 날은 숙소를 미리 예약해놓지도 않아서, 빨리 도착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유스호스텔이 있다는 정보만 믿고 갔는데... 막상 바트이슐 도착해서 호스텔 가보니 오늘은 만실이란다. 정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은 전부 비싼 호텔 아니면 비앤비여서.. 선택권이 없었다. 전재산이 40만 원인 상황에서 어찌 하루 숙박비로 10-20만 원을 떡 하고 낼 수 있겠나.

여행자 인포가 닫기 전에 후다닥 들어가 이 곳에서 가장 싼 숙소를 알아봐 달라 했지만 이 근방에서 제일 싼 곳은 그 유스호스텔뿐.. 나머지는 가격이 확 뛰거나 만실이었다.

나중에 결국 조금 비싼(?) 하지만 조금 먼.. 숙소를 잡게 되었고 그 숙소까지 또 한 4킬로 정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장 보려고 시내 나오느라 4킬로 또 걷고...

그 날 잠을 자는데 다리가 자는 내내 다리가 미친 듯이 욱신거리었다. 마치 수십 개의 바늘로 콕콕콕 찌르듯이..

고된 하루였지만 잘츠캄머굿트의 아름다운 풍경이 모든 걸 용서해줬다.

또 해보라고 한다면? 흔쾌히 또 걸을 것 같다.




3위. 이른 새벽 실눈을 뜬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를 두 번째 찾았을 때다.

23살에 갔던 잘츠부르크는 웨스트반이라는 기차를 이용했었는데 24살엔 패기 넘치게(=무식하게) 히치하이킹으로 가게 되었었다. 비엔나에서 잘츠부르크로 이동해야 하는 루트였는데, 히치 위키라는 히치하이커들의 정보가 잔뜩 담겨있는 사이트를 이용해 히치 포인트를 찾은 후 salzburg가 적힌 사인 카드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히치 포인트에 서 있은지 1분도 안돼서 주유소에 있는 머리 긴 남자가 태워주겠다고 하는 거다. 정확하게는 '내 친구가 뮌헨(독일에 있는 도시, 잘츠부르크와 가깝다.)에 가는 길인데 너희를 중간에 떨궈줄 수 있는지 물어봐 주겠다' 였는데 커다란 트럭에 있는 운전수와 뭐라고 얘길 나누더니 오케이 사인을 보내줬다.

트럭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 로고가 커다랗게 프린팅 되어있었다. (난 이상하게 이런데서 신뢰를 얻는다.) 트럭이 너무 커서 뭔가 좀 무서운 느낌도 들었지만 일단 트럭에 탑승했다.

트럭 내엔 아이스크림 관련 장비처럼 보이는 커다란 칼 등이 있어서 공포감을 더 조성했다.. 그래도 비엔나에서 묶여있는 거보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탑승해버렸다.

그런데 이런 의심을 한 게 미안할 정도로 차를 태워준 독일 친구들은 착한 친구들이었다. 약속대로 중간지점인 린츠의 주유소에서 떨궈주고.. 린츠에서 한 7시간을 기다려 기적적으로 잘츠부르크 가는 차를 잡아타고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한 8시 반경... 숙소 구하기는 이미 물 건너갔고.. 적당히 잘만한 노숙 장소를 찾다가.. 장사가 끝난 천막 중 한 곳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이 올 리가 있나. 해는 완전히 떨어져서 으스스 춥고 더군다나 강 옆이라 더 춥게 느껴지고.. 천막 밖으론 오스트리아 젊은 청년들이 술 마시고 깽판 치는 소리가 들리고...

결정적으로 어떤 아저씨가 몇 시간 동안 천막 주위를 어슬렁 거리는데.. 이게 정말 너무 무서웠다. 눈을 땡그랗게 뜨고 한 숨도 자지 못했다.

결국 다섯 시쯤 돼서 해가 뜨자마자 서둘러 천막을 빠져나왔다. 본의 아니게 아직 깨어나지도 않은 이른 잘츠부르크의 민낯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직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조용한 공기만이 잘츠부르크 시내를 맴돌고 있었다.


Salzburg, Austria, 2014
Salzburg, Austria, 2014

이윽고 해가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찬 공기만 머물던 잘츠부르크도 옷을 입기 시작했다. 작년에 마주했던 잘츠부르크와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도 없는 미라벨 공원 벤치에 가서 누워있으니.. 잘츠부르크가 마치 내 것이 된 기분!!!

말로 표현할 수 없던 기분을 선물해준.. 이른 새벽의 잘츠부르크였다. 그 새벽의 공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공동 3위는 이태리 포지타노의 "실사판 지브리 애니메이션"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서 3위에 두 개를 집어넣었다.


포지타노 가는 길은 꽤 복잡하다. 로마에서 남부 투어를 신청해서 한 번에 갔다 오는 방법도 있지만, 난 투어를 신청할 돈도 없었고... 투어 신청하면 여유롭게 보지 못할 것 같아서 직접 찾아갔다. 나폴리를 거쳐서 소렌토로, 소렌토에서 버스를 타고 포지타노로 이동했다.

포지타노에 도착 해 버스에서 내리자 정말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더군다나 어떤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고 거리에서 행진을 하고 있었다! 북이며 나팔 등을 들고 있는 악단이 팡파르를 불어주는데 정말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실사판 지브리 애니메이션같은 포지타노, Positano, Italy, 2013
숨막히게 아름답다, Positano, Italy, 2013
Positano, Italy, 2013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 같은 골목길들, Positano, Italy, 2013
가끔씩 빼꼼이 보이는 푸른바다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Positano, Italy, 2013

포지타노의 골목골목마다 보이는 풍경은 말할 것도 없다. 골목을 타고 바닷가까지 내려가는데, 그 골목골목마다 마치 이야기가 숨어있는 듯 파스텔 빛 동화 장면이 계속해서 눈앞에 펼쳐진다. 정말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포지타노는 정말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이고, 다시 가게 된다면 꼭 1박 이상 묵고 싶은 곳이다.





2위. 말을 걸면 대답해주는 쾨니히 호수.

독일에 위치한 쾨니히 호수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검색해도 잘 안 나온다.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뭔가 나만 알고 싶은 곳...?

독어 표기는 Konigsee 이구,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추천으로 가게 되었었다. 전 날 호스트에게 잘츠부르크 근교에 갈만한 곳을 물었었다. 할슈타트를 당연 1순위로 추천해줄 줄 알았는데 몇 가지 브로셔를 내게 건네주었다. 그 맨 위에 있던 브로셔에 있는 사진 속 장소가 바로 쾨니히 호수였다. 호수 위에 붉은 지붕을 쓴 신비로운 건축물이 눈에 띄었는데, 다름 아닌 성당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래, 이 곳을 꼭 가야겠다!! 생각하고 다음 날 바로 갔다.


Konigsee, Germany, 2013
Konigsee, Germany, 2013
Konigsee, Germany, 2013

내가 실제로 마주한 쾨니히 호수는 브로셔 사진 속의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사실 돈 때문에 쾨니히 호수까지 도착해서도 배를 탈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탔는데, 안 탔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

Konigsee, Germany, 2013

브로셔에 찍힌 사진 속의 장소는 꼭!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저 성당을 보고 싶어서 쾨니히에 갔던 것 이었다.

더군다나 배 위에서 선장(?) 같은 분이 트럼펫을 불어주시는데.. 그게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다. 트럼펫 소리가 쾨니히 호수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메아리로 돌아온다. 산이 대답하는 것처럼. 마치 멀리 있는 새를 부르는 듯 트럼펫 소리를 내면, 저 멀리서 메아리가 새가 되어 날아왔다. 너무 황홀한 경험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 날씨가 안 좋아져 맑은 하늘을 볼 순 없는 게 내심 아쉬웠지만, 이 날 쾨니히 호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전 정말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위. 코토르 "바다 위를 수놓은 무지개와 범고래"

1위는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이 순간이야 말로 이 글의 주제와 딱 어울리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바다 위를 수놓은 무지개와 범고래..! 이 문장만 봐선 그냥 소설 속의 장면인 것으로만 느껴지겠지만...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무지개나 바다 위를 헤엄치는 범고래나 둘 중 하나 보기도 힘든데.. 이 두 개를 한꺼번에 본 것이다!!
일단 몬테네그로의 코토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곳 역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라 나 혼자만 알고 싶은.. 그렇지만 너무너무 좋았기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곳이다.

몬테네그로는 크로아티아 밑에 있는 작은 나라 이름이다. '검은 산'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몬테네그로 내에는 검게 보이는 산이 많이 있다. 나라 이름이 '검은 산'이라는 게 조금 특이한 듯...

많은 사람들이 꽃보다 누나 크로아티아 편을 보고 두브로브니크를 동유럽, 발칸지역 여행의 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다. 진짜 꽃은 여기, 코토르!


Kotor, Montenegro, 2014
Kotor, Montenegro, 2014

두브로브니크보단 작지만 구시가지도 잘 형성되어 있고 전망대에 올라서 보는 코토르만의 모습은 정말 정말 환상적...!

비가 그치고 난 코토르 전경, Kotor, Montenegro, 2014
이 아름다운 곳에서 한 평생을 산 낚시꾼 할아버지는 오늘 무슨 생각을 하시나, Kotor, Montenegro, 2014

두브로브니크에 비해 관광객도 훨씬 적고, 그렇기에 더 조용하고. 자연을 더 천천히, 여유롭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다를 에워싸고 마을들이 형성되어있는데 처음 3일은 코토르에서 마지막 2일은 옆동네 prcanj라는 곳에서 보냈다. 이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무지개와 돌고래를 만났다.

프르칸즈에서 코토르까지는 생각보다 거리가 좀 된다. 버스를 타면 5-10분이면 가는 거리지만.. 버스를 어떻게 타는지 몰라서.. 장 보러 왔다 갔다 걸어 다녔는데, (prcanj에는 시내도 없고 큰 마트도 없다.) 장을 보러 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미친 듯이 쏟아 붓기 시작했다.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난 일단 어떤 가정집의 처마 밑에 몸을 숨기고 비가 좀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어찌나 쏟아붓던지 처마 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이 다 젖을 정도였다!

이윽고 비가 좀 그치고 아주 잠깐!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그때! 바다 쪽에서 뭔가 울렁 하고 올라오는 것을 봤다. 잘못 봤나 싶어 가까이 가봤더니...! 저건 누가 봐도 고래 아닌가! 태어나서 바다에서 고래 보는 건 처음이었다. 모양이나 규모로 봐서 범고래처럼 보였다.! 바다의 먹이사슬의 최상 꼭대기! 범고래! 그걸 직접 두 눈으로 보다니...! 너무너무 놀랍고 신기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였다. 신기해서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바다 위로 무지개가 뜨기 시작했다.


Kotor, Montenegro, 2014

사진을 찍는 사이 아주 잠깐 생기고 사라진 무지개였지만..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 특별히 그 날 뭐 복권이 당첨된 건 아니었지만..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

사실 코토르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과 더불어 내가 다시 한번 꼭 가고 싶은 도시 1위 이기도하다.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장면들을 뒤로하고 코토르에 1위를 매겼는지도 모른다.


다시 가고 싶은 유럽! 마약 같은 곳이다.. 끊을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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