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un May 21. 2018

프리라이더를 처치하는 방법

책임감에 대하여


EP4

프리라이더를 처치하는 방법

책임감에 대하여


대학생활 중 좋지 않은 것들을 꼽아보라면 몇 가지가 떠오르는데 뭐니뭐니 해도 그중 제일은 팀플이다. 나는 팀플이 싫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젠 팀플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교수님들은 팀원들끼리 합심하여 무언가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주길 바라고 팀플 과제를 내는 것 같은데, 교수님들이 원하는 의미의 팀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팀플은 '개인의 합'일뿐이다. 혹은 마지못해 과제를 할 수밖에 없는 1인인 팀장의 개인 결과물이던지.

팀플이 싫은 이유는 당연히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때문이다. 프리라이더는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어 잠수 타는 사람, 성의 없게 자료를 조사해오는 사람, 한 학기 동안 할머니 제사가 5번 넘게 있어 참여 못하는 사람 등을 뜻한다. 매 학기 팀플 과제가 생기면 우리 팀에 프리라이더가 있을까 봐 조마조마하다. 내가 팀장이 아닌 경우에도 미적지근하고 수동적인 팀원들의 참여도를 보면 속이 터질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찾은 나름의 방법은 그냥 내가 팀장을 맡아버리는 것이었다.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받을 바에야 그냥 팀장을 맡아버려 내 임의대로 파트를 분배하고 받은 자료로 혼자 수정, 보완하여 과제와 발표를 완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프리라이더를 그냥 내가 먼저 차에 태워주는 거다. 그 편이 몸은 피곤해도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해 팀플 과제는 전부 그런 식으로 해결했다.

그런데 막 학기를 하고 있는 지금, 갑자기 프리라이더들이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개인 사정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나도 정말 무지막지하게 바쁘다. 그 와중에 주어진 팀플을 어떻게든 수행해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 한 선택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정말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수업이었다면 공부를 목적으로 했을지 모르겠지만, 오로지 졸업을 위해 신청한 수업일 경우엔 정말 100% '책임'을 지기 위함 뿐이다. 공부가 목적이든, 졸업이 목적이든 어찌 됐든 내 손으로 직접 수강신청 버튼을 클릭하여 결정한 선택이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그 책임을 지고 싶을 뿐인 것이다. 누군가는 정말 이 수업이 필요해서 신청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그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최소한의 책임조차 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선택만 할 뿐,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본인 인생 살기 바쁘다. 더군다나 그들은 그게 자유인 줄 착각하고 산다. 자유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문제는 책임질 수 있으면 생기지 않는다. 문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책임을 지지 않아서다. 수많은 정치인, 범죄자, 재벌들이 왜 욕을 먹는지 생각해 보아라. 책임지지 않아서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만 진다면 아무 문제없다(그럼에도 욕을 먹는 건 그들이 저지른 문제가 그 정도 책임으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책임져야 할 문제를 만드는 것부터가 문제이긴 하다만, 일단 문제가 벌어졌다면 책임지려는 행동을 보여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진압방법이다. 이리저리 돌리고 회피하는 것보다 잘못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깔끔하게 사과하는 것이 낫다. 사과문 잘못 써서 더 욕먹는 공인들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그들이 더 욕 먹는 이유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애매한 사과문을 쓰기 때문이다. 돈이 얼마가 들던, 내 인생이 얼마나 망가지건, 모든 걸 감수하고 책임질 마음이 있다면 회피할 것 없이 모든 잘못에 대해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라이더를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라고 본다. F. 에프!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에프다. 팀플에서 그들이 한 역할을 면밀히 조사해 진상이 밝혀 가차 없이 F 성적을 매겨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이 수업과 과제에 얼마나 책임을 갖고 했어야 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마음이 약하신 건지 그들에게 F를 잘 주지 않는다. 혹은 프리라이더들이 여우같이 이런저런 사연을 만들어 교수님을 설득시켜 F를 면하거나. 제발 프리라이더를 처치하는 정의가 구현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모든 교수님들은 아셔야만 한다. 요즘의 팀플 과제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피 말리게 하는 과제인지를!


-

instagram.com/bpmbear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 없는 날이 늘어가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