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간
EP5
아침,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간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다. 스케줄이 있지 않는 한 이른 새벽 일어나지 않는 요즘이었기에 오랜만에 만난 새벽 공기가 낯설었다. 문밖을 나서 편의점에서 달걀 샌드위치와 초코 우유를 사고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창 밖 건물 위로 보기 좋게 햇빛이 카펫처럼 깔리기 시작했고 저 멀리 보이는 눈부신 녹음이 머릿속에 휘파람을 불었다. 오늘의 하늘은 박하사탕 맛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상쾌한 이 기분. 아, 아침이다.
아침. 아침이란 시간이 주는 에너지는 늘 신선하다. 아침은 시작이며 새로움이며 영감이며 가능성이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간,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시간, 아침.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잔잔한 선율의 음악까지 빠방 하게 틀어놓으면 잠시 일본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달까. 기분만은 그러하다.
여행지에서의 아침은 왠지 그런 느낌이 더한 것 같다. 2007년 여름, 그 해의 도쿄는 아침의 시간이 기억 속에 가장 진득한 색으로 묻어있다. 하릴없이 걷던 카메아리의 아침 풍경. 마을을 메우는 매미 울음소리, 빨래를 너는 여인부터 삼삼오오 모여 길을 건너는 노오란 병아리 같은 아이들,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햇살이 내려앉은 주민들의 따뜻한 미소. 그 해, 17살의 내가 만난 도쿄 카메아리의 아침은 그런 모습이었다. 2015년 겨울, 홋카이도 하코다테의 아침 공기 또한 잊지 못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장 사람들, 거리 위의 전차와 버스들. 과일 가게 아저씨가 개시한 멜론 조각의 첫 손님이 된 나는 입 안 가득 차가운 멜론을 물고 하코다테의 아침을 걸었다. 햇빛이 부서지는 세레니티 빛의 바닷바람은 마치 샤워 뒤에 찾아오는 그 기분과 흡사했다. 그 아침의 공기를 병 속에 담아 올 수 있었다면 열 병이라도 담아 캐리어를 꽉 채워서 돌아왔으리라. 몬테네그로 코토르의 아침은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다. 지구의 종말이 찾아왔나 싶은 폭풍우가 전날 밤에 마을 전체를 덮친 후 찾아온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폭풍우는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하고 깨끗한 아침이 밝았다. 비와 진흙으로 지저분해져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진 빨래들을 주우며 아름다운 코토르의 아침을 기억의 서랍에 담았던 것 같다.
불신이 가득한 요즘, 그중에도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몇 가지가 있는데 아침이 그중 하나다. 아침은 항상 특별한 에너지를 준다. 지쳐있던 마음이 정리가 되면서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매년 1월 1일만 되면 전국 각지의 모든 사람들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산 위로 올라 아침을 맞이하나 보다. 내게 주어진 일 년이란 시간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는 특별한 에너지를 받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아침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모두에게 찾아오는 시간이니까. 비가 내려도, 눈이 와도, 심지어는 폭풍우가 모든 걸 덮치더라도 아침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말도 안 되는 재앙이 휩쓸고 간 아침은 도리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난다. 코토르의 아침이 그러했듯이.
어쩌면 내 인생, 꽤 괜찮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겐 아침이 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있으니까. 폭풍우가 찾아와도 괜찮다. 그대와 나에겐 아침이 있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아침이 온다. 그러니까, 힘들면 잠깐 눈을 감았다 뜨자. 새로운 시작, 영감,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 아침이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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