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빛, 겨울에 물들다

따뜻한 홋카이도의 에어비앤비 ; hokkaido, 2015

by S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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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는 겨울을 싫어한다. 싫기보단 무서운 쪽에 가까운데 그 이유야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맹수가 무서운 데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겨울이 무서운 이유는 춥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겨울을 피할 도리가 있나. 그래서 겨울이 주는 소소한 기쁨을 음미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버스를 기다리며 사 먹는 뜨거운 단팥이 듬뿍 든 붕어빵이라든지, 온수매트 빵빵하게 틀어 놓은 이불속에서 위스키 한잔과 함께 하는 코미디 영화라든지. 이마저도 고갈되었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 이곳을 떠나는 수밖에.




겨울을 피해 날아간 곳


홋카이도에 도착했을 땐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강한 추위가 몰아쳤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완전무장을 했지만 머릿속에 자꾸만 떠오르는 후회라는 단어를 지우기란 쉽지 않았다.


무서운 추위에 등 떠밀려 선택한 여행지가 왜 동남아가 아닌 한겨울의 홋카이도였을까. 새하얀 설원이 끝없이 펼쳐진 영화 <러브레터>의 그 홋카이도 말이다. 으레 그렇듯, 모니터로 만나는 화면 속의 여행지는 현지 상황을 무시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에펠탑을 품은 파리의 야경사진은 그 주변을 배회하는 집시들과 장사치들을 가렸고, 에메랄드 빛 바다가 아름다운 휴양지 사진은 그 뒤에 가려진 호객꾼들과 개발 공사로 인해 생긴 소음과 뿌연 먼지들을 잊게 했다. 홋카이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시절 <러브레터>가 남긴 진한 여운은 그리도 무서워한 추위를 감당해볼 만한 용기를 심어줬다.




오렌지빛, 홋카이도에 물들다


추위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기도 잠시, 치토세 공항에 마중을 나온 카우치 서핑 호스트 잇토우상과 그의 어린 두 아들, 타쿠미와 카츠미짱과 인사를 했다. 잇토우상의 집이 위치한 마을은 아기자기한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몰려있는 동화 같은 곳이었다. 하얗게 뒤덮인 눈 때문인지 어쩐지 더 조용해 정말 다른 세상으로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잇토우상의 아내이자 귀여운 두 아이의 엄마, 마유상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렌지빛 조명으로 데워진 집은 꽁꽁 언 두 귀와 손가락 끝에 간지럼을 태웠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는 테이블에 다같이 모여 앉아 마유상이 정성스레 차려놓은 저녁을 먹었다. 주린 배를 따뜻한 국물로 채워가는 동안 날은 빠르게 저물었고 땅거미가 진 어둠이 눈 쌓인 마을에 고요함을 선물했다. 잇토우상은 현관문을 열더니 직접 빚은 술이라며 눈 속에 묻어뒀던 맥주 두 병을 꺼냈다. 우리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 피워진 오렌지빛 촛불에 기대어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한창 유행했던 허니버터 칩 얘기부터 군대 가기 전 심난했던 나의 심정까지. 창밖으론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바깥이 겨울로 물드는 동안 집 안은 더 진한 오렌지 빛으로 물들었다.


그때의 온기가 아직도 식지 않았는지, 매년 겨울이 되면 홋카이도가 떠오른다. 단 하룻밤이었는데도, 너무 추운 곳이었는데도, 그 기억 전체가 온통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있다. 눈 속에 묻어두고 온 오렌지빛으로 물든 따뜻한 홋카이도를 다시 꺼내오고 싶다. 하나 머뭇거리며 홋카이도를 다시 찾지 못하는 이유는, 다시 찾았을 땐 그때의 홋카이도가 없을 것 같기에, 차게 식어있을 것만 같기에. 그러니 이렇게 가슴속에 묻어둬야 한다. 별 수 있나. 홋카이도가 남긴 오렌지빛 기억은 붕어빵 한 입과 온수매트 속 영화 한 편과 함께 올 겨울을 날 수 있는 땔감으로 사용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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