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여행을 하는 법

사무이 섬의 별을 담은 거대한 풀장 ; koh samui, 2017

by SHUN

우주


어릴 적 과학상상화의 단골 주제는 우주였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제멋대로 상상해놓고 거기에 우주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우주 속에는 형형색색의 오로라와 도화지의 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행성, 다리가 열두 개 달린 달님과 씹다 뱉은 껌같이 생긴 외계인들이 살고 있는 다양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우주의 매력을 알게 된 건 아마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우주라는 곳은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갖다 놓을 수 있는 세계였던 것이다.


매일 우주를 만들었다. 하굣길의 비행운을 따라서, 밤하늘의 보름달을 따라서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오늘 한 편이 끝나면 머릿속 상영관에 나 홀로 to be contiue를 띄워놓고 다음날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만들었던 우주가 68935개는 되려나... 나이가 들어서 드는 생각은 이 우주들로 재테크를 했다면 지금쯤 진짜 우주여행 갔을 수도 있지 않으려나.. 싶다.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나이 들면서 제정신은 뱉어버린 건가, 헛소리가 잦아지네.


당연한 얘기인지 모르지만 지금 내겐 우주가 없다. 우주의 신비함을 느낄 필요가 없이 지금 내 삶이 매우 신비롭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그저 이런 추억거리 정도의 매력적인 사치품이 되었다. 우주, 얼마나 매력적인가. '우주'라고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어야만 발음할 수 있는 점이 특히 귀엽다. 음소거를 한 채 입술 모양만 보자면 '쭈쭈'라고 하는지 '원츄'라고 하는지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다.




사무이 섬


우주여행을 꿈꾸기엔 너무 자라 버린 나는 우주 대신 태국의 사무이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주와 사무이 섬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진 모르겠다만, 내가 잘 모르는 세계라는 점은 같았다. 생각해보면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꼭 여행을 다녔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늘 궁금해했던 우주 속 세상을 이런 식으로 표출시키는 건 아니려나 싶다. 우주를 꿈꾸기엔 너무 늦었지만, 비행기 티켓은 언제든 예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필 사무이 섬이었던 이유는 푸른 바다를 보고 싶음이 전부였다. 한 달간 치앙마이에서 지내면서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바다를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바다를 보고 싶은 근질근질한 마음이 확신으로, 확신이 코 사무 이행 티켓을 사는 마우스 클릭으로 이어지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우주여행을 하는 법


코 사무이에서의 일상은 느리게 흘렀다. 치앙마이에서 지냈던 일상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확실히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휴양지가 주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시끌벅적함이 섬 전체에 활력을 솔솔 뿌렸다. 스쿠터를 빌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그토록 갈증 났던 푸른 바다를 눈 속으로 원 없이 들이켰고, 괜찮은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 두세 시간씩 들러붙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배가 고파지면 숙소로 다시 돌아왔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해가 저물어 있었다.


숙소에는 정말 커다란 수영장이 하나 있었는데, 어찌나 크고 깊은지 몸을 담그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였다. 조명을 전부 꺼둔 탓에 그 깊이까지 가늠할 수 없었다. 매일 밤, 일정이 끝나면 옹기종기 거실에 모인 숙소 사람들과 함께 술 한잔을 기울이다가 그 거대한 풀장으로 몸을 던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고막 끝까지 물이 들어찼고 진공상태가 되어 눈을 떠보면 너무나 넓고 광활한 어둠이 펼쳐져있었다. 물 위를 비추는 달빛을 조명 삼아 그 속을 유유히 헤엄쳤다. 나뭇잎 사이로 들리는 벌레소리가 풀장 전체를 메우며 물 위로 별 빛이 반사되어 빛났고 그 속을 정신없이 누비며 눈을 떠보니, 어느새 난 우주 속에 있었다. 어릴 적 과학상상화에서 그리던 우주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곳은 분명 우주였다. 우주를 꿈꾸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틀렸다. 이 우주는 불변하며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우주여행을 꿈꾸는데 나이 같은 건 아무렴 아무 상관이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별들과 함께 밤새 헤엄을 쳤다. 불변의 순간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풀장 바닥에 켜켜이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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