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스틴의 맛

누나와 함께했던 방콕 ; bangkok, 201

by S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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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스틴의 맛


처음 방문했던 방콕은 열대과일 같았다. 형광빛으로 잘 익은 핑크색 택시들이 거리에 가득했고 물감을 풀어다 칠해놓은 것 같은 녹색 식물들이 내 키의 세 배는 되는 높이로 여기저기 뻗어있었다. 거리는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로 북적였고 다양했고 밤이 되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음악들이 여기저기 사방으로 튀는 모양새가 꼭 개성이 넘치는 외모와 맛을 지닌 열대과일들 같았다.


열대과일 같은 나라의 열대과일 맛은 어땠을까? 리치와 람부탄, 망고 등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일들이 당시엔 별나라 과일처럼 보였다. 독특한 비주얼의 과일 사이를 비집고 유독 눈에 띄는 과일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망고스틴이었다. 생긴 건 꼭 마늘 같은데 맛은 뭐라 설명하기 송구스러울 정도의 풍미를 지닌, 알고 보니 과일의 여왕이라는 별명까지 가진 대단한 과일이었다. 여행을 함께했던 누나와 나는 매일 밤 숙소 앞 시장에 들러 한 봉지 가득 망고스틴을 사 와서 까먹고, 아침에 눈 떠서도 까먹고, 눈에 보일 때마다 까먹었다.


첫 방콕은 누나와 함께였다. 누나에겐 해외여행이 처음이었기에 여행 내내 내게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국은 나도 처음인 데다 날씨까지 더워 자꾸만 내게 의지하는 누나가 짜증이 나 화를 많이 냈다. 그러다가도 길거리 식당의 팟타이 한 접시와 시원한 창 비어 한 병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장난을 칠 수 있었다. 20년을 함께한 가족이지만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았다. 참 많은 대화를 나눴고, 많이 웃기도, 싸우기도 했다. 그때마다 생기는 빈틈은 맛있는 팟타이와 시원한 맥주, 100바트 하는 발 마사지 그리고 망고스틴이 열심히 메꿔주었다. 그래서인지 방콕은 그런 도시로 기억된다. 누나와 균열이 생겨도 팟 타이가 있으니까, 마사지가 있으니까, 망고스틴이 있으니까 괜찮은 도시.


얼마 전에 옛 앨범을 뒤져보다 누나와 함께 했던 방콕 여행 사진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단순히 사진 속의 남매가 너무 앳되어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고, 뭐랄까. 그 망고스틴의 맛이 생각나서 그랬던 것 같다. 6년이 지난 지금 누나는 결혼을 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살고 있다. 그렇기에 어릴 적 보다 나누던 대화도 훨씬 줄어들었고 얼굴 또한 한 달에 몇 번 드문드문 보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시간의 흐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젠 그때 방콕에서처럼 내게 의지하던 누나도, 그에 툴툴대며 짜증을 내는 나도, 그러다가도 망고스틴 한 입에 '맛있다'를 연발하며 다시없던 일이 되어버리던 그때도 없다. 누군가가 싫어서 하는 이별이라면 마음껏 미워라도 할 수 있지, 이런 식의 이별은 가슴이 많이 아프다. 시간이 흘렀기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이별, 우리는 그것에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여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려는지 모른다. 그 망고스틴의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직도 밤새 까먹던 망고스틴의 향이 손톱 끝까지 진하게 물들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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