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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Oct 12. 2020

개구리 뒷다리는 무슨 맛일까

본 아페티 니콜라 레스토랑

 혼자 산 지 오래된 니콜라는 집에서 밥 해 먹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았다. 부엌의 각종 레토르트 식품들과 여기저기 나뒹구는 향신료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8일 동안 니콜라는 거의 매일 저녁식사를 차려줬다. 과분한 식사 대접이 황송하여 그와 함께 했던 저녁식사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이름 하여 ‘본 아페티 니콜라 레스토랑’. 본 아페티(bon appétit)는 불어로 ‘맛있게 드세요’라는 뜻이다. 그중 기억에 남았던 메뉴들을 소개한다.


 

 1. 영혼의 까르보나라


 둘째 날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다. 잠깐 기다리라던 니콜라는 부엌에서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 내놓았다. 뜨끈한 크림소스가 흥건한 까르보나라였다.

 오목한 접시 안 담겨 나온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나는 크림소스. 크게 한 스푼을 퍼 올려 입 안 가득 삼킨다. 갓 끓인 뜨겁고 짭짤한 크림 스프가 식도를 타고 몸 안 깊숙이 타고 흘러 들어온다.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데우고 동시에 약간 붉어진 두 볼. 나도 모르게 행복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여행을 떠난 이후 한 번도 식사다운 식사를 한 적이 없다.

 놓친 비행기의 충격 때문에 모든 것이 돈처럼 느껴졌다. 커서를 갖다 대면 정보가 뜨는 RPG 게임처럼 음식 위로 가격표가 떠다녔다.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마트에서 떨이하는 음식을 대충 때려 넣거나 한국에서 싸온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때웠던 것 같다.

 파리에서도 마찬가지. 외식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가장 저렴한 바게트(종이맛이 난다)에 크림치즈 대충 슥슥 발라 배고플 때마다 입 안에 쑤셔 넣는 게 전부였다. 뜨거운 음식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이 모든 서러움이 크림 스프 한 스푼에 모두 녹아내렸다.


 지친 영혼을 달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 일수도 있겠다. 위태로운 여행을 이어가며 비어버린 나의 영혼을 따스하게 적셔준 건 정성스런 이 한그릇이면 충분했으니.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맛 본 오로지 나를 위한 까르보나라, 온기에 굶주렸던 나의 배와 영혼을 두둑하게 채워준 소중하고 따뜻한 저녁 식사였다.



2. 프랑스 음식 코스


 니콜라가 물었다.

 “프랑스에 오면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뭐야?”

 글쎄. 사실 이 여행에서 먹고 싶은 걸 먹겠다는 계획은 자동으로 삭제된 지 오래다. 그저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면 만족한다. 하지만 이런 대답이 어쩐지 성의 없이 느껴져 내가 알고 있는 프랑스 음식들을 나열했다.

 “음... 라따뚜이, 푸아그라, 달팽이 요리...”

 니콜라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내가 내일 프랑스 음식 코스로 만들어줄게.”

 “정말요? 코스로?”

 “푸아그라, 에스까르고(달팽이 요리), 르프로그(개구리 뒷다리 요리)! 안 먹어봤지? 기대해!”

 갑자기 ‘본 아페티 니콜라 레스토랑’의 풀코스 예약이 잡혀버렸다.


2-1. 애피타이저 – 푸아그라 (거위 간 요리)


 지난밤 말했던 메뉴들은 진짜 먹고 싶은 음식이라기 보단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는 프랑스 음식들이었다. 거위 간, 달팽이, 개구리 뒷다리 같은 음식을 먹는 경험은 흔치 않으니 말이다. 니콜라가 기다렸다는 듯 나의 대답을 덥석 물어버렸고, 나 또한 호기심 반, 감사한 마음 반으로 코스 요리 초대에 응했다.


 첫 번째 요리는 푸아그라다. 상상 속의 푸아그라는 스테이크 같은 그릴 요리였는데, 눈앞엔 웬 네모난 캔이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통조림 참치와 비슷한 모양의 스프레드 크림이 한가득 이었다.

 니콜라가 먼저 스푼으로 푸아그라를 퍼 올려 갓 구운 토스트 위에 반듯이 발랐다. 그리곤 입 속으로 쏙. 맛이 어떠냐는 신호를 보내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니콜라. 나도 어서 먹어보라고 스푼을 건넨다.

 니콜라의 시범대로 갓 구운 따끈한 토스트 위에 푸아그라를 골고루 펴 발라준 뒤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한 토스트와 푸아그라의 깊은 맛이 조화롭게 섞여 부드럽게 넘어갔다.

 “너무 맛있는데요?”

 이런 맛에 호기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거 아닐까. 낯선 시도는 늘 두렵다. 그만큼 성공하면 더 기쁘다. 취향이란 그런 식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 같다. 푸아그라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나의 세계 또한 조금은 확장된 것 같았다.

 한 입 뒤에는 쉬지 않고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푸아그라 한 캔이면 식빵 한 봉지는 금방 클리어 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식빵 한 봉지가 다 비어 버렸다. 이러다가 메인 음식은 먹을 수 있을까?

 
 

2-2. 메인 – 에스까르고 (달팽이 요리)


 식빵 한 봉지가 바닥날 때 즈음, 니콜라는 부엌으로 가 다음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뭐 도와줄 거 없어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니콜라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그 남은 빵 마저 다 먹어~”

 얌전히 앉아서 먹는 게 도와주는 일 일수도 있겠다 싶어서 가만히 앉아 남은 푸아그라 토스트를 클리어 했다.


 잠시 후 두 번째 요리, 에스까르고가 나왔다.

 예상했던 모습과 달리 점잖은 비주얼이다. 달팽이를 식용으로 접하는 건 처음이지만 ‘요리’된 달팽이가 어쩐지 낯설지 않다. 도리어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기름에 달달 볶은 달팽이껍질 위로 윤기가 자르르. 그 위에 흩뿌려진 바질페스토와 붉은 고춧가루. 비주얼은 일단 합격이다.

 작은 포크를 가지고 온 니콜라는 달팽이 껍질 안에 포크를 찔러 넣어 살을 빼낸 뒤 입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그가 먹는 방법을 눈치껏 따라하며 달팽이 하나를 입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쫀득쫀득한 식감 사이로 간이 밴 육즙이 새어 나왔다. 입 안 가득 기름칠을 두른 달팽이 살은 목구멍 속으로 꿀떡 넘어갔다.

 ‘이것도 생각보다 맛있네...?’

 어디선가 먹어본 듯 굉장히 익숙한 맛이 났다.

 골뱅이다. 이건 골뱅이 맛이야. 달팽이라는 생소한 식재료만 떠올리지 않는다면 골뱅이라고 믿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흡사한 맛이었다. 골뱅이에 바질페스토를 뿌려 먹어볼 생각은 안 해봤으니 정확한 비교는 어렵겠다만.

 에스까르고 역시 처음 먹어보는 낯선 음식이었지만, 별 거부감 없이 깨끗하게 접시를 비웠다. 니콜라는 ‘못 참겠다’며 레드 와인 한 병을 가지고 왔다.

 “와인이랑 궁합이 짱이거든.”

 레드 와인 한 잔에 에스까르고 한 입. 오늘 나의 세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작정인가.


 

2-3. 디저트 - 르프로그 (개구리 뒷다리 요리)


 와인 한 잔에 한껏 취기가 올랐다. 니콜라는 마지막 요리를 준비하겠다고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나도 이렇게 먹고만 있을 순 없어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도마 위에 초록색 껍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정체는 개구리 피부 껍질, 뒷다리를 손질하고 남은 그 잔해였다. 그 옆에는 누가 봐도 개구리 뒷다리 모양의 초록 껍질을 벗겨낸 허여멀건한 다리들이 쌓여있다. 내가 당황하자 니콜라는 껄껄 웃으며 내 눈앞에 개구리 뒷다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덕분에 다시 식탁에 앉아 기다릴 명분이 생겼다.


 와인을 홀짝 거리며 진정하기도 잠시, 완성된 개구리 요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르프로그. 개구리 뒷다리 요리로 비주얼 한번 인상적이다. 분명 전분 위에서 한번 구르고 기름 두른 팬 위에서 태닝까지 마치고 왔을 텐데 누가 봐도 개구리 뒷다리 모양이다. 앞서 맛 본 메뉴들은 양반이었구나. 상당한 도전 정신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눈을 감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어라. 의외로 참 맛있다. 눈을 감고 먹으니까 닭고기 같기도 하고, 아니, 오히려 닭고기보다 더 쫀득쫀득하고 감칠맛이 더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씹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개구리들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일은 막을 수가 없다.

 서너 개쯤 먹었을까, 배에서 이제 그만 좀 먹으라는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식빵 한 봉지, 푸아그라, 그리고 달팽이 한 접시까지 비웠으니 뱃속에 동물 농장 한 채가 지어져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니콜라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으니 이것까지는 전부 다 먹기로 한다. 머릿속에 뛰어다니는 개구리들과 함께 마지막 하나 남은 뒷다리까지 깨끗하게 발라먹었다.

 “아, 배불러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다.”

 “나도.”

 이 와중에도 남은 와인을 핑계로 치즈 안주까지 내 뱃속으로 잘만 들어갔다.

 푸아그라, 에스까르고, 르프로그. 이날 먹은 낯선 음식들은 비단 나의 세계뿐만이 아닌, 지구상에 내가 차지하는 면적을 확장하는 데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으리.


 

3. 라클렛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밤, 니콜라가 물었다.

 “치즈 좋아해?”

 “완전!”

 “그럼 오늘 저녁은 라클렛 먹자.”

 라클렛, 치즈를 녹여 감자, 햄, 피클 등과 함께 먹는 스위스의 전통음식이다. 처음에는 그 이름이 어려워서 몇 차례나 되물었다. 니콜라는 발음을 어려워하는 나를 위해 종이 위에 스펠링을 적어주었다.

 ‘Raclette’

 스펠링을 보고도 불어의 R발음이 너무 어려워 잘 따라하지 못했다. ‘R’발음이 가래 끓을 때 내는 소리 같아 웃기다고 계속 웃음만 터졌다. 결국 ‘흐헉’ 하는 소리만 반복하다 포기를 선언했다.


 니콜라는 라클렛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들을 가지고 와 식탁 위에 펼쳤다.  라클렛은 전용 도구가 필요한 요리다. 라클렛 전용 팬, 그릴, 각종 치즈, 햄, 빵... 처음 보는 생소한 도구들을 신기해하자 니콜라가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해줬다.

 손잡이가 달린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네모난 팬이 라클렛의 주인공이다. 이 위에 먹고 싶은 재료들과 치즈를 올려 라클렛 기계 안에 집어넣고 20-30초쯤 기다린다. 잠시 후 치즈가 녹으며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고소한 향이 올라온다. 완성이다. 팬을 꺼내 재료와 치즈를 잘 휘저어 후후 불어 먹으면 끝.

 먹는 것에 있어선 학습이 참 빠른 나. 몇 번 과정을 반복해보곤 23년간 라클렛을 주식으로 먹어본 사람처럼 신속하고 빠르게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짭짤한 햄과 고소한 감자를 포근하게 감싼 따뜻한 치즈 이불, 입 안에서 고루 섞이며 황홀하게 춤을 춘다. 이름부터 모양까지 모든게 유럽다운(?) 라클렛. 그 감성을 느끼는데도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고마워요, 니콜라. 유럽에 와서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어요.”

 니콜라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화답했다. 내일이면 이 미소도 더 이상 보지 못하겠지.

 니콜라는 어떤 마음으로 낯선 이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일까.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따뜻한 마음들이 존재하나 보다. 그 마음이 바람 같으면 좋겠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 떠다니다 언젠가는 내 마음에도 정착하는 날이 올 테니. 니콜라의 따뜻한 음식들이 나를 데워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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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 shun-y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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