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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Sep 28. 2020

여행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계속 걸어보기로 했다

 ‘저 지금 집 앞인데 언제쯤 오세요?’


 파리는 두 번째 도시다. 그렇지 않아도 런던이 슬슬 지겨워졌는데 파리에 갈 수 있어 기뻤다. 지겨워지거나 싫어지면 떠나면 그만인 것이 여행이다. 이리도 단순한 형태로 지속이 가능하다니, 당장 나의 일상에도 주문하고픈 태도란 생각이 들었다.


 파리에서도 역시 카우치 서핑이다.

 런던을 떠나기 4일 전부터 파리 거주자들에게 급하게 신청 메시지를 보냈다. 그 결과, 딱 한 사람에게 파리 일정인 8박 9일을 모두 재워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니콜라는 그렇게 나의 세 번째 카우치 서핑 호스트가 되었다.


 니콜라가 사는 곳은 파리 중심부에서 떨어진 외곽 지역이었다.

 새로운 도시에 왔다는 긴장감을 안고 그가 사는 곳을 찾았다. 덜덜 거리는 소리를 내며 울퉁불퉁한 파리 길바닥에 끌려 다니는 커다란 파란색 캐리어와 함께.

 이윽고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제대로 왔나 싶어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그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한 오 분쯤 기다렸을까. 그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나 수영 갔다가 집에 가는 중! 5분 안에 도착해!’

 잠시 후 젖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누군가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니콜라였다. 30대라는 게 믿기지 않는 외모였지만, 푸근한 미소가 나쁘지 않은 첫인상이었다.


 니콜라의 집은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각종 잡동사니와 먼지들이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증명하려는 듯 바닥 위로 나뒹굴고 있었다. 신라면, 참치 캔, 양반김 등 적지 않은 한국 식품들도 눈에 띄었다. 한국 음식들이 어째서 여기 있냐 물으니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군다나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어 수업도 듣고 계신다고. 와우. 그가 나를 초대한 목적이 뚜렷해지면서 잔뜩 곤두세웠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니콜라는 한국을 좋아해서, 내가 한국인이어서 초대해줬구나! 파리에선 레슬링을 할 일이 없겠구나!

 대충 짐을 풀고 우리는 식탁 앞에 앉았다. 니콜라는 이면지를 내밀며 그 위에 내 이름을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내 이름은 수훈. 영문으론 soo hoon으로 표기하나,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힘든 이름이란 것을 알고 나서부턴 그냥 슌(shun)이라 불러달라고 했었다. 니콜라에겐 그냥 soo hoon이라 적어 건네줬다. 아니나 다를까, '수흐', '스홍' 등 그의 입에서 재미난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한참을 웃다 다시 이름을 알려주었다.

 “에스, 에이치, 유, 엔. 슌이라고 불러주세요.”

 슌, 두세번 내 이름을 되뇌던 그는 이번엔 자기 차례라며 종이 위에 자기 이름을 적어주었다.

 ‘니코ㄹ라’

 삐뚤빼뚤 서툰 한글로 적힌 그의 이름 '니코ㄹ라'. 지난달부터 시작한 한국어 수업의 첫 수확이라 했다. 투박한 손으로 꾹꾹 눌러쓴 서툰 한글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툰 모양은 가끔 그 진심을 더 진심답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못생긴 글자 위로 새어 나온 한국을 향한 그의 순수한 호기심에 미소가 지어졌다. '니코ㄹ라'를 '니콜라'로 바르게 고쳐주는 대신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잘 부탁드려요. 니콜라!”



 밖에 나가기 위해 간단히 짐을 꾸렸다. 유럽에 온 지 일주일이 넘어가니 외출용 짐을 챙기는 데도 익숙해졌다. 어깨엔 작은 배낭을, 허리춤엔 국방색 힙색을 메고 다닌다. 배낭 안에는 크기가 크고 자주 꺼내지 않는 물건들, 이를테면 일기장이나 필기구, 초콜릿 등을, 힙색에는 비교적 자주 꺼내야 하는 지갑과 디지털카메라 등을 넣어둔다. 왼쪽 팔목엔 시계를 찬다. 파리에 온 기념으로 프랑스 국기 스트랩으로 갈아 끼워줬다. 한 손에는 500미리 생수 한 병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을 챙겨준다. 그럼 외출 준비 끝.

 어디선가 그런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여행자 티가 많이 나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말인 즉슨 최대한 현지인처럼 입고 다니라는 이야긴데, 여행 짐을 싸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가방을 비운다 해도 ‘나 여행자요’하는 행색을 지우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현지인처럼 입으라’는 정보를 이렇게 정정하고 싶다.

 ‘어차피 현지인 아닌 거 다 아니까 여행자답게 여행 하자!’

 여행자다움. 낯선 세상을 향한 호기심 가득 찬 눈빛, 탐험하는 열린 마음, 그 안에서도 합리적인 의심과 적당히 경계하는 자세를 뜻한다. 이런 태도의 여행이라면 어떤 행색을 하든 원하는 것을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움츠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그렇다고 도전이란 허울 좋은 타이틀만 믿고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슨 일이든 균형이 중요하다. 아, 마지막으로 짐을 꾸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처음 만나는 이 도시, 파리는 어떤 곳일까 하는 설렘 또한 잊지 말고 챙길 것!


 

 파리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에펠탑이었다.

 ‘파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랜드 마크 에펠탑은 기대와 달리 너무 초라했다.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집시들이 튀어나와 파리 떼처럼 달라붙었다. 날씨는 또 왜 이렇게 변덕이 심한지. 날씨 좋지 않기로 유명한 런던보다 더한 것 같았다. 간혹 소나기가 쏟아지다가 맑아졌던 런던 날씨는 엉엉 울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빵긋 웃는 아기 같았는데, 파리는 반쯤 미친 아기 같은 날씨였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타이밍에 비가 내리는가 하면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해가 나오질 않나, 마치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았달까. 누가 파리를 낭만의 도시라고 불렀던가. 여행 직전 마지막으로 본 영화도 하필이면 우디 앨런의 ‘미드 나잇 인 파리’다. 기대했던 영화 속의 파리와 눈앞의 현실의 간극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그래서 그냥 걸었다. 에펠탑이 실망스러워도, 미친 아기 같은 날씨가 내 주변을 맴돌며 혼을 쏙 빼놓아도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걷는 것뿐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앉아 한참을 있어보기도, 기어코 끝까지 오른 몽마르트 언덕 위에서 잠시나마 파리의 전경을 누리기도 했다. 그 와중에 저 고급 레스토랑에선, 5성급 호텔에선, 럭셔리한 백화점에서 그들만의 여행이 즐기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오묘해졌다.

 그날 저녁에는 니콜라와 닌텐도 게임기로 마리오 카트를 했다. 멍청하게 생긴 내 캐릭터가 자꾸 도랑에 빠져 죽어버리는 바람에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게임이 되었지만 뭐가 그리 즐거운지 쉴 새 없이 웃어댔다. 게임을 하다 배가 고파지면 니콜라가 만들어준 간단한 음식을 먹고 다시 게임을 했다.


 그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나는 하루 종일 파리 시내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저녁엔 어김없이 니콜라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던 무료 영화 티켓으로  극장을 찾아 <위대한 개츠비>나 <더 콜>같은 영화들을 보는 날도 있었다. 틈틈이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 주었고, 어김없이 마리오 카트로 드라이브도 했다. 그렇게 니콜라와 나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점점 파리라는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도, 지저분한 지하철도, 미로처럼 얽혀있는 복잡한 골목들도 어느 순간부턴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어깨에 힘을 조금 풀고 시야에 닿는 모든 것들을 천천히 바라보기로 했다. 익숙해진 만큼 마음에도 여유 한 칸을 비워뒀다. 파리에 낭만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이곳이 품은 여유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여유는 여행하는 마음으로부터 찾아왔다. 변화 속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그럼에도 한 발자국 더 옮겨보는 것. 새로운 발자국 앞에 태어나서 가장 맛있게 먹은 파니니를, 따뜻한 친구 니콜라를, 간혹 찾아온 햇빛을 만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계속 걸어보기로 했다. 여행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 표현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만약 정말 여행이 인생과 닮은 것이라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여행하면 좋을까. 그 답은 어쩌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되어줄 수 있을 것도 같다.

 당장 가진 게 없는 여행자인 나는 ‘그럼에도 걸어보는 마음’으로 여행하고 있다. 돈이 없다고, 친구가 없다고, 우울하고 슬프다고 마냥 멈춰 있을 수는 없다. 걷다 보면 걷길 잘했구나 싶은 순간들이 오지 않을까.

 삶 뒤엔 수억 걸음의 발자국이 새겨져있다. 고로 걷는 것이 삶이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움직이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이유다.

 이 여행을 마칠 때 즈음, 나 역시 내가 새겨놓은 발자국에 감탄하고 싶다. 나의 살아있음에 감동하고 싶다. 간절히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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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 shun-y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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