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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Mar 16. 2021

600km, 내 인생 첫 히치하이킹 (2)

히치하이킹에 가장 필요한 그것, 스마일

 살면서 가장 길게 느껴지는 10분. 옷을 입고 있지만 팬티까지 벗겨진 듯한 벌거벗은 이 기분. 억지 미소를 유지하던 얼굴에는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직사광선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하얗던 내 살갗은 새빨갛게 익어갔다. 설렘과 떨림이 후회로 바뀌는 것은 머지않아 보였다. 이것이, 내가 히치하이킹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느낀 감상이다.


 어젯밤, 세계지도와 종이 박스를 들고 나타난 나탈리 부부는 히치하이킹으로 어떻게 니스까지 갈 수 있는지 알려주며 상세한 루트를 만들어줬다. 히치하이킹에도 준비가 필요했다. 충동적인 선택이라고 해서 그 과정까지 전부 충동적일 필요는 없다.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최대한 받아야 돈과 시간, 무엇보다 체력을 아껴 나중에 마주할 막막함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막연히 지나가는 차 잡아서 타면 되겠지란 안일한 나의 생각만으로 움직였었다간 유럽의 뙤약볕에 온 몸이 찐 감자가 될 뻔했다. 안시에서 니스까지는 대략 600km 되는 거리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 더 멀다. 첫 히치 하이킹으로 이 장거리를 선택한 나 자신이 애석하면서도, 차 하나 잡아타면 바로 니스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무모한(그리고 무식한) 나의 용기가 어처구니없었다. 우리는 꽤 늦은 시각까지 커다란 테이블 위에서 머리를 맞대고 박스 위에 도시명을 적으며 싸인 카드를 만들었다. 안시에서 그르노블까지, 그르노블에서 액상 프로방스까지, 액상 프로방스에서 깐느까지, 그리고 깐느에서 마지막 목적지인 니스까지. 잘 안 보이면 어쩌나 싶어 어찌나 크고 굵은 글씨로 꾹꾹 눌러 적었는지, 마지막 카드를 만들 즈음엔 마카의 잉크가 다 말라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안시에서 떠나는 날은 때마침 'father's day(아버지의 날)'였다. 때문에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한 나탈리 부부는 아침부터 매우 분주해 보였는데, 그 와중에 나를 챙겨야 한다면서 미안해해 되려 내가 너무 죄송했다. 그러나 파스칼 아저씨는 히치 하이킹을 처음 하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그 바쁜 와중에도 히치 포인트(히치 하이킹을 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 대부분 톨게이트 앞이나 휴게소 앞 등, 차가 설 수 있는 조건의 장소를 추천한다.) 앞까지 나를 직접 데려다줬다. 안시에서 고속도로로 빠져나가는 톨게이트 앞이었는데, 수많은 차가 빠져나가는 그곳에 나를 내려주고선 내 양쪽 어깨를 붙잡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슌, 명심해. 히치하이킹에서 필요한 건 딱 한 가지야."
 "그게 뭔데요?"
 "SMILE."

 '스마일'이라는 말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파스칼 아저씨.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그만 눈물이 터져 나올 뻔했다. 이들은 정말 천사인가? 낯선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친절할 수 있을까. 수많은 차들이 뿜어내는 엔진 소리와 매연, 그 사이에 떠오른 파스칼 아저씨의 깨끗한 미소는 오래도록 선명히 기억 속에 남을 것만 같았다. 이윽고 나탈리 아주머니와도 포옹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나탈리 부부는 정말 다음 일정이 급했는지, 차 문을 닫자마자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 남은 거라곤 커다란 파란 캐리어와, 양어깨에 짊어진 배낭, 그리고 멀쩡한 나의 팔, 다리뿐이었다.



 싸인 카드를 들고 파스칼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며 '스마일'한 지 10분쯤 지나자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억지로 미소를 지어본 적이 있었던가. 돈가스와 소시지를 팔 때도 이렇게 웃어본 적이 없단 말이다. 웃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처음 알았다. 하지만 파스칼 아저씨의 말대로, 이렇게라도 웃고 있지 않으면 지나가는 차들에게 내가 '무해한 사람'인지를 어찌 증명할 수 있겠는가. 낯선 사람을 자신의 차에 태워야 하는데, 험상궂은 비주얼보단 웃고 있는 편이 차를 잡는데 훨씬 좋은 선택일 것 같았다. 그럼에도 웃는 표정을 유지하는 일이란 쉽지만은 않았다. 한 십 분을 더 그러고 서 있었을까, 얼굴이 아파와서 잠시 온갖 이상한 표정으로 얼굴 근육을 풀어주던 중 내 앞으로 차 한 대가 섰다. 아니, 열심히 웃을 땐 하나도 서지 않더니 이게 무슨 일이람. 멈춰 선 차의 운전석에는 스포츠 헤어를 한 젊은 프랑스 청년이 앉아 있었다. 어디 가냐고 묻길래 어젯밤 만든 싸인 카드를 들이밀며 말했다.

 "그르노블!"

 안타깝게도 그의 목적지는 그르노블이 아니었다. 겨우 잡은 차를 놓치게 생겨 아쉬워하던 중, 그가 다시 말을 걸었다.

 "샹베리까지는 갈 수 있는데 거기까지 태워줄까? 그르노블 가는 길목이야."

 와우.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단 1km만이라도 니스와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은가! 나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오늘 안으로 니스에 도착하는 것뿐이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차에 올라탔다.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차 안에 타고 있다니. 가능할까 싶었던 히치하이킹에 성공하다니! 낯선 땅, 낯선 차, 낯선 사람, 낯선 대화. 모든 게 흥분의 연속이었다. 신이 나서 정말로 차가 잡힐지 몰랐다느니, 당신이 내 인생의 첫 히치 하이킹 드라이버라느니 아무 말이나 쏟아냈다. 별생각 없이 졸음을 쫓아내고자 태워준 것 같아 보였던 그는 가벼운 하품과 함께 '그랬냐'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이름은 조나스, 올해 27살로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파트타이머였다. 요즘은 한참 성수기라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바쁘게 일 하고 있다며 지금도 직장에 가던 길이라 설명했다. 길지 않은 대화 속에서 한 삼십 분을 달렸나, 이윽고 샹베리에 도착했다. 조나스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 실었던 파란 캐리어를 직접 내려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안시보다는 여기서 차가 더 잘 잡힐 거야. 굿럭!"

 그렇게 첫 번째 히치하이킹이 끝났다. 구글맵을 켜보니 니스까지 50km 더 가까워져 있었다.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니스에 가까워지는 거야. 배낭에 구겨 넣었던 '그르노블'이 적힌 사인카드를 다시 꺼내 들고 다시 '스마일'을 지어 보였다. 세상에. 이곳에서 차가 더 잘 잡힐 거라던 조나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인카드를 든 지 1분 만에 바로 다음 차가 잡힌 것이다.

  두 번째 드라이버는 젊은 엄마 앤 마리였다. 피겨 스케이터 딸의 경기를 보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직까지 흥분이 쉬이 가시지 않은 나는 히치 하이킹이 처음이라 너무 신기하다면서 프랑스인들은 전부 친절하고 사랑스럽다고 떠들어댔다. 그런 내가 보기 좋아 보였는지 아주머니는 내가 더 사랑스럽다며 화답했다. 기분이 좋아질 대로 좋아진 나는 '뭐라도 보답하고 싶은데 괜찮으면 노래 한곡 불러보겠다'며 용기 내어 노래를 불렀다. 차 안을 가득 채운 내 노래와 함께 텐션이 오른 앤 마리 아주머니는 앙코르를 외쳤고, 한 곡 더 부르며 히치하이킹의 흥분을 이어갔다. 낯부끄러웠지만 그 순간만큼은 청춘 영화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앤 마리 아주머니는 좋은 노래 들려줘서 고맙다며 자신이 원래 가려던 길에서 더 떨어진 곳(내가 차를 잡기 쉬운 장소)에 차를 세워줬다. 거듭 감사하단 인사를 전하자 아주머니는 나를 꼭 껴안아줬다. 따뜻한 온기가 남은 길의 연료가 되어줄 것 같았다. 그로써 니스는 60km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두 번째 차를 잡아타고 내린 그로노블에서 발롱스까지, 발롱스에서 액상 프로방스까지, 액상 프로방스에서 깐느까지, 각각 푸근한 인상의 델핀 아주머니, 과묵한 누레딘 아저씨, 화려한 타투를 온몸에 새긴 액셀 커플의 차를 타고 무사히 이동했다. 깐느에 도착했을 땐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깐느는 니스 바로 옆의 도시였다. 말인즉슨, 니스에 거의 다 왔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곳에서부턴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히치하이킹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다시는 없을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하루가 될 테니까.

 깐느에 도착해 마지막으로 'NICE'라고 적힌 싸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오늘 이 카드를 꺼낼 수 있을 줄이야. 지난밤 이 글씨를 함께 적어준 나탈리 부부가 떠오르며 왠지 뭉클했다. 감상에 젖어있기도 잠시, 싸인 카드를 들기가 무섭게 커다란 오토바이 한 대가 눈 앞에 멈춰 섰다. 까만 가죽 재킷에 곱슬 거리는 머리를 질끈 묶은 범상치 않은 비주얼의 그녀는 자신을 안나라고 소개했다. 안나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뒷 자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타!"

 나는 그 쿨한 에너지에 압도당해 커다란 캐리어를 오토바이에 열심히 끼여 넣고는 몸을 실었다. 달리는 도로 위, 안나를 꼭 붙잡은 채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그곳엔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어느새 정말 땅 끝까지 내려왔구나 싶었다.

 이윽고 니스에 도착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싶어 손을 내밀어 안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안나는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 두 개를 치켜세우며 말을 꺼냈다.

 "2유로!"

 응...? 이거... 유료 서비스였어...?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안나가 설명을 덧붙였다.

 "기름값은 받아야지."

 그녀 특유의 당당하고 쿨한 태도에 나는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주섬주섬 2유로를 꺼내 건넸다. 그녀는 어김 없이 '땡큐!'하고 짧고 굵은 인사를 건네곤 오토바이의 굉음과 함께 사라졌다. 2유로가 큰돈은 아니니 아깝진 않았지만, 이걸 히치하이킹으로 칠 수 있는 건가 싶은 찝찝함이 남았다. 뭐, 아무렴 어때. 무사히 니스에 도착했는 걸.

 짐을 챙겨 가까운 맥도날드로 가 감자튀김과 콜라 하나를 주문했다. 오늘의 첫끼였다. 하루 종일 긴장한 탓인지 배고픔도 잊고 있었다. 와이파이를 잡아 가장 먼저 나탈리 부부에게 잘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기다리고 계셨는지 곧바로 답장이 왔다. 안 그래도 걱정됐는데 잘 도착해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우린 혼자서도 잘 해낸 네가 참 자랑스럽다고.

 매장 창 밖엔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했는지 어느새 지평선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 물결처럼 일렁였다. 가슴 벅찬 감동이었을까, 혹은 새로 지펴진 용기였을까. 어느 쪽이 됐던 무언가는 확실히 변한 것 같았다. 아니,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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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 shun-y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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