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un Mar 08. 2021

600km, 내 인생 첫 히치하이킹 (1)

 안시에서의 두 번째 날. 그날도 첫째 날과 다름없이 새로운 친인척이 나탈리 집에 방문했다. 이름은 트릭스터와 엄버. 나탈리 부부의 조카 녀석들로 각각 10살, 6살의 귀여운 꼬마 신사 숙녀였다. 그리고 나는 또 엉겁결에 그들 주말 가족 행사에 참여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들과 함께 등산을 하고 있더라.)

 트릭스터는 외국인인 내가 낯설었는지 처음엔 이리저리 피해 다녔는데, 같이 놀다 보니 친해져 나중에는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엄버는 정말이지 걸리쉬한 꼬마 숙녀였다. 입고있는 옷이나 들고 다니는 아이템에는 블링블링한 핑크 공주님들로 범벅되어있었고 물 한 잔도 조그만 새끼손가락을 쫑긋 든 채 야무지게 마시는 그녀였다. 둘의 캐릭터가 어찌나 매력적이고 귀엽던지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참 즐거웠다. 처음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그렇다고 애들을 많이 다뤄본 경험 또한 없어 많이 답답했는데, 같이 지내다 보니 답답한 건 나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겐 말이 통하건 통하지 않건, 그런 건 별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스스럼없이 제안하며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 그들의 세계였다. 그 상대가 지구 반대편에서 온 다 큰 성인 외국인 여행자여도 말이다. 우리는 함께 산을 올랐고, 핫도그와 핫초코를 만들어 먹었고, 서로의 얼굴을 그려 선물해주기도 했다. 안시 호수에서는 그림 같은 풍경을 눈앞에 걸어둔 채 하염없이 헤엄치며 수영을 했던 것 같다. 낭만적인 경험이었다. 동시에 잠시나마 그들 가족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비록 하루뿐이었지만.

 누구나 꿈꾸는 예쁜 마당이 달린 집에서 새소리로 아침을 맞이하고 해가 지면 바비큐 파티와 함께 와인 한 잔을 기울이는 삶. 주말엔 가까운 호수와 산을 찾아 여유를 즐기는 삶. 영화에서만, 드라마에서만 보던 유럽 한 가정의 모습이 내 일상이 되어있었다. 가족 생각이 참 많이 났다. 가족들과 이렇게 다같이 놀러 갔던 게 언제였던가. 내가 트릭스터나 엄버만 할 때 뒷 산 계곡은 참 많이 다녔던 것 같은데.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나탈리 부부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사람들 같았다. 그 사실이 무진장 부럽기도 했고 동시에 나의 가족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던 안시에서의 이박 삼일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니스였다. 니스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바다가 있는 도시로, 프랑스인들이 바캉스 시즌에 많이 찾는 곳이다. 문제는 또 교통이었다. 안시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동안 다음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지 '아, 몰라. 될 대로 돼라.'라는 태도로 니스로 가는 교통을 알아보지 않았다. 아니, 사실 잠깐 알아보긴 했는데 기차표값만 10만 원이 넘어 바로 접어버렸다. 동시에 콜마르의 J누나로부터 피어난 근거 없는 용기 또한 한몫했다.

 '표가 없으면 걸어가면 되지. 지나가는 차 붙잡아서 타도 되고.'

 안시에서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밤. 커다란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나탈리 부부와 다음 여행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목적지인 니스까지는 어떻게 갈지 정했느냐고 묻는 나탈리 아주머니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해버렸다.

 "히치하이킹 하려고요!"

 이 계획은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콜마르에서 J누나를 만나고 난 뒤, 나는 어떤 형태로든 도전하는 여행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때마침 안시에서 니스까지는 예정된 교통편이 없었고, 이거야 말로 그 도전을 실천할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서웠다. 당시 내게 히치하이킹이란 여행 초고수들이나 할 수 있는 하이엔드급의 여행 방식이었다. 때문에 내가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겠다 선언해버리면 나탈리 부부가 걱정 섞인 표정으로 '오, 노우. 댓츠 댄저러스!'라고 반응하며 도움을 주길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나탈리 부부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다.

 "That's good idea! (아주 좋은 생각이야!)"

 예상 밖의 대답에 당황한 내 표정과 상관없이 아주머니는 말을 이어갔다.

 "프랑스는 히치하이킹 하기 아주 좋은 곳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파스칼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어디선가 앨범을 가지고 와 한마디 더 얹었다. 앨범 속엔 낯선 도시의 이름이 적힌 사인 카드를 들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젊은 나탈리 부부의 사진이 있었다.

 "우리도 히치하이킹으로 여행 많이 다녔어."

 이거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부부는 준비했다는 듯 어디선가 커다란 세계지도와 종이 상자, 그리고 검은색 마카를 가지고 나타났다. 파스칼 아저씨는 종이 상자의 글씨가 적혀있지 않은 깨끗한 부분을 오려내며 말했다.

 "사인카드부터 만들자."

 그리하여 시작됐다. 안시에서 니스까지 600km, 내 인생의 첫 히치하이킹이.



Shun's instagram

contact : shun-yoon@naver.com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프랑스 아빠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