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슌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un Jan 11. 2022

새해가 되어도 기쁘지 않았던 이유

기대도, 욕심도 없이 살아봤더니...

 2022년 새해가 밝은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매년 새해가 밝을 때마다 새로운 희망이나 결심 따위로 세상은 평소보다 조금 더 시끄러워진다. 나라고 다를 건 없었다. 연초를 맞이해 새로운 스케줄러와 펜을 구입하고 올해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적어내려 갔다. 버킷리스트를 이루고, 이루지 못하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희망 가득한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사실 언제부턴가 새해가 돼도 희망은 고사하고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여느 사람들처럼 새해 다짐을 하거나 버킷리스트도 작성하지 않게 되었다. 작년, 2021년 초쯤이 특히 그러했는데, 이유인즉슨 코로나가 도대체 언제까지 장기화될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방역 수칙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러니까 계획이란 게 무의미한 세상이었다. 미래를 기대해봤자 막상 닥친 미래에 돌아오는 건 기대만큼 부풀어진 실망뿐이었다. 그즈음 만화 한편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제목은 '기대하지 마세요'. 거창한 계획이나 버킷리스트 따위를 적어 내려 가도 돌아오는 건 부푼 실망뿐이니, 차라리 아무런 기대나 욕심 없이 나에게 닥친 오늘에 충실하며 살자는 내용이었다. 새해에 그렸던 그 마음은 2021년 한 해를 지배하는 타이틀이 되어버렸다. 2021년, 작년의 나는 완전히 욕심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2021년, 욕심부리지 않기로 마음먹고 나니 도리어 세상은 욕심 없는 나와 상충하는 기회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각종 기업에서 협업 제안이 꾸준히 물 밀듯이 들어왔고, 내가 평소에 즐겨보고, 또 좋아했던 유명한 크리에이터들과 엄청난 속도로 가까운 친구가 되기도 했다. 난생처음 벌어보는 액수가 통장에 찍혔고, 프리랜서를 시작하며 항상 안고 있던 대부분의 불안이나 걱정이 모두 해결되었다.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다. 욕심을 포기했기 때문에 이런 기회와 상황이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혹은 단순히 운대가 좋은 한해였던 것인가. 마치 온 세상의 좋은 기운이 나를 붙잡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욕심을 내! 더 욕심 내서 살란 말이야...!!!"

 결국 2021년 말 즈음이 되자, 나는 잊고 있던 욕심을 내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2022년을 시작하기 위한 스케줄러에 버킷리스트를 빽빽하게 채우게 된 것이다.


 일찌감치 욕심을 포기했던 이유는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왜, 게임을 시작할 때도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 싶으면 승부욕이 금세 꺼지지 않는가. 나 또한 그랬다. 내가 마주한 세상은 너무나도 거대해 보여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게임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승부욕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대학 시절, 학과 내에서 1등이 받을 수 있는 전액 장학금을 거의 모든 학기 내내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처음 한 번 받고 나니 1등을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이해하게 됐다. 마치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아차리듯이. 주위의 강력한 라이벌들은 내가 가진 정보와 승부욕으로 모두 제쳐냈다. 어떻게 해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 알고 나니, 학교는 나에게 그리 어려운 게임이 아니게 되었다.

 졸업을 하고 세상이란 전선에 뛰어들고 나니 이건 도무지 답을 모르겠는 게임이었다.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뭐가 맞고 틀린 건지, 세상 사람들의 너무나도 다양한 삶 속에서 내 것을 찾지 못했다. 결국 나는 일찌감치 종료 버튼을 눌렀던 것 같다. 학교와 달리 이건 도무지 승산이 없는 게임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가능성에 부쳐진 채 꺼져갔던 세상의 수많은 재능과 열정을 지켜보며, 어쩌면 너무 쉽게 포기했던 건 아닌가 싶은 나의 꿈들을 떠올려본다.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그 꿈들이 모두 이루어지리란 보장은 없지만, 결과가 아닌 과정만큼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감히 욕심부려볼 만한 한 해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만큼 온 세상의 좋은 기운이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 올해 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겁내지 않고 욕심부려보고 싶은 이유는, 내가 바라는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은 결과가 아닌 더 나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감히' 꿈꿔 봤던 모든 일에, '안 되는 이유'가 아닌, '되는 이유'를 좇아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과정으로 물드는 올해이길 바란다.




Shun's instagram

contact : official.shunyoon@gmail.co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