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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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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Mar 23. 2022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써야만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아무리 하찮은 기록이더라도 언젠가는 빵 쪼가리가 될 거라는 믿음 때문.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빵 쪼가리 있지 않은가. 길을 잃을까 봐 조금씩 떼어 바닥에 흩뿌리고 다녔던 그 빵 쪼가리.

 작년 말, 한 해를 정리하며 인스타그램, 브런치, 메모장, 다이어리 등에 간헐적으로 적어놨던 글들을 보게 되었었다. 내가 적은 글들은 꼭 빵 쪼가리 같았다. 1월부터 3월까지는 건강한 삶을 향한 열정으로 건강한 아침을 차려 먹으려는 노력이 유행했고, 여름에는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며 난생 처음 해보는 각종 경험으로 여행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날이 점점 추워지면서부터는 밀려드는 일에 치여 기록에 소홀해지고 있었고, 완전한 연말이 되어선 올해를 이렇게 끝낼 수 없다는 미련 뚝뚝 떨어지는 청승맞은 글이 가득했다.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선 글들을 마주하고 나니 흐린 안개 같던 작년 한 해가,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조금은 또렷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동시에 이를 힌트 삼아 원하는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이곳저곳에 흩뿌리고 다녔던 기록들이 빵 쪼가리였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뿌려놓은 빵 쪼가리들을 확인하고 나니 앞으로의 기록에 좀 더 성실해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빵 쪼가리를 촘촘하게 뿌려 놓을수록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올해가 되자마자 성실히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이다. 본 것, 느낀 것, 행한 것, 모두 디테일하게 적어놔야지만 내가 원하는 삶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올해는 이전보다는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생각했던 '글'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짐을 느낀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글이란 거창한 작품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아무런 감상이나 향기를 느낄 수 없는 것 또한 아니다. 이제 '글을 쓴다'라고 이야기할 때 내가 '글'이라고 여기는 조건은 단 하나다. 성의를 담아 솔직하게 쓴 글.

 그런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건 2016년, 군에 입대하면서부터다. 훈련소에서 하루하루 새롭게 닥치는 경험과 감상은 자꾸만 내게 무언가를 쏟아내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달리 쏟아낼 창구를 찾지 못했던 나는 펜과 노트만으로도 가능한 글 안에 쏟았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 누가 읽든 말든 상관없는 그런 글.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건 그게 시작이었다.

 이후 글쓰기가 취미가 되자 그때부턴 글을 수단으로 여겼던 것 같다.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도구 같은 것 말이다. 나의 첫 책 <그냥이 어때서>는 놀랍게도 입대 중 군대 내에서 기획을 해서 쓰인, 기획된 콘텐츠였다.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털어놓기 앞서 한 권의 책으로 엮였을 때를 염두하여 제목부터 콘셉트까지 모두 처음부터 다 짜 놓은 기획물이었던 셈이다. 운이 좋게 그 기획물이 출판사의 눈에 띄어 한 권의 책으로 나올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글을 온전한 글로써 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내가 그림으로 수입을 내듯, 수입 혹은 커리어를 만들어주는 제법 쓸만한 도구가 생겼다고 여겼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을 쓸 땐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다. 불특정 다수를 염두해 쓰인 글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족할만한 감상을 전달한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그만큼 솔직해질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지난 몇 년간은 내가 쓴 글들로 무언가를 만들어야한다는 부담과 압박을 갖고있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를 의식한 글들만 쓰게 되었던 것 같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글이라면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적으면 된다. 적당히 보여주고 싶은 글이라면 공개적인 곳에 써놓고 홍보하지 않으면 된다. 모두가 읽고 공감하길 바라는 글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 쓴 뒤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된다. 지속 가능한 글쓰기 습관을 만들고 싶어 스스로 터득한 글쓰기 프로세스다. 어디에, 어떻게 썼든 성의를 담아 솔직하게 썼다면 이 모든 게 글이다.


 이제 내게 글은 빵 쪼가리다.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힌트가 되어주는 빵 쪼가리 말이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써야만 하는 것, 그게 지금 내가 글을 대하는 태도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쓸만한 콘텐츠가 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을 것 같다. 빵 쪼가리로써의 역할로 충분할뿐더러 적어도 단 한 사람, 미래의 나는 내 글을 읽어줄 테니 말이다.

 요즘 내가 쓰는 글들은 미래의 내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글들이다. 인스타그램, 메모장, 일기장, 그리고 이곳 브런치에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적고 있다. 올해가 끝날 때 즈음엔 이 빵 쪼가리들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 또렷이 알게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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