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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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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Mar 02. 2022

스스로가 게으르다고 느껴진다면

독립 일기(3) 나와서 사니 부지런해질 수 밖에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한 지 3주째다. 아직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도 다 들이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간 몇몇 친한 친구들을 불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아침을 차려 먹거나 늦게까지 작업을 하는 등 제법 사람 사는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 이제야 평범한 일상을 꾸려 나가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데, 그 와중에도 무언가는 확실히 변했음을 느낀다.

 가장 큰 변화라면 아무래도 집안일이다. 본가에 있을 땐 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부모님이 큰 집안일을 맡아서 했다. 내가 사용한 컵이나 그릇쯤은 당연히 스스로 치워야 하는 것인데, 나중에 닦을 생각으로 싱크대에 담가놓고 나중에 보면 엄마가 이미 치워놓기 일쑤. 그래서인지 집안일이 딜레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딜레마랄까.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먹을 음식은 스스로 챙겨 먹는 게 당연한 일이거늘, 엄마는 내가 집에 있는 시간 에는 어떻게든 뭐 하나라도 더 챙겨 먹이려고 했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따로 사놨을 때는 거절을 해야했는데,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그때마다 거절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또다시 찾아오는 딜레마-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책임지지 못한다는-는 나의 무의식 속에 조금씩 부담으로 쌓여가고 있었다.


 독립을 하고 나니 적어도  부담으로부터는 완전히 해방된 기분이다. 음식을 차려 먹는 , 사용한 컵과 그릇을 설거지하는 , 입은 옷을 빨래하는 , 바닥에 쌓인 먼지를 청소하는 , 선물 받은 식물에 물을 주는 것까지 하나부터 , 모든 게 나의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밤에는 일을 마치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는 주문해뒀던 택배 상자들이 쌓여있었다. 택배 박스를 모두 뜯어 주문한 물건만 꺼내놓은 뒤,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분리해 쓰레기장에 버리고 왔다. 빨래통에 빨래가 제법 쌓여있어 어두운 색의 옷들만 골라내어 세탁기에 넣고 돌린 뒤 아침으로 먹고 나갔던 요구르트 그릇과 식기구를 설거지했다.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먼지가 쌓인 공간에 가볍게 청소기를 돌렸고 가습기의 수조를 꺼내 닦은 후 물을 채워 다시 가동시켰다. 빨래가 끝나기까지 20분 정도 남아있는 것을 확인 한 뒤 온수로 샤워를 하고 나오자 세탁기의 세탁 완료 벨이 울렸다. 다 된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는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고 나니 그날 해야 할 모든 집안일이 끝나 있었다.

 마치 퇴근 후 루틴 같은 이 일련의 과정을 3주째, 거의 매일 하고 있다. 매일 밤 이 과정을 해 나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귀찮니?'

 '아니, 전혀.'

 체질이었다. 혼자 사는 거.


 몇 해 전 대학 시절,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간 기숙사며 친구 자취방이며 다른 사람들과 동거는 많이 해봤지만, 정말 제대로 혼자가 되어 사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뒤늦은 밤 돌아와 밀린 집안일을 했던 나날들. 당시의 나는 '이게 귀찮냐'는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했다.

 '아니, 전혀.'

 마땅히 책임져야 할 내 한 몸 책임진다는 주인 의식, 그때 내가 깨달은 건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커다란 성취감이었다.


 결국 책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가에 있는 동안은 스스로가 게으른 사람이라 느꼈던 적이 많다.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라곤 침대 위에 누워버리기. 그 상태로 핸드폰을 한번 보기 시작하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무기력에 빠져 유튜브 알고리즘 파도에 휩쓸려 다녔다. 집이야 내가 가만히 있어도 부모님이 쓸고 닦으니 깨끗하게 유지가 되는 곳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만히 있어도 다 알아서 되는 곳이니 편하게 생각할 만도 한데, 이상하게 내 마음은 늘 편치만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공간이 완전한 나의 공간이라는 주인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새로 독립한 이 공간은-월세든 전세든, 그런 개념을 다 떠나-어찌 됐든 나만의 공간이다. 내 공간이라는 주인 의식이 생기니 자연히 그냥 가만히 둘 수 없다. 가만히 두면 때가 타고, 먼지가 쌓이고, 곰팡이가 쓸 테니까. 더 귀찮아지기 전에, 더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에 쓸고 닦는다. 내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내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알아서 다 됐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30년 좀 넘게 살아보니 알아서 다 된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나태하게, 그리고 동시에 재미없게 만드는지 깨닫는다. 사람은 움직일수록 생명력이 더해지는 생명체다. 무겁게만 생각했던 책임이란 감정도 막상 나 스스로에게 대입하고 나면 그리 어렵지만도 않다. 아니, 오히려 삶에 활력이 생기고 더 재밌어진다.

 지금 스스로가 게으르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어제 오늘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길 추천한다. 어쩌면 게으른 게 아니라, 책임져야 할 무언가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책임져야 할 무언가를 만들고 나면 마땅히 부지런해진다. 가만히 뒀다간 때가 타고, 먼지가 쌓이고, 곰팡이가 쓸 테니까.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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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ct :  official.shun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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