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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Jun 15. 2016

에어비앤비로 여행하기 <자다르>

에어비앤비X배낭여행 콜라보


물을 좋아한다. 이름에 물가'수'자가 들어가서일까. 난 어려서부터 물과 친했다. 어렸을때 잠깐 수영을 배웠었는데 금방 동작들을 몸에 익혔었다. 수영을 안한지 십년이 넘은 지금도 수영장이나 바다에 들어가면 몸이 동작들을 기억하고 있다. 사실 어렸을 적 수영을 배운 기억이 선명하진 않아서 얼마전까지 난 누구나 물에 뜰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누구나 물에 뜨진 않는다고 알려줘서  내가 수영을 할 수 있는건 어렸을 때 물과 함께했던 경험덕이란 걸 알게되었었다.

경포대, 해운대 해수욕장, 광안리, 군산 앞바다, 스플리트, 니스, 나폴리, 포지타노, 소렌토, 베니스, 자다르, 카프리, 코토르, 두브로브니크등 다닌 여행지만 봐도 내가 얼마나 푸른 바다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바다 뿐만이 아니라 안시, 쾨니히, 할슈타트, 블레드등 호수도 참 많이 다녔다. 그래, 난 참 물을 좋아한다.


그런의미에서 자다르는 특별했다. 내가 사랑하는 물, 바다가있는 곳이었으니까. 여행중에 바다와 하늘, 태양과 달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몸은 지구 반대편 멀리 떠나왔지만 마음만은 하늘, 바다, 태양, 달과 함께 내 고향의 안식처와 어딘가 이어져 있는것만 같다. 내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지평선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내가 살고있는 나라의 바다 어딘가와 이어져있을 것이고, 내가 보는 하늘과 태양, 달도 지구 반대편의 내 고향에서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테니까. 내 본래의 모습을 잊은채 여행에 푹 빠져있을 때 즈음 바다를 만나면 저 지평선 끝 여행을 떠나기 전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나라는 우주안에 서 지구는 자전하며 하늘과 바다 해와 달 은 다른 곳에서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가끔은 그게 과거의 내 모습이기도, 미래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여행 도중 만나는 바다들은 항상 내 머릿속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고 여러가지 생각이 퍼지게 만들었다.

자다르의 푸른 바다끝 주홍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보며 내 미래에 대해 생각을 했다. 내 고향과 자다르의 바다가 이어져 있듯이 미래의 내 모습도 마치 보이지 않는 물의 흐름으로 연결되어있는것만 같았다. 청춘의 미래는 거창했다. 누구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니까. 그러나 동시에 불안했다. 가진거라곤 젊음 뿐이니까. 그래도 지구 반대편에도 하늘과 바다 해와 달이 있는 것처럼 미래의 내 모습도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고 있으리.


자다르에서 역시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이제는 카우치서핑보다 에어비앤비를 훨씬 많이 이용하게 된다. 아무래도 보장되지 않은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답장에 불안함을 느끼며 초조해하는데 지친 것 같다. 그것도 그렇고 여름방학 초성수기라 호스트들이 다 여행떠났는지 호스트들이 프로필을 다 닫아놨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나는 에어비앤비쪽으로....


플리트비체에서 자다르로 가는 길은 꽤 험난했다. 버스를 어디서타는지 몰라서 헤매다 돌고 돌아 겨우 버스정류장을 찾았는데, 버스를 타자마자 신경질나게 생긴 여자승무원이 '닥치고 내 말 들어'하는 포스로

"YOU MUST PUT THE BAG IN HERE!!!(네 그 짐 짐칸에다 꼭 실어야돼!!!)"

이러는거 아닌가... 아니 어찌나 눈을 부라리던지 내가 무슨 큰 잘못한 줄 알았다. 알고보니 크로아티아는 버스비 외에 짐값을 따로 받고 짐칸에 버스를 싣는데 내가 짐을 들고 버스타려고 하니까 저러는거였다. 아무리 몰려드는 관광객에 피곤하다지만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아침먹다 엄마랑 싸우고 출근했나. 관광지로 유명해진 곳들은-특히 요즘 막 뜨고있는 곳들은-이처럼 사람들이 바들바들떨며 살아간다. 아니, 여행온 사람이 모를수도 있지 예쁘게 말하면 좀 어때! 짐값을 내고 짐을 부치고 버스를 탄 한동안도 그 승무원 때문에 열이 났다.

몇 시간이 지났나,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릴때 즈음, 창밖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다르에 도착한 것이다. 전에 보았던 크로아티아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이색적인 풍경에 넋이 나가 버스신경질녀는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버스 차창 밖에 펼쳐지던 자다르의 풍경

버스는 자다르역에 예상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오줌이 급하셨나... 속도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일찍도착해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전화를 했더니 직접 버스역까지 픽업을 나와주신다 했다. 말 잘듣는 배낭여행객은 거절하지 않는다.

자다르 버스역

이윽고 아저씨가 도착했고, 반갑게 인사하고, 3일간 머물 숙소로 향했다. 아저씨는 집으로 데려가며 자다르 자랑에 여념이 없다. 자다르의 선셋을 아냐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모습에서 이 도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지 느껴졌다. 나의 도시 서울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그밖에 나에대해 그리고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셨다. 한국에 대한 질문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북한과 한국의 관계. 북한과 한국이 같은 곳인줄 아는 사람도 많다. 그런 질문이 나올때마다 사실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북한 문제에 관심이 없기보다도, 질문의 목적이 없고 대부분 한국에 대해 아는게 북한밖에 없으니 하는 질문이 대부분이라... 뭐 그럴만도 하지. 세계뉴스에 단골로 출연하는건 한국이 아닌 북한이니.

그나저나 차를타고 꽤 갔는데도 집이 안나온다. 왜 픽업을 나오셨는지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생각보다 숙소가 시내에서 꽤 거리가 있다.

숙소로 향하는 길
숙소로 향하는 길

자다르의 올드타운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였지만, 관광지에서 조금 거리가 있다보니 오히려 조용해서 편히 쉬다가기 딱 좋다. 여태 히치하이킹하며 가난하게 여행하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선지 자다르에선 좀 휴식을 취하다 가자 마음 먹었기 때문에. 딱 좋다, 딱 좋아.

에어비앤비 호스트 아저씨가 내어준 방은 프라이빗 룸. 개인 방이긴 한데, 바로 옆 방에 또 다른 손님도 와있다. 부엌과 욕실은 그 손님들과 같이 사용하고, 주인 호스트 부부는 2층을 사용하시는 듯 했다.

짐을 풀고 옷 갈아입고 바로 그 유명한 자다르의 바다오르간과 석양을 보러 나갔다.

올드타운으로 들어가는 입구
살짝 보이는 석양에 가슴이 설렌다
자다르의 석양
해 지는게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불러모으나

자다르의 석양은 기대한만큼 아름다웠다. 눈에 걸리는 건물하나 없이 뻥 뚫린 넓디넓은 하늘에 물감을 뿌리듯 실시간으로 변해가는 하늘의 모습은 꽤 감동적이었다.
도대체 해 지는게 뭐라고 이렇게 감동을 주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걸까. 우리가 아침에 눈뜨고 밥먹고 잠자고 하는 것같이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인데, 사람들은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감동을 받는다.
세상만사 다 마찬가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의 의미없는 스킨십에도 온갖 소설을 써가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시험을 보다가 연필이라도 떨어뜨리면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거기에 또 쓸데없는 의미를 담는다. 그 뿐만인가. 자연스레 피어난 꽃들에게 '꽃말'을 붙여가며 의미를 부여하고, 아티스트가 점 하나 찍어 그려낸 작품에도 의미를 담아 수많은 해석들을 쏟아낸다. 인간이란 존재도 태어나자마자 의미를 담아 이름을 붙여준다. '그냥' 태어난게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기에, 이름으로 의미를 담는것이다.

결국 인생도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왜 태어나는지, 왜 죽는지 모르기에 종교를 만들고, 기도를 드리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의미를 찾기위해. 내가 이 곳에 존재함은 분명 이유가 있을거란 희망을 갖고싶기에. 자다르바다에 해가 뜨고 지는것처럼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데엔 아무런 이유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린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의미는 곧 희망이 되니깐.

결국 내가 여행을 다니는 것도 의미를 찾기위함이 아닐까. 이 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시선에선 매일 뜨고 지는 해는 그냥 일상일 뿐이다. 여행자들은 거기에 의미를 담음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찾는거다. 의미는 곧 희망이 된다. 난 아직 쓸모있다고, 세상에 태어난데에는 이유가 있을거란 희망을 갖고싶은거다. 그렇게 보니 삶의 의미를 찾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은 인간이란 동물이 향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위안이자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태양의 인사 (The Greeting to the Sun)
낮에 받은 태양열로 밤에 빛난다
이 빛에 '인사'라는 의미를 담았다

석양을 볼 수 있는 뷰 포인트 옆에는 '태양의 인사'라는 설치 조형물도 하나 있다. 2005년에 설치된 건축가 니콜라 바시지의 작품이라 한다. 낮에 받은 태양열로 밤에 번쩍번쩍 빛이나는데, 별 건 없지만 여러사람들이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나도 태양의 인사를 받으며 찰칵.

그나저나 이 빛에도 태양이 인사를 한다는 의미를 담았구나. 의미란 참 중요한 의미인 것 같다.

이것 말고도 바닷바람이 구멍을 통과해 소리를 내는 '바다 오르간'도 있었다. 자연을 통해 여러가지 예술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자다르 관광청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물론 오르간 소리가 아니라 황소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나긴 했지만... 뭐, 상관없다. 중요한건 어떤 소리이느냐가 아니라, 그곳에서 공유하는 추억일테니.

석양을 볼 수 있는 다른 바다

첫 날 보았던 자다르의 석양이 너무 좋아서 다음날 다른 쪽으로 가서 석양을 한 번 더 봤다. 사람이 훨씬 적어 석양을 감상하는데 더 분위기 있었다.

이 곳에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했더랬다. 내 미래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꼭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리라 자다르의 석양과 함께 다짐을 했다.

석양이 완전히 지고 돌아오는 길의 광장
잠자기전 레몬 맥주
이 맥주는 크로아티아 여행 내내 입에 달고 살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자다르 올드타운 광장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스플리트 올드타운과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석양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돈이 없는건 여전하니 한조각 잘라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피자와 맥주를 들고 광장에 앉아 조촐한 저녁식사를 한다. 광장에 퍼지는 악사들의 음악소리와 다양한 언어가 섞인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 멋스러운 건물들에 적당한 조도로 비춰진 올드타운 풍경, 은은하게 불어오는 적당히 시원한 바닷바람은 다 식은 피자를 따스하게 데워주고 있는것만 같았다. 가난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우리 음식 훔쳐가기전에 얘기좀 해줄래?!

떠나기 전 날 밤이었다. 여느때처럼 느즈막히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물 마시러 부엌에  들어갔는데 탁자위에 쪽지가 하나 놓여있었다.

"Hello, Could you ask us before taking our food?! Thanks. (안녕, 우리 음식 훔쳐가기전에 얘기좀 해줄래?! 그럼, 수고.)"

앗차 싶었다. 이 숙소에 머무르는동안 공용 부엌에 있는 음식들은 이 집에 머물렀던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음식이거나-실제로 이미 뜯어져있는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주인 부부가 여행자들을 위해 둔 음식이라고 생각하곤 아무생각없이 먹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옆방에 머물렀던 그 조용한 손님들의 음식이였던 것. 과자고 빵이고 다양하게 가져다 먹었는데... 쪽지를 보는 순간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순간 어떻게 사과를 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문을 두드리고 진심으로 사과해야하나? 그러기엔 너무 늦은 밤이었다.  내일 아침에 사과를 할까? 내일 옆 방 사람들이 언제 일어날지, 언제 나가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그것도 좀 애매하다. 그래서 그냥 테이블 위에 사과 쪽지와 내가 먹기위해 사왔던 초콜릿 중 가장 비싸고 맛있는것을 골라 테이블 위에 놓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이걸 보면 마음이 좀 누그러 들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그리고 떠나는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달려가 테이블을 확인해봤다. 그런데 테이블 위엔 어제 내가 둔 초콜릿과 쪽지가 그대로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둔 그대로 있진 않았다. 쪽지를 들어올려 읽긴 읽었는데, 안 가져갔다는거였다.

일단 속상했다. 어떻게든 고민하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무시당한 것 같으니까. 그 다음엔 기분이 나빴다. 아니, 다 같이 쓰는 공동부엌이란걸 빤히 알면서 자기네들 부엌처럼 물건에 이름도 안쓰고 냉장고며 선반이며 다 넣어두면 누구껀지 어떻게 알아?! 나한테 미리 얘기해둔 것도 아니고. 본인들이 음식 간수를 못한 잘못도 있으면서 왜 내 탓처럼만 만들어.

꿀꿀해진 기분으로 짐을 들고 집밖을 나섰다. 주인부부가 작별인사를 하러 나와있다. 자다르에서 즐거웠냐며 안부를 묻는 부부의 따뜻한 미소에 자칫 안좋은 기억이 될 뻔한 이 숙소의 이미지가 다시 누그러진다.

그런데 이제 버스정류장으로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 자꾸 옆방손님들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내 마음이 전달되지 않은게 찝찝하기도하고 '음식을 훔쳐갔다'는 오해때문에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안좋게 심어줄것만 같다. 외교단도 아니면서 가끔 난 쓸데없이 이런 걱정을 한다...

주인 아저씨에게 옆방 손님이 혹시 언제까지 여기서 지내냐 물어보니 이틀을 더 묵는다고 하신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초콜릿과 사과 쪽지를 대신 전달해 달라고 아저씨 손에 쥐어줬다. 그리고나서야 문 밖을 나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제야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아저씨가 잘 전달해줬으면, 뭐, 그 사람들도 용서하겠지.

자다르 바다

자다르에 다시 가고 싶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사뭇 다르겠지. 난 또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테고.

다시 자다르에 가게 된다면 그땐 일몰이 아닌 일출을 봐야지. 사라진 줄 알았던 자다르바다에서의 다짐들이 다시 떠오를 수 있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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