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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Jun 15. 2016

에어비앤비로 여행하기 <코토르>

에어비앤비X배낭여행 콜라보


손톤 와일더 작 <우리읍내>의 주인공 에밀리는 무대감독의 도움을 받아 죽고나서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던 마을을 훑어보러 과거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들은 에밀리의 마음속에 가슴벅찬 슬픔을 안겨준다. 너무나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이였기에 그 순간에 존재하고 있을 때엔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나왔기 때문이다. 집 앞에 피어난 꽃, 마을에 신문을 돌리는 신문팔이 소년, 엄마가 해주신 저녁식사 냄새, 사랑하는 가족들의 농담들 그 모든것이 이젠 두 번다시 만날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읍내>는 에밀리의 독백이 이어지기 전까지 잔잔한 두 가정의 일상을 보여준다. 홍상수의 영화가 큰 사건없이 잔잔하게 흐르듯이 어찌보면 지루하다 느껴질 만큼 아주아주 보편적이고 빤한 삶이 무대위에 펼쳐진다. 태어나고, 학교에 입학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하고. 지나치게 평범한 이 일상들은 모두가 죽고난 뒤 과거로 돌아간 에밀리의 영혼이 외치는 독백속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휘몰아치게 한다.


"엄마, 잠깐 저 좀 보세요. 옛날처럼요. 벌써 14년이 흘렀어요. 전 죽었어요. 엄만 손자를 보셨구요. 전 조지하고 결혼했어요. 윌리도 죽었어요. 캠핑 갔다가 맹장이 터져서요. 그때 얼마나 놀랬는지 아세요? 잠시지만 이렇게 다시 모였어요. 엄마, 잠시동안 행복한 거예요. 그러니 서로 좀 쳐다보고 있자고요.
(무대 감독에게) 도저히.....더는 도저히 못 있겠어요. 시간이 너무 빨라요. 서로 쳐다볼 시간도 없어요. 몰랐어요. 모든 게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
데려다 주세요. 산마루 제 무덤으로요. 아, 잠깐만요! 한번만 더 보고요.

안녕.....이승이여, 안녕. 우리 읍내도 잘 있어. 엄마, 아빠 안녕히 계세요. 째깍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잘 있어. 맛있는 음식도, 커피도, 새 옷도,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실체를 몰랐던 이승이여, 안녕....."


손톤 와일더는 마지막으로 일상과 작별인사를 나누는 에밀리의 독백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너무나 무심하게 흘러가는게 시간이기에, 사람들은 그 소중함을 놓치고 살아간다. 매 순간이 소중한 때임을 안다면 후회하는 일도 없을텐데.

몬테네그로, 코토르

몬테네그로의 작은 도시 코토르는 내게 손톤 와일더의 <우리읍내>와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지낸 5일간, 먹고 마시고 자고 걸었던, 너무나도 평범하고 평온하게 흘렀던 그 시간들. 지금에 와서 꺼내보니 사무치게 그립다.

왜 그 가치를 몰랐을까 후회하진 않는다. 난 그 순간에 있을때도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마냥 행복했다. 난생 처음으로 '살아있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는 감정이 든 것도 몬테네그로의 코토르에서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후폭풍이 더하다. 내가 다시 마주하는 코토르는 그런곳일 수 있을까.

세계일주를 떠나고 온 어느 베테랑 배낭여행자가 이런말을 했다.

'아직 여행을 떠나지 않은자가 너무 부럽다. 아직 그 설레임을 느낄 수 있으니까.'

이 말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아직 코토르를 여행하지 않은자가 부럽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의 국경을 넘으며 처음 마주했던 눈이 부시게 푸른 바다를 낀 코토르를 보며 느낀 벅찬 감동, 코토르에서 일상을 살아가며 느낀 소소한 행복을 온전한 첫 느낌 그대로 마주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에밀리가 과거로 돌아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던 것도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리라. 다시는 그 따뜻함을, 그 소중함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됐으니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놓여있던 일상적인 풍경은 과거가 되고 나니 숨을 쉴 수 없을정도로 슬프고 아련하다.


'헉'

코토르의 첫인상은 이 한마디로 압축됐다. 해안을 따라 펼쳐지던 차창밖의 풍경은 영화속의 한 장면, 코토르의 모습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와 바다끝에 오밀조밀 형성된 붉은 색의 지붕들, 그리고 끝없이 맑고 푸르른 하늘과 한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검은 산들. 한달여간 유럽과 발칸을 돌아다니며 눈 앞에 보이는 자연경관만으로 심장이 뛰었던 적이 없었는데 코토르는 내 심장을 뛰게 하고 있었다.

'기대된다'

이건 반칙이야. 도저히 이 풍경을 보고 코토르에서 지내기로 한 5일을 기대하지 않을수가 없다.

코토르에서 지내는 이틀간은 저렴한 유스호스텔을 이용했는데, 도저히 그 더러움과 열악한 시설을 견딜 수 없어 삼일째에 에어비앤비로 옮겨갔다.

유스호스텔에서 이틀동안은 대체로 코토르의 올드타운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요새위로 올라가 전경을 구경하는 등 관광을 했다. 코토르는 하루정도 쭉 돌아보니 올드타운과 주요 관광지를 다 돌아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이었다.

코토르 올드타운
올드타운의 골목길
어디를 봐도 산이보인다. 이 나라의 이름 몬테네그로는 검은 산 이라는 뜻이다.
광장에서 사먹은 아이스크림. 기절할 정도로 맛있다.
요새 전망대에서 바라본 코토르 전경
밤이 되면 하나 둘 켜지는 불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에어비앤비로 옮기는 3일째 되는 날. 숙소를 찾는데 좀 애를먹었다. 코토르와는 거리가 꽤 되는 Prcanj라는 마을에 위치한 숙소였는데, 거기로 가는 버스도, 택시도 없어 3-40분간 걸어가야했다. 주인과도 연락이 안되서 옆 마을까지 갔다가 겨우겨우 찾아갔다.

코토르 에어비앤비

저렴한 가격에 구한 비앤비는 뜻밖에 독채였다. 주인집은 위에 따로 있었고, 바로 아래층, 침실이 하나 딸린 집 하나 전체가 숙소였다. 부엌도 있고 마당도 있고! 마당에선 코토르의 눈부신 바다와 장엄한 검은 산들이 보인다.

Prcanj로 숙소를 옮기고 부턴 아주 게으른 여행을 시작했다. 이틀간 코토르 대부분의 관광지는 다 돌아봤으니, 남은 삼일간은 아예 여기서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마치 현지인처럼!

부엌을 이용해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간편하고 실패할 확률 적은 음식 파스타는 배낭여행객의 주메뉴
파스타만 먹으면 지겨우니 새로운 음식도 시도해본다. 정체모를 고기볶음.

삼사십분은 걸어야 나오는 시내에 있는 마트에서 장봐와서 음식을 해먹기도 하고, 코토르의 바다를 감상하며 마을 구석구석 돌아 다녀보기도 한다.

우체국 앞에서 만난 아기고양이
엄청 작다

밀린 엽서를 쓰고 우체국에 가는길, 만지면 곧 부서질 것 같은 작은 아기고양이도 만나고.

저물어가는 코토르의 조용한 길을따라 산책도 한다.

장보고 받은 영수증을 접어 종이학을 만들어 코토르의 바다위에 띄우기도 했다. 여행의 막바지인 만큼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여행을 마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와 함께.

이 숙소에서 지내는 삼일간 잠 자기전 영화도 두 편이나 봤다. 예전에 누나와 함께 극장에서 봤던 '라이프 오브 파이'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여행중이다 보니 여행과 연관된 영화를 보고 싶어진다. 작은 아이폰 화면으로 봐야해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영화의 감동은 아이폰 액정크기와 비례하지 않았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잠든 밤, 갑자기 미친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곤히 잠들어야 할 새벽엔 천둥번개며 폭풍이며 몰아치며 온 집안의 창을 흔들었다. 밖에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소리들이 서라운드로 펼쳐져 난 아직도 내가 영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줄로만 알았다. 정말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처럼 바다 한가운데 표류될까 벌벌떨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와중에 너무 졸려서 좀 더 자고 싶으니 지금 죽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바다가 나를 덮치면 필사적으로 헤엄쳐야 할거 아냐. 그게 귀찮아서 아.. 죽기 귀찮다 라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했다.

다시 널어놓은 빨래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예상대로 널어놓은 빨래들이 비에 홀딱 젖어 모래 바닥에 내팽개쳐져있었다. 다행히도 날아간 건 없었다. 모래를 털고 다시 빨래줄에 빨래를 널었다.

바다위에 뜬 무지개

장을 보러 가는 길,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잠시 처막에 몸을 숨기고 비를 피했는데 이욱고 비가 그치더니 바다위에 무지개가 떴다. 우와! 무지개다 할새도 없이 콤보로 고래 두마리가 무지개 밑으로 헤엄치며 지나갔다. 방금 내 눈앞에 뭐가 지나간지 어안이 벙벙하다 고래가 지나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고래를 봤다고 신나했다. 무지개보기도 힘든데 고래까지 보다니.

케잌사러 가는 길

갑자기 오밤중에 달달한게 땡겨 한 삼십분 걸어 빵집에서 케잌을 사와 먹기도 했다. 숙소근처엔 구멍가게 하나만 있어서 빵집만 가려고 해도 삼십분을 걸어야 했는데, 어둠으로 가득찬 코토르를 오랜시간동안 걷는것도 나름 운치있는 경험이었다. 하늘엔 별이 쏟아질듯이 빛나고 있었다.

어렵게 사온 케잌은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그래도 상관 없다. 중요한 건 케잌맛이 아니라 여기서 남긴 추억이니.

백팩에 들어있는 내 짐들
히치하이킹 사인카드 to 두브로브니크

마지막날 일상처럼 살아온 숙소를 뒤로 하는게 참 아쉬웠다. 원없이 쉬기도 했고 코토르에 참 많은 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든 여행자는 떠나야만 하는 운명. 짐을 싸들고 히치하이킹 사인카드를 만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가 될 두브로브니크! 그 어느때보다 꾹꾹 눌러가며 한글자 한글자 적어나갔다.

코토르 버스정류장 매표소

결론적으로 마지막 히치하이킹은 실패했다. 한 서너시간동안 차를 잡았는데 아무도 안 세워주고, 지나다니는 애들이 희롱하고 가기도 하고 여기서 차 절대 못잡는다고 충고해주고 가는 아저씨들도 있었고 해서 자신감이 점점 떨어졌다. 사실 두브로브니크까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금방 잡힐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장소선정을 잘못했는지 한 대도 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버스타고 두브로브니크로 이동했다. 히치를 실패할때마다 나에 대한 자괴감과 실패감에 괴롭다.


코토르에서 지낸 5일간, 처음부터 끝까지 이 도시가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아기자기한 올드타운이 질릴때 즈음 광활한 코토르 만의 전경이 펼쳐졌고, 일상이 지루하다 느껴질때쯤 미친듯이 비를 쏟아붓고는 무지개를 띄어주는 등 이벤트도 계속해서 열렸다. 이 곳에서 여행은 이벤트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이벤트의 연속. 이때의 나는 다음엔 어떤 이벤트가 열릴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내용은 내가 코토르에서 적었던 일기다.

매일매일을 여행하는 것처럼 살아가면 참 즐겁고 보람찬 삶이겠다. 내가 가진 것들 안에서 아껴서 써가며, 작은 것에도 크게 감사할 줄 알며, 끊임없이 도전을 멈추지 않고, 가끔 생긴 여유엔 천천히 숨을 돌리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연락하고,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항상 겸손함을 느끼고, 내가 받은 만큼 남에게 더 돌려주려고 노력하며, 나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 할 수 있는 나날들이라면, 멀리 나온 여행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내 삶이 즐거울 것만 같다.

코토르, 그곳은 내게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곳이다. 에밀리가 죽은 뒤에 가장 소중했던 순간인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나 역시 죽어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코토르에서 보낸 그 순간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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