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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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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Oct 10. 2024

작가와 자존감에 대하여

작가란 무엇일까요?

 내가 나로 존재하는데 어떤 조건이나 자격이 필요할까?

 나는 10대에 그림을, 20대에는 연기와 노래를 했고, 지금 30대에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필이면 입을 모아 ’재능’의 영역이라 부르는 것들에만 발을 담갔다보니 이는 자연스레 자존감이라는 문제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흘러가는 생각과 감정을 오롯이 뱉어내야만 ‘나’로 서는 기분이지만, 조건과 자격을 들이미는 분위기에 떠밀리다 보면 하고 싶은 말들은 자연스레 삼키게 된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던 어린아이에서 말을 아끼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데에는 비슷한 맥락이 숨어있다고 본다.

 자존감이란 키워드는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보이지 않는 ‘그 선’을 넘어야만 그 무언가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 속, 내가 나로 존재하는 데에도 수많은 의심을 덧대어야 했다.

<약한 게 아니라 슌:한 거야> 중에서


 하여 10대부터 30대까지 내가 쓰고 그렸던 글과 그림, 무대 위에 쏟아냈던 목소리는 모두 자기 증명의 도구였음을 고백한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보이지 않는 선’에 닿기 위한, 내가 나로 바로 서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지금에 와서 ‘자기 증명을 이뤘는가’ 묻는다면 선뜻 ‘네’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보이지 않는 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타고난 재능과 쏟아부은 노력을 생각한다면 필요한 분명한 기준이기도 하다. 그 ‘보이지 않는 선’을 넘는 것이 ‘자기 증명’이라는 감각 또한 아직 살아있기에 솔직히 ‘그렇다’고 답하기에도 내 양심이 너무 찔린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완전한 나로서 존재하게 되었는가?’ 묻는다면 긍정적인 대답이 보다 쉬워진다. 나란 사람 자체와 글과 그림, 그리고 연기와 노래까지, 과거에 ‘재능’이라 여겼던 그 모든 행위를 완전히 분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의 내게 글과 그림은 제2외국어 같은 것이 되었다. 조금은 미숙하고 서툴어도 내가 하는 생각과 세상에 전하고 싶은 가치를 전달할 수 있으면 그만인, 하나의 언어가 된 셈이다. 설령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못하는 수준의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번 브런치스토리 팝업에 참여하며 대단한 작가님들 사이에 내 이름이 놓였다. 자료를 준비하는 내내 영광스러운 마음 한편에는 불편한 기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이었다. 글과 그림으로 모두가 인정할 법한, ‘그 선’을 넘은 창작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마음이었을 테다. 나와 창작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왠지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스스로를 향한 의심이기도 했다.

 마침내 오픈한 팝업 첫날, 공간을 방문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전시를 준비한 브런치(@brunch.co.kr)와 사이드콜렉티브(@side.collective)팀에서 어떤 의미로 나를 불러주었는지. 전혀 대단할 필요 없는, 하나의 도구이자 언어로서의 ‘글쓰기’라는 감각을 전하고 싶은 마음. 지금의 내가 창작을 대하는 자세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전시는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가기 직전까지 한 가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작가란 무엇일까요?’

 작가의 ‘작’자는 ‘지을 작’자를 쓴다. 꾸준히 쓰고 그리는 삶을 살기 이전에는 ‘작가’란 어떤 대단한 권위나 자격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꾸준히 무언가를 짓고 있다면, 그 누구라도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이제 내게 작가란, 명사보다 동사 같은 단어로 느껴지기도 한다. ‘무언가에 애정을 담아 꾸준히 하고 있다’는 상태로 읽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 가장 먼저 나를 ‘작가’로 불러주었지만, 그 호칭이 익숙해지는 데는 1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익숙해졌다는 뜻은 무엇이든 매일 쓰고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브런치스토리가 정의하는 ‘작가’의 의미와 같을지 모르겠다.

 쓰는 시간이 쌓여 완성된 것은 비단 작가라는 감각 뿐만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토록 콤플렉스로 여겼던 자존감에 대한 해답은 ‘쓰는’ 내가 쌓여 완성되었다. 겨우 내가 되는 일. 매일의 단단함이 아니었다면 어려울 일이다. 그 귀한 경험을 모두가 누렸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저마다 다양한 계기로 브런치스토리 팝업을 방문할 테지만, 공간을 나서며 하나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써야겠다’라는 마음. 그런 바람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니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팝업에서 나는 나의 쓰임을 다했다.


 브런치스토리 팝업은 이번 주 10월 13일 일요일까지, 성수동 방문 계획이 있으신 분들 놀러 오셔서 많은 영감 받아 가세요.




<WAYS OF WRITERS : 작가의 여정>

전시 장소 : 토로토로 스튜디오 (서울 성동구 연무장17길 7)

전시 기간 : 2024년 10월 3일(목) - 10월 13일(일)

운영 시간 : 매일 오전 11시 ~ 오후 8시 (주말 및 공휴일 정상 운영, 마지막 입장 시간 오후 7시 30분)

방문 예약 : 입장은 무료이며, 카카오 예약하기, 현장 대기 입장 모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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