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탐구보고서(1) 수족다한증
나는 수족다한증(手足多汗症)을 앓고 있어요,라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선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넌지시 고백하면 무슨 심각한 병을 앓고 있나 싶겠지만 그래 봤자 손과 발에 땀이 나는 것뿐이다.
수족다한증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땀 과다증, 손과 발에 땀이 지나치게 많이 나는 증상. 당뇨병ㆍ임신ㆍ갱년기 장애 따위로 인하여 온몸에 땀이 많이 나는 전신성과, 일시적인 흥분ㆍ긴장ㆍ공포 따위로 손ㆍ발ㆍ겨드랑이ㆍ이마ㆍ콧등 따위에 땀이 나는 국한성이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라고 나온다. 문자 그대로 땀이 무진장 많이 나온다는 얘기다. 그렇다. 내 손과 발에는 워터파크를 메울 만큼 엄청난 양의(라고 하면 조금 과장이긴 하다만) 땀이 철철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입술을 파르르 떨 정도로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 요즘같이 더운 여름 날씨엔 '차라리 손을 잘라버릴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러니 수족다한증을 앓고 있어요,라고 얘기해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불쌍한 상황인 거다.
손에 땀이 많아서 불편한 점은 단연 스킨십 문제다. 애인도 없는 주제에 무슨 스킨십 타령이에요,라고 핀잔을 준다면 곤란하다. 물론 애인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스킨십 없는 건조한 삶을 살고 있진 않단 말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악수할 때 스킨십, 연극 연습 중 파트너와의 스킨십,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동전을 건네주며 손이 닿는 스킨십... 굳이 이렇게 예시를 대고 있다니 더욱더 비참해지는 것 같지만, 이렇듯 일상에서의 스킨십은 생각보다 정말 많다. 손 잡을 일이 애인 말고도 많단 말이다. 상대방과 손이 닿을 때 대부분은 "괜찮아요"라며 내 손에 맺혀있는 땀방울들을 개의치 않아하지만 그들의 속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나와 손이 닿는 즉시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비누로 손을 닦고 손세정제를 바른 뒤 햇볕에 세 시간 동안 소독시켜야겠어'라고 생각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뭐, 엄청난 결벽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정도로 호들갑을 떨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사실 손을 잡는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엔 실제로 저런 생각들이 수없이 오간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를 극도로 꺼려하는-그보다는 남들에게 좋은 모습만 비치고 싶은-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강한 내게 손에 나는 땀은 엄청난 골칫덩어리인 셈이다.
손에 땀이 많이 나서 불편한 상황의 이해를 돕고자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고자 한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이라고 가정해보자. 일 년을 다 바쳐가며 준비한 시험이니 만큼 만반의 준비를 마친 수험생은 수험장에서 시험지를 받아 든다. 그리고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하나, 둘 문제없이 척척 문제를 풀어나가다 긴가민가한 한 문제에서 멈칫한다. 그 순간 긴장되는 마음에 안 그래도 축축한 손바닥은 더욱더 흥건해지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시험지가 다 젖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야 만다. 당황한 수험생은 손을 바지에, 티셔츠에 닦아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파리를 내쫓듯이 손바닥을 팔랑거려보기도 하지만 퉤퉤 침을 뱉는 에어컨처럼 여기저기로 땀방울만 튈 뿐 전혀 효과가 없다. 남은 시간은 십 분에서 오 분, 삼 분, 일 분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눈 앞에 보이는 건 땀에 젖어 잉크가 번져버린 시험지뿐이다. 컴퓨터 인식을 피할 수 없는 OMR카드만은 절대로 물에 젖으면 안 된다는 마음에 손 끝으로 정답을 체크하다 그만 답을 밀려 쓴 수험생. 결국 시험은 끝난다. 수험생은 거의 울기 직전 표정으로 잘못 표기한 OMR카드를 제출한다. 수험생이 1년을 바쳐 준비한 시험은 그렇게 어이없게도 (고작 손에서 나는 땀 때문에) 망해버린 것이다.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닌 바로 내 얘기다. 약간의 과장이 섞여있긴 하지만, 내게 시험이란 저런 과정의 연속인 것이다. 비단 지면으로 보는 시험이 아니더라도, 운전면허 시험에선 땀 때문에 자꾸만 미끄러지는 핸들 때문에 혼쭐이 났고, 대입 시절 뮤지컬과 실기 시험 때는 바닥을 짚을때마다 생기는 손자국이 신경 쓰여 도저히 연기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는 점을 상기시켜본다면 내 인생, 제법 고달프지 않은가.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 만화 속의 생각주머니처럼 펑펑 터지는 피해의식 외에도 생활할 때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고치려고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학창 시절엔 백 만원 넘게 준 보약도 먹어봤고, 병원에서 큰 검사도 많이 받아봤고 심지어는 심각하게 수술까지 고민해봤다. 그런데 그 수술이란 게 손의 땀구멍을 막아버리는 대신 다른 곳에서 랜덤으로 땀을 배출시키는 수술이어서 선뜻 결정할 수도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은 등이 당첨되는 바람에 한 겨울에도 등이 젖어 있다니까, 아무리 손에 땀이 안 난 다곤 하지만 그런 상황이 그리 유쾌하진 않지 않은가. 사타구니나 가슴 같은 부위가 당첨됐다고 생각해 보아라. 한 겨울에도 그 부위는 항상 축축하게 젖어 있다 생각하면 차라리 손이 낫겠다 싶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나는 아직까지도 '땀이 많이 나는 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불편한 건 여전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 머리카락이 검은색이듯, 내 쇄골 언저리엔 작은 점이 하나 있듯 내 손의 땀도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던 것인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땐 차라리 '물이 콸콸 쏟아지는 샤워기처럼 땀이 콸콸 쏟아지는 손으로 샤워를 해보는 건 어때?' 나 '지나가다 잡초에 손으로 물을 줘보는 건 어때?' 같은 친구들의 농담처럼 땀이 나는 손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게 낫다. 나오지 말라고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해도 나오는 데 뭐 어떻게 하겠는가. 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진정해, 똘똘아!'라고 아무리 다짐해본들 똘똘이가 안 일어나고 배길 수 있겠는가?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박수를 보낸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일은 오래 생각해봤자다.
비를 맞기 싫어 우산을 만들고, 음식을 쉽게 먹기 위해 포크와 나이프를 만들었듯 인간은 상황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나 역시 인간이고, 수족다한증을 앓으면서도 그런대로 돌파구를 찾아냈다. 시험을 볼 땐 장갑을 끼고 (실제로 입시미술을 할 때 목장갑을 끼고 시험 봤다.), 상대방의 손을 잡기 전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손에 땀이 많으니 이해하세요."라고 미리 밑장을 깔아 두고, 미끌 거리는 재질의 옷은 최대한 피해 땀이 잘 닦이는 재질의 옷을 골라 입는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리 없지만 그래도 꽤 견딜만하다. 그래도 생기는 나머지 문제는 '어쩔 수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삶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는 것 또한 아름다운 결말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도 땀이 나는 손으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키보드 위로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언젠간 키보드의 수명을 조금씩 갉아먹을지언정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