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람을 웃기는 가장 쉬운 방법

인체 탐구보고서(2) 후각 장애인

by SHUN

나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100% 자신 있게 그들을 웃기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아주 간단하다.

1) 길을 가다 빵집 앞을 지나간다.

2) 최대한 자연스럽게 코를 킁킁 거리며 "음~ 빵 냄새 너무 좋다"라고 말한다.

3) 끝이다.

그럼 그들은 배를 잡고 웃는다. 왜냐하면 난 냄새를 못 맡기 때문이다.

냄새도 못 맡는 게 냄새 맡는 척하는 게 웃기다고 웃는 거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반응을 보인다. "너 냄새 못 맡잖아" 하면서 까르르 웃어대는 것이다. 그럼 나는 "너는 지금 후각 장애인을 희롱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라고 얘기하며 씩씩댄다. 물론 후각 장애인으로서 수치스러움 같은 건 1도 없다. 그냥 그러고 노는 거다.


나는 후각 장애인이다. 시각장애인이 앞을 보지 못하듯,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듣지 못하듯, 후각 장애인인 나는 냄새를 맡지 못한다. '어머, 냄새를 맡지 못한다고? 불쌍해라!'라고 생각하는 이, 분명 있겠지만 한 번 잘 생각해 보아라. 나는 당신들이 맡아야 할 옆 친구의 고약한 정수리 냄새나 애완견 뽀삐의 변 냄새 같은 거 맡지 않아도 된다. 그뿐만인가. 나는 암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담배냄새나 똥 냄새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어째 써놓고 보니 자랑하는 것 같다. 자랑거리가 아닌 건 잘 알고 있다.) 그러한 냄새들을 맡아보지 못해서 어떤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모르는 게 더 낫지 않은가? 마치 열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말이다. 호기심에 열었다간 똥냄새며 아기 기저귀 냄새, 암내, 정수리 냄새, 음식물 쓰레기 냄새, 한 달 전에 먹다 남긴 냉장고 속의 곰팡이 핀 치킨 냄새 같은 것들이 내 콧속에 솨-하고 퍼지는 것이다. 그런 상자, 과연 열고 싶을까?

물론 향기로운 꽃 향기나 향수 냄새, 사람들 고유의 체취 같은 것 또한 느낄 수 없다. 이는 연기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큰 리스크다(라고 사람들이 얘기한다. 맡아본 적 이 없으니 실제로 그것들이 연기와 연결이 되는지 나로서는 확인 불가하다). 오감을 사용해야 하는 연기자로서 오감 중 하나인 후각이 없다는 건 아주 큰 약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무대 위에서 연기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후각'이라는 감각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진 않지만, 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거다. 음,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고 그렇게 되니 나, 꽤 비참해진다.

일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냄새로 장소나 상황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나는 그런 경험이 거의 전무하니 냄새로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의 폭이 좁은 것도 사실이다. 빗내음이나 풀내음, 이런 건 그냥 시각적인 이미지로만 그려질 뿐 전혀 느낄 수 조차 없다.

영화 <향수>에서 수만 가지 냄새를 영화 장면으로 시각화시킴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냄새'를 상기시켰다면, 나는 그 이미지들을 통해 '그 냄새'들의 느낌을 유추할 뿐이었다. '오, 생선가게의 비린 냄새를 저렇게 시각화시켰구나'라는 게 일반적인 관객의 반응이라면 난 '생선 비린 냄새가 저런 느낌이구나' 하며 영상 속 이미지를 통해 냄새를 유추해보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 <향수>는 냄새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영화기도 하다. (보통 냄새를 그 정도로 시각적으로 그려내지는 않으니 말이다.) 마치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라는 문자가 있듯이, 영화 <향수>에서 보여준 후각의 시각화는 내게 후각으로서의 문자가 되어준 것이다.


이쯤 되면 "왜 냄새를 못 맡아요?"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요, 알려줄게요.

내가 냄새를 못 맡는 이유는 말이다, 나도 모른다. 동네병원들과 (좀 크다는) S대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를 받아보기도 해봤지만 의사들은 한결같이 심각한 얼굴을 하곤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 대답 들으려고 검사를 받은 건 아닌데 말이다. 굳이 그렇게 대답할 거면 심각한 얼굴은 왜 한 건지 묻고 싶다. 어쨌든 신기하게도 의사라는 사람들은 내 후각장애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혹시 고대 신화의 미스터리로 남기려는 목적인 걸까. 왜, 박혁거세도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지 않나. 뭔가 위대한 인물들은 한 가지씩 미스터리를 갖고 태어나기 마련이니까. 나도 이유모를 원인으로 후각을 잃은 채 태어난 거다. 위대한 인물이 되려고 말이야. 그런데 신화 속 미스터리 치고는 너무 초라한 것 같다. 알에서 짜잔 하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태어나자마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외친 것도 아니고 겨우 위대한 탄생의 비밀이란 게 냄새를 못 맡는 아이로 태어난 거라니. 너무 비루한 영웅의 탄생기다. 뭐 상관없다. 어쨌든 의사들이 원인을 밝혀내지 못함으로써 신비로움이 +10 상승하였습니다.

때문에 "왜 냄새를 못 맡아요?"라는 질문엔 대답하기 곤란하게 됐다. 미안하게 됐다. 글쎄, 왜 못 맡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주 어렸을 적엔 냄새를 맡았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다. 기억이란 건 개인의 편의대로 왜곡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내가 언제부터 냄새를 맡지 못하는지 인지했던 때이다.

때는 1998년, 그러니까 내가 8살, 초등학교 일 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주말마다 누나와 나를 데리고 산에 오르기를 즐기셨는데 그날도 역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말을 맞아 엄마와 뒷 산에 오르는 중이었다. 봄을 맞아 형형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소녀감성의 엄마는 그것들을 놓칠 리 없었다. 엄마는 꽃을 하나 꺾어 꽃 향기를 맡으며 "어머~ 꽃이 너무 향기롭다, 한 번 맡아보렴" 하며 꽃을 내 코에 갖다 대었다. 그런데 세상에, 놀랍게도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니 나와 함께 꽃향기를 공유하고픈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보면서 차마 단호하게 "아무 냄새도 안나"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거짓말을 하고야 말았다. 세상 모든 향기를 다 머금은 표정을 하고선. "음~! 너무 향기로와!!"

엄마에게 냄새를 못 맡는 것 같다고 고백한 건 고등학교 무렵이었다. 이미 다한증 같은 몸의 이상한 징후로 엄마를 충분히 피곤하게 만들었다 생각했는지, 그때까지 후각이라는 감각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사뭇 진지하게 얘기한 적이 없다. 그렇게 그냥 어물쩍 넘어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냄새를 맡지 못하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인데, 이런 아들의 이상한 점을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님이 모르고 넘어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중,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다짜고짜 엄마에게 고백했다. 세상 가장 진지한 얼굴로. "엄마, 나 냄새를 못 맡아." 부모님 된 입장에선 꽤 충격적인 커밍아웃이었으리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엄마는 그때부터 나와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동네병원에 가서 진찰했는데, 위에서도 밝혔듯 의사는 아무런 해답도 내주지 않았다. 아, "큰 병원에 가보세요."라는 나도 할 수 있는 얘기는 해줬다. 그래서 큰 병원에 가라는 대단한 조언으로 큰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고 마늘 냄새를 코에 갖다 대고 무슨 냄샌지 알아맞히는 이상한 검사도 진행했지만, 결과는 동네병원과 다를 게 없었다. 원인불명. 알 수 없단다.


그래서 지금까지 후각을 잃은 채 (아니, 원래 없었으니 잃은 게 아닌지도) 살아가고 있다. 불편한 점은 딱히 없다. 겉으로 보기에도 티가 나지 않으므로 내가 얘기하기 전까진 사람들도 모른다. 그냥 조용히 있으면 일반인과 다를게 하나 없어 보인다.

웃기는 게, 냄새도 못 맡는 주제에 꽤 미식가라서-맛집 블로그를 지원받으며 운영했을 정도로-먹는 것엔 꽤 진지하다. 내가 느끼는 음식의 맛이 다른 이들이 느끼는 맛과 다를지언정 맛있는 걸 먹는걸 정말 좋아한다. 오랜만에 외식한 식당이 실패할 경우 한 주가 우울할 정도로.

냄새도 못 맡는 데 먹는 데엔 왜 이리 민감할까 한 번 고민해봤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이렇다. 왜,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은 유달리 청각이 발달했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은 유달리 관찰력이 뛰어나지 않던가. 앞이 보이지 않으니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제2의 감각인 귀가 더 예민하게 작동하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들리지 않는 것을 눈으로 담아내기 위해 시각이 더 예민해진다. 나도 그런 케이스인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50%씩만 사용해도 충분히 '맛있다!'라고 느낄 수 있는 반면 후각이 둔한 나는 혓바닥이 열심히 일 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미각을 150% 이상 써주지 않으면 '맛있다'는 감상 따위는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말 그대로 혓바닥이 '열일' 해주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내 혓바닥이 맛에 민감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구요. 남들 다 가졌는데 나만 없다고 너무 우울해하지 말아요. 비록 냄새는 못 맡지만 맛있는 걸 먹으며 행복하다 얘기하는 저도 있으니까요. 더불어 '후각 장애인 레퍼토리'는 언제나 웃음 승률 100%를 자랑한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때 튀어나오는 게 대부분이라. 내가 냄새를 맡지 못해 남들이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어느 정도 위안이 되지 않으려나. 아님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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